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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Jul 09. 2024

소녀, 라이더, 그리고 할머니


서핑을 마친 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랩으로 오토바이 택시를 호출했다. 장거리라 첫 번째 호출된 라이더는 취소를 요청해 왔다. 아마도 라이더가 취소하면 무슨 벌점 같은 제한이 있는 모양이다. 그를 취소하고 조금 기다리니 곧 다른 라이더가 도착했다. 그런데 얼굴을 보니 여자다. 그것도 앳된 보이는 소녀였다. 속으로는 난감했지만 표시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가 준 헬멧은 내 머리에 비해 작았다. 안 그래도 머리가 큰 편인데 이곳 사람들의 신장에 맞게 나온 헬멧은 더욱 작았다. 내가 낑낑대며 헬멧 버클을 잠그고 있지 못하고 있자 그녀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자신이 쓴 헬멧을 내게 벗어 주었다. 아마도 자신의 것이 더 큰 사이즈의 것인 모양이다.



헬멧을 벗은 그녀는 영락없는 단발머리 아가씨였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니 그녀의 뒤에 앉는 게 더욱 조심스러위졌다. 되도록 그녀와 몸이 접촉하지 않도록 나는 뒷좌석의 끝 부분에 엉덩이를 걸친 채 손잡이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바이크가 출발하였다. 하지만 그녀만큼 작은 소형 바이크는 내 육중한 몸이 부담스러운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그녀의 오른손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보호 장갑도 끼지 않은 조막만 한 검은손이 수시로 브레이크를 잡고 스로틀을 조였다 풀었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차분한 그녀의 외모처럼 그녀는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웬만하면 인도를 이용하지 않고 차도로만 천천히 달렸다. 덕분에 긴장이 풀린 나는 졸음마저 느꼈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졸다니 얼마 만에 맛보는 편안한 승차감인가? 그녀가 쓰던 헬멧의 보안경은 유독 상처가 많이 나 있어 사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답답한 나는 보안경을 위로 재끼지만  헐거운 나사 탓에 자꾸만 도로 내려온다. 그녀는 그동안 이토록 답답하고  흐릿한 보안경을 통해 세상을 봐왔던 것일까?



문득 그녀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 상태로 거의 한 시간을 달려 나를 내려주면 아마 그녀가 쥐게 되는 돈은 삼천 원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랩 플랫폼 수수료가 따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로 치면 시급 삼천 원이 채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 작은 돈을 모으기 위해 사나운 바이크와 자동차가 득실 거리는 이 정글 같은 도로로 나온 것이다. 비교적 저렴한 인도네시아의 물가를 감안해도 그녀가 버는 돈의 액수는 너무 적었다. 그녀의 여린 어깨에는 어떤 무거운 짐이 얹어져 있는 걸까?



갑자기 그녀의 가녀린 등이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 도로 저 편으로 허리가 접힌 할머니가 장바구니를 실은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사실 끌고 간다기보다는 힘이 없는 할머니가 자전거에 기대 간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보였다.  자전거를 탈 힘조차 없어 자전거를 끌고 가는 아니 도리어 기대어 가는 저 할머니의 삶은 또 어떠했을까?



마침내 호텔에 도착했다. 그녀를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너는 정말 좋은 드라이버야. 고마워.



소녀도 그제야 긴장을 풀고 싱그러운 망고 같은 미소로 답해준다.



부디 그녀들이 행복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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