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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Jul 10. 2024

수상한 나의 호텔 이웃 1


매일 아침 서로에게 눈인사를 건네는 백인 남자 이웃이 있다. 나는 조식을 먹기 위해 이곳 야외 식당으로 나오지만 그는 아침 담배를 피우기 위해 이곳에 나온다. 그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걸 들어보니 러시아어 같은 느낌이었다. 몇 차례 그에게 말을 걸 기회가 있었으나, 첫째 그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 같았고 둘째 그가 별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아 그때마다 그만두고 말았다. 그래서 만난 지 일주일 넘은 우리는 여전히 데면데면하고 어색한 사이다.



아무튼 그는 내가 조식을 먹을 때마다 내 옆 테이블에서 러시아 말이 나오는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고는 맛있게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끊은 지 십 년도 훨씬 넘었지만 나는 아직까지 담배 냄새를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 다시 저 매캐한 연기를 먹을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다른 금연자들처럼 질색발색을 하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연기에서 아련한 청춘시절의 그리움마저 느낄 때가 있다. 술 먹고 담배 피우고 토하고 술 먹고 담배 피우고 토하던 그 치기 어리고 아슬아슬하던 시절, 그저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절이지만 담배연기는 그 청춘의 시절을 묘하게 떠오르게 한다.



수줍음이 많은 건지 사람을 피하는 건지  그렇게 담배 한 대를 깔끔히 피우고는 그는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사라진다. 수영장 바로 앞의 그의 방은 수영장 전망이 있어 내 방 가격의 두 배가 넘는다. 문득 그가 러시아의 석유 재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뭔 놈의 재벌이 바닷가 특급호텔을 놔두고  이런 촌구석의 한산한 호텔에 머문단 말인가? 아니다. 어쩌면 그는 푸틴에게 낙인찍혀 러시아를 떠나 숨어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도대체 그는 누구일까?



어쩌면 그는 징집을 피해 이곳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그와 같은 노인에 가까운 장년도 징집 대상이 되었다는 뉴스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의 190에 가까운 그의 건장한 몸을 보건대 그가 본국에 있었으면 그는 100퍼센트 징집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전쟁을 피해서 이곳에 온 것일까?



또 다른 상상을 해 본다.


그는 러시아 갱단의 보스일지도 모른다. 러시아 경찰과 정보기관의 수사망을 피해 이곳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너무 유명한 고급 호텔은 경찰의 눈에 띌 수도 있으므로 일부러 이런 허름한 호텔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그의 벗어진 머리와 깊은 눈빛이 영화 대부 속 말론 브랜도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 그의 방 캐비닛에 러시아제 AK 소총이 잔뜩 들어있을지도 모를 일일테니 말이다.



이런 헛된 망상을 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든 생각.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정답은....



그냥 관심 없다가 아닐까?



참! 그가 피우고 있는 담배는 신기하게도 우리나라 담배 에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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