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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Jul 11. 2024

수상한 나의 호텔 이웃 2


 


오늘도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수영장 옆  테이블에는 벌써 예의 그 러시아 친구가 앉아 모닝 담배를 맛있게 태우는 중이었다. 나와 그는 서로에게 고개만 끄덕인 체 여느 때와 마친가지로 각자의 일을 시작했다. 그는 담배를 즐기며 커피를 마셨고 나는 곧바로 수영장에 입수했다. 



오늘은 어제 본 유튜브 수영 강의에 나온 한 손 자유형을 연습해 보기로 한다. 자세를 교정하는데 좋다며  방송에서 추천한 연습방법이었다. 역시 평소 많이 쓰던 오른쪽 방향은 부드럽게 잘 되었지만, 많이 안 쓰던 왼쪽은 호흡조차 이어지지 않아 연거푸 물을 먹었다. 확실히 잘 모르겠을 때에는 쪼개어 천천히 관찰하는 방법이 특효다. 암튼 수영에 조금 물리기 시작했던 요즈음인데 새로운 과제가 생겨 다시 활력이 생겼다.



조식을 먹은 후,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는데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그가 담배를 물더니 얼른 반대편 자리로 이동을 하려 한다. 평소 그가 궁금했던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넬 기회다 싶어 신경 쓰지 말고 이곳에서 그냥 피우라고 했다. 의외로 그는 미안한 듯 순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담배를 들어 보인다.



너한테 연기를 맡게 하는 게 미안한데.



걱정 마. 나도 원래 담배를 피웠던 사람이라 담배 연기를 지금도 싫어하지는 않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피워.



그럼 잘 피울게



모처럼 잡은 대화의 물꼬를 이어가기 위해 그에게 계속 말을 건넸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


우크라이나.



말하는 것만 들을 때는 러시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러시아의 적국인 우크라이나였다. 러시아 사람이냐고 물었으면 그대로 머리통을 물어 뜯길 뻔했다.



넌 어느 나라?


난 코리아.


오 김정은?



빌어먹을. 내가 코리아라고 말할 때 반 정도는 꼭 이 이름을 말했다.  아이들과 유럽을 다닐 때는 이 말이 듣기 싫어 꼭 사우스 코리아, 낫 노스코리아라는 말을 뒤에 붙이곤 했다. 실제로 런던에서 만난 어떤 파키스탄 사람은 내가 아니라고 했음에도 계속해서 놀리듯 물은 적도 있었다.



낫 노스코리아, 위 헤이트 힘


미투. 김정은과 푸틴은 나쁜 사람이야.


나도 동의해. 우리도 김정은을 많이 싫어해.



그에게 직업이 뭐냐고 묻자 그가 못 알아 들었다. 알고 보니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한다. 그가 그동안 나를 피했던 이유는 단지 영어를 잘 못해서였던 것이었다.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배운다. 이 순한 전쟁 피해자를 러시아 마피아 보스라고 생각하다니.



그가 스마트폰 번역 어플을 열어 내게 보여줬다.


이곳에서 유럽에 있는 그의 보스를 대신해 부동산 물건 그중에 빌딩들을 체크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영어만 능숙하지 않을 뿐, 폴란드어와 체코어, 러시아어에 능숙한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내게 직접 찍은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바로 그가 살던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프가 러시아 군에게 처참하게 공격을 당하는 모습이었다. 강남이나 광화문에나 있을 법한 거대한 최신식 빌딩이 러시아 군의 폭격을 받아 한순간에 무너지는 장면이었다. 그가 일하던 직장이 있었던 건물이란다. 그 무너지는 동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막막할 진대, 당시 그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에게 내 인스타 그램 큐알 코드를 보여주고 팔로우를 요청했다. 그러자 그가 자신이 아닌  딸의 인스타그램을 보여주었다. 아름다운 외모의 그녀는 무슨 할리우드 영화배우 같은 외모와 화려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팔로워 숫자도 몇 천명 이상이었다.



네 딸은 마치 셀레브러티 같아.



응, 그녀는 다행히 지금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어.



그가 뿌듯한 아빠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에게 아내의 안부도 물을까 하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그의 마음의 온도가 지금의 온기에서  더 내려가지 않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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