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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Jul 13. 2024

중년인 내게 로맨스, 아니 로맨스 스캠이 찾아왔다.



이곳 발리에 와서 몇 명의 외국인 친구를 만났고 종종 그들에게 정보를 전하거나 받을 때가 있다. 한국에서 같으면 카카오톡이나 라인을 쓰면 간단하겠지만 이곳에선 왓츠앱을 주로 사용하기에 나는 익숙하지 않은 왓츠앱 대신에 인스타그램의 디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도 대부분 인스타그램의 계정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물론, 투어 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때에는 여전히 왓츠앱을 사용해야 했지만 일상에서 외국인 친구와 정보를 교환할 일이 생기면 주로 인스타 그램의 디렉트 메시지 기능인 디엠을 사용했다.

그로 인해 내 팔로워 숫자 제로이던 인스타 그램 계정은 다시 부활했고 팔로워 숫자가 조금 창피했던 나는 그동안 팔로우 신청을 했던 사람들을 전부 승인해서 팔로워 숫자를 늘려나갔다. 하지만 이렇게 닥치는 대로 팔로우를 누르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하고 말았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미란다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갑자기 팔로우 신청을 해 왔다. 나는 그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본 사람이려니 싶어 별생각 없이 팔로우 승인을 했다.

하루가 지나나 그녀에게 디엠이 와 있었다. 내가 찍은 청와대 사진이 아름답다며 뭐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당황했던 나는 그녀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그녀의 계정에 들어갔다. 젊고 아름다운 그녀의 사진들은 대부분 골프나 맛집 방문과 관련한 사진들이었다. 내가 주로 인스타에 올렸던 검도나 여행 관련 사진은 거의 없었다. 가끔 여행지 사진이 있었지만 그것도 주로 내가 좋아하는 역사 유적이나 자연 풍경이 아닌 유명 카페나 상점 사진이었다. 나와 관심사가 전혀 다른데 왜 나를 팔로우했을까 싶어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그저 한국을 알고 싶은 여느 일본인이려니 하는 생각에 내가 알고 있는 청와대에 관한 정보와 방문 방법을 번역기를 이용해 그녀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그 정도 선에서 끝날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메시지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질문을 해왔다.

"곧 한국에 가게 될 것 같은데 청와대 방문을 하려면 반드시 예약이 필요한가요?"

뭔가 이상했다. 내가 예약이 필요하다는 정보를 이미 줬음에도 재차 같은 질문을 하는 게 수상했고 더군다나 이 정도 정보는 일본 사이트에도 얼마든지 나와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일부러 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마침 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대화가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대답을 안 하자 재차 질문을 해 왔다.

"지금 업무 중이신가요?"

뭔가 단단히 수상한 냄새가 났다. 인스타 그램 관련 사기를 검색하자 줄줄이 사탕처럼 검색결과가 나왔다. 주로 나 같은 어리숙한 중년 남자를 대상으로 젊고 예쁜 여성이 교제 혹은 한국 방문을 미끼로 코인 사기 등을 시도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법무법인의 블로그를 보니 이로 인한 피해 사례가 꽤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영화에서나 볼법한 젊고 예쁜 외국인 여성이 사귀자고 해오는데 마다할 외로운 중년 남자가 몇이나 있을까?

그런데 바꿔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젊고 예쁜 외국인 여성이 왜 그 잘나고 멋진 외국인 남성을 놔두고 뭐 하러 늙다리 중년 한국 남성을 좋아하겠냐는 말이다. 조금만 균형을 잡고 생각해 본다면 바로 답이 나올 이야기였다. 하지만, 인간은 모두 자기중심적이고 그래서 자신에게만큼은 드라마 같은 사랑과 행운이 찾아올 거라는 헛된 망상을 꾸기 마련이었다. 그것이 독이 든 사과인지도 모른 체 말이다. 그리고 이 사기꾼들은 외로운 사람들의 이런 지질한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돈을 뜯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검색창을 덮고 나는 그녀 아니 어쩌면 그 새끼의 것일지도 모를 메시지를 바로 삭제했다.

그리곤 한국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을 우리 가장 님에게 마음속 편지를 올렸다.

여보, 믿기진 않겠지만 정말
난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단 한 순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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