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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Jul 18. 2024

갑자기 우붓 2

원숭이 왕국에 떨어지다.


우붓이 오고 싶었던 첫 번째 이유는 광활한 정글에 펼쳐져 있는 계단식 논밭이 펼쳐져 있는 뜨갈랑랑 계단식 논을 보고 싶었던 것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영화 혹성탈출에 나왔던 원숭이 왕국과 같우 곳있다는 몽키 포레스트에 가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발리 사람들의 전통 공연을 보느라고 집에 돌아가지 못했던 나는 야밤에 급하게 숙소를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 시간 우붓 시내 중심의 숙소는 예약이 가득 차 있었고 그나마 남아 있는 곳은 가격이 비싼 곳 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방이 남아있던 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한 호스텔의 8인실 도미토리룸을 예약하기로 했다.

40대 초반, 처음 배낭여행에 나섰던 나는 그 첫 행선지로 유럽을 골랐다. 물가가 비쌌던 유럽에서는 당연히 호텔에 묵기가 힘들었고 그런 까닭에 나는 대부분의 숙박을 호스텔의 도미토리 룸이나 한인 민박을 이용해서 해결했다. 그리고 첫 해외여행에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던 그때에는 한 방에 여덟 명이 자는 상황이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는 낭만과 여행의 이야깃거리로만 다가왔다.

하지만, 오십이 넘어버린 지금의 내 아픈 허리는 도미토리 룸의 2층 침대를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삐걱거리며 통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또한 약해진 청력의 내 귀는 같은 방 사람들이 일으키는 크고 작은 소음에는 한 껏 민감해져 내 숙면을 방해하고 있었다.

내 방의 사람들은 비교적 소음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 같았지만, 어떤 이들은  한밤 중에도 가방의 지퍼를 사납게 여닫고 출입문을 부주의하게 열고 닫으며 내 단잠을 방해했다. 심지어 내 또래의 어떤 서양 남자는 힘차게 코를 골아주는 것은 물론이었고 모두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호쾌하게 방귀를 뀌어주기도 했다.

밤새 잠을 설쳤던 나는 결국 비몽사몽으로 아침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내 호텔이 있는 짱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뜨갈랑랑 계단식 논과 몽키포레스트는 봐야 했기에 아침 일찍 움직이기로 했다.

일단 숙소 근처에 있는 호젓한 산책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이게 꽤 시간을 잡아먹었다. 풍경이 너무 예쁜 탓에 사진을 많이 찍은 탓도 있었지만 밤새 잠을 못 든 탓에 체력이 거지가 된 이유가 더 컸다.

결국, 나는 시내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러 내 부족한 카페인을 보충하기로 했다. 스타벅스는 아이들과 유럽을 돌아다닐 때도 느꼈지만, 그 비슷한 실내 인테리어와 커피맛, 동일한 주문 시스템이 낯선 여행지에 피곤을 느낄 때마다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에서요. 북한 아니고요. 저도 김정은은 싫어한답니다~"

직원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누구랑 왔어요?"
"혼자요."
"오우~ 당신 용감하네요."
"아뇨, 사실은 겁쟁이예요."

겁이 많다는 영어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아 그냥 겁쟁이로 이야기했는데 그녀는 그 말이 또 웃겼던 모양이었다.

"저 사실 한국 많이 좋아하거든요.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도 많이 봤고요."
"예. 어떤 거요?"
"좀비물을 많이 좋아해요. 부산행, 킹덤, 또..."

그녀가 말한 몇 가지는 내가 잘 모르는 영어 제목의 영화였다. 최근 유행했던 '눈물의 여왕' 같은 로맨스 물을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작고 귀여운 외모와는 반대로 공포 장르의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카페인을 충전한 후, 나는 몽키포레스트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 폐장을 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나까지는 입장을 시켜줬다. 덕분에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에서 원숭이 왕국을 견학할 수 있었다. 평소 원숭이반 사람반이라는 이야기가 무색할 정도로 관람객이 많은 곳이라는 이야길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사는 원숭이들의 숫자가 3천 마리가 넘는다고 함에도 평소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숫자는 그것을 훨씬 상회한다고 한다.

고전영화 혹성탈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원숭이 왕국에 도착한 주인공 '찰턴 헤스턴'은 동물원의 원숭이들처럼 갇혀서 사육되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에 경악을 한다. 실제 내가 지금 그런 상황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구상에 이렇게 많은 원숭이들이 한 곳에 모여 사는 곳이 있을까? 그것도 인간세계 바로 옆에서 인간보다 많은 개체 수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어쩌면 이 장소 아니 세계의 주인을 자신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것이다.

원숭이들의 외모는 귀여웠지만 그들의 삶은 꽤 험난해 보였다. 먹이 등을 놓고 자주 다투는 장면이 보였고 대장 원숭이가 등장할 때마다 겁에 질려 도망가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어떤 원숭이는 관광객의 배낭의 지퍼를 열어 음식을 훔쳐 가기도 했는데 그 훔쳐간 물건이 선크림인 것도 모르고 먹고 있던 장면은 묘하게 슬픈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 시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장애 원숭이들을 원숭이 사회에서 격리시켜 놓은 안전 장소가 따로 있던 점이었다. 주로 뱀의 맹독에 감염되어 눈이 멀게 되거나 수술로 인해 팔다리 한쪽이 절단된 장애가 있는 원숭이들이었는데 우리 바깥에 그들의 일생과 병을 얻게 된 과정을 상세히 적어 둔 팻말을 걸어 둔 점이 특이하게 다가왔다. 그들을 자연 상태로 두었지만 험난한 원숭이 사회에서 적응이 불가능했던 까닭에 어쩔 수 없이 취하게 된 조치라는 점 역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이 몽키포레스트 관리자들의 원숭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듬뿍 느껴져 나의 마음 역시 따뜻해졌다.

원숭이들의 숲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이 지구의 다른 개체들은 현재도 다른 생각이지 않을까?

또한, 이런 우리들의 생각은 언제라도 상황이 바뀐다면 무너질 모래성 같이 허망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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