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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Jul 20. 2024

중꺽마가 아닌 중꺽다마

갑자기 우붓 3


여행지에서는 별의별 사람을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게 된다. 특히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여러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호스텔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아침에 일어나 공용부엌으로 조식을 먹으러 갔다. 이 호스텔은 1000원가량 만 더 추가하면 조식을 줬기에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조식이라 해야 얇은 바나나 팬케이크에 인스턴트 블랙커피이지만 그래도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야 하는 여행자에게는 꽤 요긴한 한 끼다.



이미 자리가 많이 차 있어 서양 여성이 앉아 있는 소파 맞은편에 앉아서 먹게 되었다. 침묵 속에서 먹으려니 좀 어색한 느낌도 들고 이곳 우붓과 관련한 정보를 얻기 위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하나 여쭤봐도 되겠어요?"


"예, 물론."



그녀는 대답과 다르게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혹시 몽키포레스트 가보셨나요?"



아직 몽키포레스트를 가기 전이라 그곳의 사정이 궁금했던 이유였다.



"아뇨, 저 옆에 사람들이 가봤으니까 저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서양 남자 두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고마워요."



식사를 마치고 그들에게 몇 가지 물어볼 생각으로 밥을 먹고 있는데 내 앞에 있던 여자가 그들에게 다가가더니 유창한 스페인어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내게 시선 하나 주지 않을 때와는 다르게 그녀는 환한 미소와 활기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과 일행인 모양이었다.



다음 날, 내 앞자리에 앉아 있는 이탈리아 남성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화제가 요리로 바뀌고 있는 찰나였다. 티브이에 많이 나오는 외국인 방송인 알베르토와 같이 이 이탈리아 사람도 자국의 요리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 순간, 어제의 그 여성이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도 이탈리아 요리 너무 사랑해요."


"아, 고마워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칠레요."



여성을 좋아한다는 속설답게 이탈리아 남성은 그녀에게 급격하게 호감을 표했다. 그들끼리의 대화가 길어지자 나는 슬며시 자리를 떠나려 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일본?"


갑자기 그녀가 내게 물어왔다.


"아뇨. 한국이요."



그녀는 자신의 예상과 다른 내 국적에 약간 당황한 듯 보였다.



"한국 요리 중에 유명한 것은 뭐예요?"


"예, 아, 김치요. 우리는 김치로 많은 요리를 만들어요. 수프도 만들고 스튜도, 볶음밥도 만들어 먹어요."


"아, 예. 일본음식과 비슷한가요?"


"아뇨. 그들의 음식은 주로 간장 베이스이지만 우리는 빨간 고추, 간장, 소금 등 다양한 소스를 베이스로 써요."


"아, 예."



설마 김치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나는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칠레 와인이 합리적인 가격과 훌륭한 맛으로 유명하다는 덕담을 예의상 건넨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인사를 했지만 이탈리아 남자는 내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는 이미 그녀란 바다에 풍덩 빠진 듯 보였다.



'중꺽마'란 말이 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말의 줄임말이다. 문대찬 기자가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 십에 출전하는 김혁규 선수의 인터뷰를 요약해서 정리한 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 김선수는 정확히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긴 했지만, 저희끼리만 안 무너지면 이길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암튼, 졌을 때도 승리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말고 계속 이어 나아가라는 뜻일 게다.



그렇다면 '중꺽마'란 말은 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 아닐까?



과연 사람이 패배와 같은 시련을 당했을 때 그 마음이 꺾이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사람의 마음은 정말 변화무쌍해서 이를 의지로 컨트롤한다는 것은 실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무기력한 마음을 그저 손 놓고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건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평소 내 마음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다가 막 꺾이는 찰나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뿐일 게다. 꺾이기도 전에 일으켜 세우는 노력은 타이밍이 맞지 않는 의미 없는 노력일 뿐일 것이고 꺾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일으키는 것은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한 탓이다.



여행지에서는 다양한 사람, 별의별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설레고 희망 가득한 마음은 꺾일 수밖에 없다.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없는 혼자 하는 장기 여행은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꺾였을 때 다시 일으키는 마음은 나 홀로 여행에 더욱 중요하다.



그렇다고 아예 꺾이지 않으려고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누구도 나를 침범 못하게 하려고 온몸에 힘이 들어간 채 경계하느라 여행지에서조차 일상에 지쳤던 마음의 긴장을 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설령 만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예기치 않은 사고로 손실을 보더라도 열린 시선과 유연한 태도로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



꺾이지 않으려고만 하는 노력은 결국 우리를 부러지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꺾여도 다시 일어나는 마음이다.


Suwat Waterfall

https://maps.app.goo.gl/FFa1SNuQv6BSeH3L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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