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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생각 Feb 03. 2020

각성 그 이상의 커피

미처 몰랐던 취향의 발견

 내가 스무 살이 되고 나서 접한 것 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술이 아니라 커피였다. 요즘 친구들은 졸릴 때 커피를 마시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학생 때 졸리면 그냥 잤다. 고등학교 주위에 커피전문점이 없기도 했거니와 ‘피곤하면 일단 한 숨 자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자랐기에 도저히 내가 깰 수 없는 졸음이 오면 금방 항복하고 자고 일어나는 게 나의 전략(?)이었다. (그래서 점심시간 전까지의 수업시간엔 반 좀비 상태일 때가 많았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가니 학교 근처에 카페가 널려있었다. 그때서야 처음 만난 커피는… 정말 놀랍도록 맛이 없었다. 카라멜 마키아또 같은 달달한 커피는 끝 맛이 텁텁해서 별로였고, 아메리카노 같은 씁쓸한 커피는 쓰기만 해서 이걸 도대체 무슨 맛으로 매일 먹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랬던 내가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건 대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조별과제는 한 두 개가 아니었고, 한 두 시간으로 끝나지도 않았다.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모두가 피곤한 와중에도 열심히 하는데 나 하나 살자고 잠깐 자고 일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임승차자에겐 죽음뿐..!!) 졸음을 이겨내려고 커피를 마셨고, 그렇게 조금씩 커피가 내 일상에 스몄다.


 27살이 된 지금의 나는 아예 집에다가 커피메이커를 구비해두고 늘 두 가지 종류의 원두를 떨어지지 않게 사둔다. 아메리카노를 마시곤 “으, 써”라며 인상 찌푸리던 내가 몇 년 사이에 “이제 좀 살겠다”며 아메리카노로 한 숨 돌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 마냥 쓰게만 느껴졌던 커피를 여러 잔 마셔보니 그 쓴 맛의 틈에 고소함이나 달콤함이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된 덕분이다. 초콜릿이나 과자, 빵은 우유와 함께 먹을 때보다 커피와 함께 먹을 때 더욱 맛있다는 것도 나에게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절대 변하지 않는 취향이라는 게 있을까? 예전엔 내가 좋아할 거라고 추호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의 내 일상을 채우고 나를 살아가게 한다. 커피도 그중 하나다. 원체 미각이 둔해 커피의 맛을 구별하는 게 어렵긴 해도 새로운 맛의 커피에 도전하는 일은 늘 즐겁다. 에너지가 후달릴 때 햇빛을 쬐며 커피를 마시면 다시 한번 움직여볼 힘이 솟아나기도 한다. 살기 위해 마셨던 씁쓸한 커피가 이제는 나를 살아가게 하는 달콤한 시간이 된 셈이다.


 그러니 어떤 것이든 처음은 늘 어색하고 때론 거부감마저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마주하기도 전에 팔짱을 끼고 ‘이건 아니라’며 고개를 내젓진 않았으면 좋겠다. 어색한 첫 만남 뒤에 어떤 달콤함이 숨어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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