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오직 별만을 기대했다. 화장실이나 음식 등 다른 모든 불편을 감수하며 반짝이는 별을 보고 싶었다. 드넓은 평야에 누워 별을 보는 것은 내 오랜 꿈이었다.
하늘을 좋아하고 하늘에 떠 있는 모든 것들을 좋아하고, 파란 하늘 너머의 아득한 우주를 좋아하는, 그래서 우주가 배경인 영화가 개봉하면 굳이 아이맥스 상영관을 찾아가서 관람하고야 마는 나는 궁금했다. 빛 때문에 별을 보기 힘든 서울을 떠나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압도적인 자연의 모습 앞에서 나는 울까, 웃을까.
몽골에서 나흘 밤을 잤다. 그리고 두 번 별을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구름이 많았고, 다른 한 번은 빛의 방해가 있는 도시 울란바토르에 있었다. 별과 오로라를 보러 떠났던 다른 여행객들의 후기를 나중에 보았다. 자연은 우리의 기대와 무관하게 변화한다. 날씨는 맑거나 흐리거나 비가 내리거나 구름이 잔뜩 끼었다. 이상기후 현상으로 몽골에서도 폭우나 폭설이 내리는 날이 있다. 여행 내내 비가 내렸다는 후기, 오로라를 보러 캐나다에 갔는데, 결국 볼 수 없었다는 후기.
그러니 4박 5일의 여행 중 이틀이나 별을 볼 수 있었던 건 어쩌면 행운이다. 한 번은 별자리 전문가에게서 강의를 듣고 초원에서 밤하늘을 관측했다. 그와 함께 북극성을 찾고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를 찾고 둥근 고리를 두른 토성도 보았다. 직녀성을 찾고 멀리 떨어진 견우성도 찾았다. 목이 아프도록 밤하늘을 보았다.
다음 날은 푸루공을 타고 더 빛이 없고 더 깊은 어둠을 찾아 캠프에서 먼 들판까지 갔다. 우리가 멈춘 언덕에서 저 멀리 신기루처럼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사람들이 점처럼 모여 사는 곳이거나 관광객들을 위해 설치한 몇 동의 게르일 것이다.
야속하게도 구름이 많아 많은 별을 보지 못했다.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서성이던 때, 바람이 구름을 밀어냈고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었다. 몽골인 가이드가 저쪽에 북두 7성이 보인다며 방향을 알려주었다. 국자 모양의 별 일곱 개가 선명하게 보였다. 전날 밤, 들은 강의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북두 7성이 아니라고 한다. 정확히는 북두 8 성이며 우리 눈으로 직접 관측하기 어려운 작은 별 하나가 큰 별 옆에 가까이 있다. 작은 별의 이름은 미자르, 큰 별의 이름은 알코르.
몽골의 밤하늘은 웅장하고 별은 황홀했지만, 울지는 않았다. 정작, 울컥했던 순간은 별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만난 때였다.
몽골에서의 첫째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게르 근처를 산책했다. 넓은 평야가 보이고 그 뒤로 둥글고 낮은 산과 암석이 있었다. 산 위로 해가 올라오던 그때, 멀리서 내 쪽으로 걸어오던 여자가 있었다. 여러 나라의 관광객이 머물던 숙소이니 아직은 같은 한국인인지를 모르는 채로 가까워졌을 때, 그녀는 한국말로 나를 불렀고, 내가 알아듣자 반갑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행사는 같고 코스가 다른 투어의 관광객이었다. 그녀는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에 진심인 나는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절대로 거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마워하며 열과 성을 다해서 사진을 찍어준다. 사진을 부탁한 이의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나는 그녀의 요청대로 근사한 바위와 산과 산 뒤, 동이 터오는 하늘이 다 담기도록 구도를 맞추고 사진을 찍었다. 그녀를 가까이에서도 찍고 멀리서도 찍고 일반 사진으로도 인물 사진으로도 찍었다. 자연스러운 사진을 남기기 위해 옆으로 걸어보라고 하고 손을 흔들어보라고 하고 하늘을 바라보라고 하고.
사진을 다 찍은 뒤 휴대폰을 건네자 그녀는 고마워하며 내 나이를 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나이도 알려주었다. 올해 77세인 그녀는 혼자 여행을 왔다고 했다. 비용을 추가로 지불하고 게르를 혼자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 친밀한 동행인이 있는 해외 패키지여행에 혼자 오다니 용기가 대단했다. 가족이나 친구와 맞추기가 어려워 혼자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다닌 여행의 횟수가 자그마치 80회가 넘는다고 자랑하는데 목소리가 어찌나 크고 힘이 있던지 놀라웠다.
60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이미 할머니 캐릭터로 살기 시작해서 80이 넘은 사람을 알고 있다. 더한 경우도 보았다. 자녀가 일찍 결혼해서 나이 오십에 손주를 보고 할머니가 된 여자는 그 이후 줄곧 할머니로만 살아갔다. 할머니, 또는 늙은 여자 이외의 어떤 캐릭터로도 지칭되지 않은 채 한결같았다. 다른 사람의 삶을 내 맘대로 판단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갖게 될 할머니, 또는 늙은 여자 이외의 다른 이름을 갖고 싶었다. 할머니, 또는 늙은 여자일 뿐인 나로 사는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혔다. 상상력이나 희망 따위는 필요 없이 정해진 인생을 순서대로 밟으며 살 수는 없었다. 뭐라도 되어야 했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혼자 여행을 즐기는 그녀처럼 나이 들고 싶다. 나도 그녀처럼 목소리에 힘이 있으면 좋겠다. 여행을 즐기며 다음 여행을 계획하는 그녀처럼 살고 싶다. 그녀와 헤어지며 나도 그녀처럼 혼자서 패키지여행에 참여하는 시도를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쓰며 살아온 내게 그것 역시 하나의 도전일 수 있다. 저이는 왜 동행도 없이 혼자 여행을 하나. 친구나 가족이 없는 외톨이인가. 무슨 사연이 있나. 내 상상 속의 인물들은 그렇게 나를 궁금해한다. 가여워한다. 그런데 실제의 인물들 역시 그러할까. 이제는 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설혹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기더라도 그것은 찰나일 뿐이라는 것을. 어쩌면 70대의 나이에 혼자서 세계여행을 다니는 그녀를 근사하게 생각하는 나처럼 나를 그렇게 봐줄 수도 있겠지. 아님 말고.
지금부터 시작하면 십여 년 후의 나는 몇 번의 여행을 시도했을까. 어디까지 가 보았을까. 처음 가 보는 길을 몇 번 걸어봤을까. 다음 여행지를 떠올려보았다. 여러 선택지를 놓고 고르기 시작했다. 이번 가을에는 국내의 소도시를 돌아다니기로 정했다. 처음으로 갈 곳도 두세 군데 골랐다. 속초와 진안, 군산을 다녀올 예정이다. 속초는 여러 번 방문했던 곳이고 군산은 한번, 진안은 처음이다.
나를 울컥하게 한 또 한 사람은 몽골인 가이드이다. 만약 가이드와 단둘이 있던 자리에서 대화했다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사람이 있었고, 나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고 그래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글썽이며 코가 시큰거렸지만 참았다. 몇 차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눈치챘을까. 내가 울고 싶은 기분이라는 것을.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했다. 몇 명은 졸고 있었고, 다른 몇 명은 간식을 먹으며 일행과 대화했고 일부는 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일곱 살 난 딸이 있는 서른 중반의 몽골인 가이드. 여행 내내 가이드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일행들을 배려하고 신경 쓰는 것이 보여서 다른 여행객들 역시 그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패키지여행을 하며 가이드의 무례함이나 불친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안다. 때로는 가이드의 불친절이 기껏 떠난 여행을 망치기도 한다.
그는 친절했다. 무례하지도 않고 선택 관광을 신청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낯선 음식 메뉴 앞에서 당황하는 여행객에게는 자세하게 식재료를 설명해 주었다. 소, 돼지, 닭 이외의 육류는 입에 대지 못하는 내게 알 수 없는 글씨로 쓰인 고기 요리는 겁이 났다. 말과 염소, 낙타, 양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피하기 위해 신경을 써서 메뉴를 골라야 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어떤 제품인지 어떤 제품이 더 좋은지 현지인으로서의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즐길 놀이시설이 없는 몽골에서 자녀를 키우는 그는, 몇 년 전, 한국의 롯데월드에 갔던 적이 있다. 종일 공원 안에만 있어도 놀거리가 넘치고 재밌어서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추억했다. 사랑하는 자녀가 그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할 것이다. 월급의 40%가 세금이고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물가도 비싼 나라. 삶을 이어 나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일하지만, 궁핍한 생활. 몽골의 젊은이들은 그래서 모국을 떠나고 싶어 한다. 어떻게든 탈출해서 다른 나라로의 이주를 꿈꾼다. 그런 몽골에서 그는 아내와 딸을 부양하며 살아가고 있다.
몽골인들은 평균수명이 짧다고 한다. 의료시설도 취약하다. 도시가 아닌 시 외곽지 평야에서, 또는 끝없이 이어진 도로를 장거리 운전하는 중에 죽는 이들도 많다. 다치고 아프더라도 응급 환자를 실어 나를 방법이 없다. 그러니 자신도 언제 죽음을 맞을지 모른다고 했다. 실제로 아직은 젊은 30대임에도 또래의 죽음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고 했다.
태어나는 날을 우리는 예측할 수 있지만, 죽는 날은 언제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마치 죽음이 멀리 있다는 듯이, 아직 내 옆에 가까이 오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하며 살아간다. 미래를 계획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기꺼이 희생한다.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있다. 나도 다르지 않아서 앞으로 남은 노년에 먹고 자는데 필요한 돈, 몸이 아플 때 써야 할 돈 걱정을 한다. 친구들과 만나면 앞으로의 삶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걱정을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남은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 오늘 만나 내일을 걱정한다.
그는 미래를 계획하지 않는다고 했다. 단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고 오늘을 열심히 살아간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러 이곳까지 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노년을 앞둔 내가 이제야 깨닫고 살기로 결심한 것도,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것.
황량한 땅 몽골에 사는 30대의 젊은 남자의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것, 아직 오지 않은 날을 걱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주어진 오늘을 열심히 살 것.
누군가는 30대에 깨달은 것을 누군가는 예순을 앞두고 깨달은 것은 너무 늦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제각각 다른 속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고, 나는 이제야 달리기를 멈춘 사람이다. 이제라도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걸을 예정이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고 오늘을 열심히 살기로 결심한 중년의 한국 여성이 세 시간을 날아 도착한 몽골에서 30대 청년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시큰거리는 콧등을 괜히 만지작거리면서. 덜컹덜컹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그의 이야기를 이어졌다.
또 만날 수도 있겠지요?
공항에 도착한 여행객들은 5일 동안 함께 했던 버스에서 내려 각자의 여행 가방을 끌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몽골인 운전기사에게도 고맙다는 말과 약간의 팁을 건넸다.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젊은 그에게는 아내인지 연인인지 모르겠지만, 다정한 누군가가 있었고, 버스에서 대기하는 동안, 휴대폰으로 대화를 하며 크게 웃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사랑에 빠진 젊은 그가 마치 내 아들 같아 덩달아 기분 좋았던 일이 몇 번 있다.
가이드는 공항 안까지 우리를 배웅했다. 그리고 체크인 줄 앞에서 잘 가시라 인사했다. 여럿이 함께 잘 있으라, 고마웠다고 가이드에게 인사했다. 나는 한 번 더 고마웠다고, 진심을 다해 인사를 전했다. 뒤를 돌아 공항 출구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5일간의 일을 마치고 딸과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몽골인 청년. 그래서일까. 발걸음이 바쁘고 가볍다. 그도 오늘 밤은 익숙한 냄새가 나는 방에서 익숙한 높이의 베개를 베고 평온하게 잠들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오늘을 열심히 산 그에게는 선물처럼 휴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익숙한 냄새가 나는 나의 집으로, 내게 맞는 높이의 베개와 촉감의 이불이 있는 나의 집으로 다시 오늘을 살기 위해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