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옷장은 현란하다. 정신이 없고 어질어질하다. 어느 날, 딸이 걸려있는 옷들을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유는 왜 옷이 다 똑같냐며 엄마 옷이 모두 꽃무늬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무늬 없는 옷을 찾기 힘들다. 어디 문상이나 격식 있는 자리에 참석하려면 나는 내 옷들 앞에서 한참을 고심해야 한다. 가장 무난한 옷은 어디에 있는가.
꽃무늬 원피스와 꽃무늬 티셔츠와 꽃무늬 스커트와 꽃무늬 점퍼가 촘촘하게 걸려있다.
고백하자면 서랍 속에 숨겨진 꽃무늬도 심각하게 많다. 꽃무늬 손수건과 꽃무늬 스카프와 꽃무늬 속옷과 잠옷, 그리고 꽃무늬 가방과 양말이 있다. 그뿐인가, 나는 꽃무늬가 그려진 메모지와 편지지와 공책, 틴케이스, 스티커까지 있는 사람이다. 아참, 더 있다. 내가 그린 꽃 그림이 몇 개더라, 하나, 둘, 셋...
딸의 말에 새삼스럽게 나의 옷장 앞에 서서 보았다. 정말이네, 정말 온통 꽃무늬네, 그렇지만 그대로 인정하기 억울했던 나는 변명했다.
아니거든! 자세히 보면 무늬가 다 다르거든!
사실이다.
똑같은 꽃무늬는 한 개도 없다. 다른 종류의 꽃이고 크기가 다르고 색이 다르고 배치가 다르다. 단언컨대 같은 패턴의 꽃무늬 옷은 없다. 그러고도 밖으로 나가 보면, 왜 이렇게 다르게 아름답고 나의 눈을 사로잡는 꽃무늬가 많단 말인가. 어떤 날은 홀린 듯 그것을 사고, 어떤 날은 충동을 자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잠자리에 누워 후회한다. 그냥 살걸.
전생에 나는 꽃을 심던 사람이었을까. 꽃을 그리던 사람이나 또는 꽃무늬 원피스를 짓던 사람일 수도.
전생이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현생의 내가 왜 화려한 패턴, 다양한 색감의 꽃무늬를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이렇게 알록달록한 색과 무늬가 좋지.
나는 지루한 것이 싫다. 똑같은 것이 싫다. 남과 내가 구분되지 않는 획일성이 싫다. 내 인생과 내 어머니의 인생과 그 윗세대의 누구, 또는 다음 세대의 누구든지 같은 인생이 당연한 순서로 지속되는 것이 숨 막히게 싫다.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니, 이 단조로움이 나를 옭아매는 족쇄 같았고, 나를 가둬둔 회색의 작은 방 같았다.
나는 이런 이야기에 열광한다. 중년의 여자가 있다. 음식을 만들고, 가르치는 대학 교수이다. 당연하게도 나이가 들며 어쩔 수 없이 호르몬의 변화를 겪는다. 삶이 허무해지고 지겹고, 길을 잃는다. 어느 날, 잔뜩 가라앉은 기분으로 버스 안에서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가 잠시 정차했을 때, 버스 옆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갔다. 오토바이를 처음 본 것도 아니니 새삼스러운 광경은 아니다. 그런데 그날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토바이를 한번 배워볼까.
자신의 생각을 주위에 꺼내자, 모든 사람이 만류했다. 그녀의 나이와 오토바이 사고의 위험성과 부상의 구체적이고도 심각한 예시를 들어가며. 가까운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말렸다. 온갖 부정적인 조언과 참견과 잔소리, 간섭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그러니까 오토바이를 타기에는 그녀가 ‘너무 나이 든 여자’라는 것이 그들이 말리는 이유였다.
그래서 그녀는 포기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 모든 반대를 흘려듣고 오토바이를 샀다. 오토바이를 타며 그녀의 갱년기는 극복되었다. 삶이 다시 재밌고 즐거워졌다.
그녀는 여전히 요리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한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나고 요리를 해서 같이 먹는다. 그리고 다시 다른 곳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러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음식을 나눠 먹기 위해 오토바이의 시동을 건다.
요리사 신계숙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출연하는 그 프로그램을 나는 열광하며 보곤 했다.
여전히 요리사이며 교수이며 오토바이를 탈 줄 아는 여자에게서 늙음이나 포기나 체념은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꽃무늬처럼 알록달록하면 얼마나 신날까. 알록달록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알록달록해지겠지.
오토바이 타는 아줌마나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를 보며 저 사람의 인생은 참 다채롭구나, 알록달록 즐겁게 사네,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볼 수 있는 세상. 더 새로운,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무늬를 만드는 알록달록한 여자와 남자들이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요. 뒤에서 ‘나이에 맞지 않게 저렇게 하고 다니냐’ 소리에 기죽지 않고 내 맘대로 살 예정입니다. 엄마답지 않게, 여자답지 않게, 며느리답지 않게, 40대답지 않게, 50대답지 않게. 그런 이상하고 괴상한 속박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얼마나 더 참아야 할까요. 내가 60대가 되고 노년기를 맞이하면 또다시 60대답게 할머니답게 남이 정한 잣대로 나의 인생을 살아야 할까요. 그러다 언제쯤 나는 나답게 살아볼까요.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남 눈치 안 보고 내 맘대로 살다 가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오늘도 참으로 알록달록했습니다.
알록달록하니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