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은 나
지난 4월 초에 친구와 구례에 다녀왔다. 3월에 들러서 즐거운 기억이 있는 <감성촌>에서 고기도 사고, 그때 문을 닫았던 <섬진강 책사랑방>에 다시 방문하려고 간 것이다.
<섬진강 책사랑방>은 KTX 구례구역 건너편 구례읍 신월리 섬진강 변에 있다. 그곳은 3층짜리 모텔 건물을 개조해 만들었다는데, 이곳에는 부산 보수동 책방에서 가져온 약 15만 권의 책이 진열돼 있다고 한다. 나는 들어가자 마자 1층의 예술 서적을 구경했는데, 권진규의 화집이 있어서 잠시 살까말까 고민했다. 그 외에도 예전에 출판되고 지금은 절판된 열화당 문고들이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헌 책치고 좀 비싸거나, 너무 낡은 책은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손이 선뜻 안간다. 고를 수도 없을 만큼 정신없이 많은 책들 가운에서 인연이 닿을 책이 있을까? 반신반의 하면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문학, 에세이 등이 있었는데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여전히 찾기가 힘들었다. 이상 문학상 수상집들과, 강석경, 김채원의 책들을 좀 오래 지켜 보았을 뿐이었다. 그저 사진을 찍으면서 여기는 산책하듯 구경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원제를 그대로 살린 완역본인 <2년 간의 휴가>를 구매하려고 꺼내들었다. 이정도면 되겠지 싶다가, 갑자기 이런 보물 창고에서 인터넷에서 클릭만 하면 살 수 있는 책을 사는게 어쩐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 더 탐색을 해보기로 하고, 구석구석 훑어 보았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우리 나라 학자들이 연구한 논문들을 모아 놓은 오래된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을 발견하자마자 친구에게 당장 달려가 보여주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전 13권을 우리의 북클럽에서 2년여 동안 함께 완독 했기에 흥분된 마음으로 책을 펼쳐 보았다. 이 책은 민음사에서 나온 <프루스트와 현대 프랑스 소설>이라는 책으로 1998년에 출판되었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에서 정년 퇴임하는 홍승오 선생님을 기념하는 논문집으로 이 책을 선물받는 사람에게 주는 편지까지 그대로 끼워져 있었다. 이 책은 거의 새 책과 같은 보관 상태였는데, 지금은 온라인 헌책방에서도 찾기 힘든 것 같았다. 정가는 25,000원으로 15,000원이라는 판매가격 스티커가 붙여져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헌책방이라고 책이 모두 싼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가보다 몇배 비싼 책도 당연히 많았다. 홍승오 선생님의 제자나 후배 학자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양하게 해석한 글들을 보니, 가슴이 정말 두근두근 거렸고, 이 책 때문에 한때 방통대 불문과 라도 가고 싶었던 마음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았다. 또한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거나, 깊이 알고 싶은 부분, 내 나름의 해석을 했지만 확신이 없었던 부분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척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프루스트의 마법에 걸려 버린 나는 쥘 베른의 <2년간의 휴가>를 버리고(?) 이 날의 할 일을 다했다는 기분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프루스트 북클럽 경험과 우리집에서 저 멀리, 섬진강변의 헌책방까지 온 스토리에 딱 맞는 책을 발견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큰 기대 없이 산책하듯 3층까지 구경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1층의 예술책 반대편에는 시집들이 많이 있었고, 외국어 서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갑자기 촉이 발동하게 된다. 외국어 책들 중에 불어 책들도 섞여 있었고, 당연히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도 있을거라는 확신이 생겼던 것이다. 그 앞에 쭈그려 앉아 몇 권의 책을 뒤적이던 나는 회심의 미소를 넘어 또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짧게 요약한 프랑스어 문고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펼쳐보고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책 맨 앞장에는 1979.3.7. 000 이라고 날짜와 이름이 적혀 있었고, 단어를 찾아가며 공부한 흔적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 나온 프랑스어 단어들을 정리한 단어 카드와 당시 이 책을 구입한 서점의 책갈피까지도 꽂혀 있었다. 게다가 비닐로 싼 이 책의 뒷 표지에는 르누아르의 <두 자매>(1881)가 그려진 엽서가 끼워져 있었는데, 이 책 주인의 친구가 보낸 것이었다. 책 주인의 이름 앞에 소속도 적혀 있었는데, '서울대 불문과 4학년'이라고 적혀진 것을 보고 정말 소름이 돋았다. 1979년에 서울대 불문과에 다녔던 학생의 책이 어떻게 구례까지 와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어떤 경로를 거쳐 이 곳에 왔는지 궁금했고, 시작할 때는 절대로 다 읽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비로소 완독한 나에게 딱 이르른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엽서에 찍힌 날짜는 1979년 4월 9일, 친구에게 보내는 그 엽서에는 "그대의 찬란한 가슴 뛰는 봄. 이 봄을 축하함." 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2023년 4월의 봄에 이 책과 이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프루스트와 이렇게 또 연결되는 나의 찬란한 가슴 뛰는 봄, 이 봄을 어찌 축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더욱 재밌는 건 이 책의 주인이 이름이 특이 했다. 이렇게 열정적인 학습 태도 라면 관련 분야에서 뭘 해도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검색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분은 어느 대학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셨고, 지금은 은퇴하신 것 같았다. 그분에게 이 책의 존재와 발견을 알릴까 말까 며칠을 고민을 했다. 만날 수 있다면 직접 이 책에 관한 스토리를 더 듣고 싶기도 했고, 또 이 책을 만나기까지 나의 스토리를 알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프루스트와 나만의 이야기로만 간직하고 있다. 혹시 인연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을까 하면서. 아무튼 '덕질은 보상 받는다' 그리고 '단 한명이라도 누군가는 반응한다' 이 말을 되뇌이며 사는 나에게 또 나의 간절함에 누군가가 응답한 기분이 드는 것은 착각일까. 물론 망상에 이르지 않는 적당한 착각은 삶의 활력이 되기도, 고통을 잊게하는 마취제가 되기도 하므로 모든걸 다 알려고 하지 않고 즐거운 상상에 맡겨두려고 한다. 이 책의 주인은 이 책과 연결된 시간을 잃어버렸고, 그 시간을 내가 되찾은 것이라는. 앞으로 이 책의 시간 여행이 또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