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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ykwariat Sep 21. 2023

그것은 명백한 정지였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사랑하고

그러기를 멈추지 못하고

그런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목구멍 속의 유령>


Love isn’t a choice

Isn’t a way you decide

Deafens and blinds you...

<But living is>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의 기억은 이곳에서 나와 함꼐 걸어다니는 그림자와도 같아. 나를 결코 떠나지 않으면서, 밤에도 나를 깨워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하지. 그 지루한 반복이 새벽까지 나를 깨어 있게 하면서. 그러다 날이 밝아 오면 그 기억도 어김없이 다시 돌아오지.

<심연으로부터>

내 그림자는 스스로의 의지로 여기서 모습을 감춘 것이다. 아니면 어떤 사정이 있어 일시적으로 어딘가로 이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내게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하나니까.

"당신 분신의 존재를 믿으세요. 그가 당신을 받아줄 거예요. 그렇게 믿으세요. 당신의 분신을 믿는 건 곧 당신 자신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그것은 명백한 정지였다.

감각의 마비였다.

당신에게 도달하기 위해  당신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나의 간절함도 전달이 될 수 있을까.

당신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바람’들은 실체가 없는 것일까. 우리 주위를 떠도는 유령들은 왜 메신저가 되어주지 않는가.

결국 나는 상상으로 모든걸 이루어낸다. 합리주의자들이 망상이라 부르는 것. 일이 벌어지기 전에 앞서서 꿈을 꾼다. 이성주의자들이 우연이라 부르는 것. 예외적인 통찰력은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게 한다.  메리 엘리자베스 브래던의 베일 뒤의 꿰뚫어 봄, 루스 설리번의 예지력, 제인 에어의 초자연적 청력, 마사가 듣는 바다소리...​


내가 감지 하는 힘은 왜 모두가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하는 것일까. 나는 실제로 이렇게 온몸이 떨리는데, 가슴이 두근 거리는데, 그리고 눈과 몸 보다도 마음이 먼저 닿은 곳에 온전히 사로잡혀 있는데. 그래서 나는 그 힘을 도구로 쓴다. 그 자리에 분명히 당신이 있다. 나는 당신에게 신호를 보낸다. 혹시 내가 당신에게 보내는 신호가 잡히지 않더라도 나는 수취인 불명의 멍에를 감당할 것이다.

세상에, 그러니까 그런 일은 내 인생에서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무결함이 깨트려지고 오점이 생긴 그때 나의 인생은 끝장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지금 우리가 이런 일을 벌이고 있잖아. 이런 일도 사실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었잖아. 그렇게 따지면 일어나서는 안될 일의 기준이 뭔지도 모르겠고, 무슨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내가 망가졌다거나 인생이 망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거야. 그냥 일이 일어난거지.  시간은 되돌리거나 붙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거고, 나는 일어난 일들을 외면하지 않고 감당하고 수습할 책임이 있는거고. 어쨌든 내 일이야. 그냥 벌어진 일이야. 이제는 절대로 안되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따지면 지금 우리 사이의 일도 일어나면 안되었던 일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을만한 일이 되는 거잖아. 일단 그냥 두어야해. 그래야 내가 잊고 싶은 기억들을 겨우 잊을 수 있을 것 같아. 기억하고 싶은 기억에 자리를 내어 주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아마 나는 소용 없는 걸 알면서 자꾸 그 '일어나면 안되었던 일'들을 되돌리고, 고치고만 싶어질거야. 그 생각의 모래사장에 파묻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을 거야. 생각할수록 나는 그 일이 자동차의 살짝 긁힌 부분을 보듯 거슬려서 기능상 아무 문제도 없는데도 일단 보이는 데 만큼은 아주 완벽하게 매끄러워지고 싶다는 집착이 생겼어. 흠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반짝반짝 광택이 나야 한다고. 그러니까 내가 벌이지 않은 일인데 ‘그런 일’로 인해 내 인생이 악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 참을 수 없단 말이야.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해도 나 혼자 의식이 되어서 견딜 수 없다고. 왜냐하면 나는 잘 살수 있는 사람이고 아무 일 없으면 결국 잘 살거고 무엇보다 나 같으면 ‘그런 일’들을 벌이지 않았을거니까. 그런데 나는 진짜 그런 사람일까. 게다가 잘 사는건 뭘까. 화가 나고 손이 떨려서 기절할 지경이지만 결국 나도 확신할 수 없지. 내가 불리한 상황이 되면 인간은 나약하고 불완전하다고 변명을 늘어놓을 수 밖에 없어. 그런데 그 변명이 결국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야. 다시 물결이 밀려오면 우리는 겨우겨우 견디며 헤엄쳐 나아가야지 뭘 어쩌겠어. 물결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 아니면 그냥 물결에 몸을 맡겨버릴 수 밖에. 따지고 보면 그 물 속에서 우연히 나를 스치는 것들도 사실 내가 오롯이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거야. 우린 그런 존재야. 그래 나는 더이상 저항할 수가 없어. 그저 다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어.

그래서 너도 받아들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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