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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ykwariat Oct 02. 2023

“한적한 곳을 찾으러 떠나겠습니다.”

좋은 기억을 보존하고 불안에 지지 않기 위하여


망각이 흥미로운 이유는 노력할수록 실패하는 일이라서다.

어떤 기억을 잊으려고 할 때마다 그 기억을 떠올려야 해서

정말로 잊고 싶은 기억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다.

문이영, <우울이라 쓰지 않고 - 옥상>​


끔찍한 고통은 몸에 각인되므로 쫓으려 해도 영원히 돌연한 소스라침으로 우리를 깨우는 반면,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은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끝내 잊히고 만다. 나는 삶으로부터 그것을 배웠고 그리하여 되도록 많은 것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 특별히 공연을 보고 돌아온 밤이면, 덧붙여 그 공연이 아름다웠던 날이면 졸음을 붙들고 아직은 생생한 기억을 풀어 내가 본 것들을 남겨두려 했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수첩을 뒤적이며 종종 과거의 내게 감사해하고,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도 현재의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  

목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 꽁띠뉴에>


예전에는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나한테 마치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생긴 것 처럼, 나의 기준으로 세상에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들만 가득한 것 처럼 여기고, 한편으로는 나랑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지 못하고, 화가 극도로 달하다가 우울감을 느끼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푸념을 오래 늘어 놓았던 것 같다.


지금은 어떤 일을 겪어도 예전 처럼 몇일, 몇달이 우울할 만큼의 일은 전혀 없다. 민망한 일도 감수하고, 화 나는 일도 금방 잊어 버리고, 어떤 일이든 당연히 겪을 수 있는 일로 받아 들이고, 말은 삼킨다.


그래도 아프고 힘든 걸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빨리 일상으로 돌아오는 요령이 생겨서 그런 마음을 넘기고, 하루 하루 또 나아가는 데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문득 그 감정들에 대해 되돌아보는 이유는, 상해버린 마음에 갖혀 있다가 일과 관계를 그르쳤던 기억이 잊을만 하면 떠오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단련되었다 해도, 여전히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은 붙잡아지지 않고, 대부분 잊고 싶은 기억이 기억된다. 가끔 친밀했던 관계가 어느 순간 단절이 될 때가 있다. 혹시 너무 내 이야기만 했거나, 안 해도 될 말을 했거나, 잘못된 시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등의 이유가 아니었을까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나를 떠난게 아니다. 그냥 점점 멀어지게 된 것이다. 뜸해진 연락, 전하지 않은 안부 때문에.

더 나아가 나는 어떤 태도로 타인을 대할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얼마전 모처럼 속얘기를 다 털어 놓을 일이 있었는데, 상대방이 나에 대해 어떤 가치 판단도 없이, 혹은 조언도 없이 그저 내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뭔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정서적 안전 기지가 단단하게 생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나?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가끔 상담 받는 선생님도 비슷한 결의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안 들어요. 아무리 진심을 다 한들, 심지어 전문가인 제 조언도 안 듣거든요. 감정은 전염 되니까 00씨가 듣다가 피로감이 쌓였을 수도 있죠. 그런데 상대는 00씨에게 무얼 원했던 것일까요?" 이 질문에 나는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을 순순히 하고야 만다. "네, 그냥 들어주는 거요."

푸념만 늘어 놓던 사람이 어느 순간 듣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섣불리 조언을 해주며 선을 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친밀한 관계에서 나의 말이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는 오만한 생각은 어디서 나온걸까. 내가 좋은 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게 정답일 수 있을까. 정작 상대가 나의 말을 따랐을 때 결과가 똑같이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결국 나는 한계에 이르기 전에 거리 두기를 계속 연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나의 목소리를 들어주면서 나의 삶에 개입하지 않았을 때 나만의 해결책을 찾았듯이, 나도 계속 그저 '들어주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어쨌거나 나는 나를 완성한다는 의미에서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밖에 없고, 내게 일어난 모든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나 자신을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되게 해야만 해." 193쪽,

오스카 와일드, <심연으로부터>

오스카 와일드는 감옥 생활을 하고 연인으로부터 까지 버림을 받는다. 하지만 '유미주의자' 답게 오스카 와일드는 삼키고, 참고, 견디기 보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보인다. 보지 못하는 것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외면일 수도 있다. 애써 모른척 하는 우아한 태도를 넘어 삶의 아름다움과 반짝임들을 어떻게든 발견하려는 '요란한 태도'. 오스카 와일드는 세상의 즐거운 일을 다 해보다가 비난도 받았지만, 결국 세상의 즐거운 일을 다 해봄으로써 세상의 즐겁지 않은 일도 겪었으니, 그는 충만하고 균형 있는 삶을 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굴욕에 침잠하지 않고, 한 걸음 더, 아름다움을 찾아가며 앞으로 나아 가는 것. 그는 화가 난 가운데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기를, 굴복, 실추, 굴욕의 순간은 앞으로 계속 걸어가면 지나가는 것임을 말해준다.

어떻게 불안한 가운데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고작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면서 다른 누군가를 덜컥 믿어버리는지.

세상이 가르쳐주지 않는 것,

사랑이니 용기니 하는 것들을 우리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지.

그건 마치 가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닮았다.

무한하고 무모하다.

문이영, <우울이라 쓰지 않고 - 새벽 바다>

​​

오스카 와일드는 즐거움을 추구하며 삶의 의욕을 되찾으려 했고, 삶과 사람을 사랑했다. 나도 누군가를 그저 덜컥 믿어 버리고 싶다. 그리하여 누군가를 오해하거나, 나의 관점에서만 누군가를 해석하고 판단하기를 멈추고 싶다. 무한하고 무모하다 할 지언정 그저 모든걸 선의로만 해석하는 것이 결국 나를 해치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한편 무슨 일을 저지르든 결과는 결코 예측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는 발걸음이 세상에 꼭 반反하는 것만이 아니라 당연하게 여겨지던 관습과 세상을 완전히 바꾸기도 한다. 내 것을 찾아 먼 길을, 한적한 곳을 찾으러 떠나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고통과 잊고 싶은 기억에 지지 않고, 삶의 아름다움과 반짝임을 발견하면서, 기록하면서. 그리고 불안에 지지 않고 사소한 현재들에- 무화과를 사서 그것에 어울리는 치즈를 고르는 순간, 해가 질 무렵 빛이 길게 들어오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순간, 차가운 화이트 와인을 홀짝이며 갓 지은 솥밥 냄새를 맡는 순간들에 집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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