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랭크 오하라의 <점심 시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나 ‘시집’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식비가 너무 많이 나오는걸 최근에야 깨닫고 식비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아이들이 뭐가 먹고 싶다고 하면 한끼에 2-3만원 하는 배달음식을 두가지씩 시킨 적도 많았고, 한참 성장기라는 이유로 매일 한우를
먹은적도 있으며, 하루에 두어번은 5-6천원 하는 까페의 커피를 마시곤 했다. 아이들이 마트 아이스크림을 먹을때도 나는 꼭 하겐다즈를 고집했다. 종종 일부러 유명한데서 택배로 주문하는 유명 베이커리의 마카롱과 구움과자, 과일 한상자는 나를 위한 사치라며 합리화 했고, 주말 아침에는 스타벅스 등에서 샌드위치 여러개와 무려 일인 일음료!!를 주문하기도 했다. 질 좋은 치즈와 오일에 대한 집착과 더불어 와인은 뒤늦게 알아 간다며 공부한다는 핑계로 한 병당 4만원을 넘기지 않는 다는 한계를 정하긴 했지만, 호기심이 가는 것은 다 맛보려 했고…아무튼 이런 무자비한 소비 습관을 뒤늦게 인지하고 특히 간식비가 많이 드는 나를 통제하기 위해서 이제부터 가성비 괜찮은, 작은 소비에 소소한 기쁨을 주는 간식을 찾아 보기로 했다. 더불어 최근에 도슨트를 시작 하면서 미술관에 출근했던 프랭크 오하라 처럼 <점심 시집>을 써볼까 했으나, <간식 시집>이 나와 더 잘 맞을 것 같아서 제목을 이렇게 정해보았다. 꼭 시의 형식이 될 것 같지 않지만….
바bar나 작은컵 한개에 5,600원 하는, 그나마 요즘 가장 세일 폭이 큰게 3개 9,900원 을 자랑(?)하는 하겐다즈를 먹다가, 최근 4개에 2,000원 하는 바 들을 사기 시작했다. 물론 안 사면 0원 이지만, 일단 0원 보다 1/10 가격으로 먹는 것 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2,000원이면 알뜰하게 동전을 모아가서 계산해도 그다지 부끄럽거나 서로 부담스럽지는 않다. 보통 바를 살때는 옥동자, 쿠앤크, 별난바, 쌍쌍바, 메로나, 와일드 바디 를 사고는 했는데 최근에 자꾸 메가톤바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원래 카라멜 맛을 좋아하는 나이고 예전엔 메가톤 바를 많이 먹었지만 이상하게 선뜻 손이 안가서-카라멜이 땡기면 그럴 바엔 카라멜 마끼아또를 사먹지 망언을 하며- 안 사먹었는데, 일단 네가족 먹을 아이스크림 을 사기 위해 4개 2,000원 코너로 가서 나를 위해 메가톤바를 골랐다.
요즘은 이런 코너에도 아이스크림 회전율이 빠른지 제조일이 무려 2023년 6월 20일이다! (오늘은 2023년 6월 28일) 예전처럼 냉동 식품은 유통 기한이 최대 3년이라며 할인 코너에는 성에 낀 아이스크림이 가득했던 시절은 아닌가보다. 이렇게 제조일이 얼마 안된 신선한(?) 상태는 특히 메로나나 메가톤바 같이 쫀득함이 베이스인 아이스크림에게는 그 정체성을 지키는데 필수 요소 같은 것이다. 나는 일단 갓 일주일여된 제조일에 만족하며 메가톤바를 구매했다.
집에 와서 껍질을 벗겨 보니 역시 성에 하나 안 낀, 광택이 흐르는 짙은 카라멜 빛의, 마치 길이 잘 든 티크 같은 색감의 메가톤바가 드러났다. 역시 맛도 쫀득하면서도 크리미 해서 정말 신선한(!) 맛이었다. 심지어 수제 젤라또 가게의 카라멜 맛과도 큰 차이가 없이 느껴졌다. 할인점 아이스크림이라도 이렇게 갓 만든건 맛있구나, 를 처음 느꼈다. 그렇게 맛을 음미하다 보니, 문득 이제 스타벅스 카라멜 마끼아또를 끊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식비를 줄이기로 마음 먹은 지난달부터 이미 거의 사먹지 않았지만) 나는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를 주문할때 바닐라 시럽은 빼지만, 카라멜 시럽은 가장 많이, 옵션을 선택하고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메가톤바의 매력을 새삼 알게되고 보니, 가성비를 따지지 않더라도 ‘그 맛이 그 맛’ 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달까. 사람이 절박할 때는 초인적 에너지가
발휘 되기도하고, 창의력도 더 강해진다고 하는데, (감옥에 있는 죄수들이 제한된 재료로 온갖 것을 만든다고도 하니) 나도 카라멜 마끼아또 대신 이 메가톤바에 정착하면서 한번씩 다르게 먹어 보고 싶은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검색해보니, 이미 메가톤바 라떼 같은 것도 있는걸로 보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지금 드는 생각은 인스턴트 커피가루로 진하게 커피 베이스를 만들고, 얼음과 우유를 넣고 그 위에 메가톤 바를 작은 큐브로 썰어서 올리는 것. 다음에 그렇게 만들어서 사진으로 기록해 두어야겠다.
오늘의 표현
‘길이 잘 든 티크 같은 색감의 메가톤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