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 시집] 어느날 우리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의 스타벅스에서 우리 집에서 가까운 스타벅스에서 알던 직원을 만나게 된 것에 대하여 - 커피 대신 가끔은 유자 민트 티를
프랭크 오하라의 <점심 시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나 ‘시집’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5월 말에 우리집에서 꽤 먼, 차로 40여분 걸리는, 낯선 동네에 갈 일이 있었다. 갑자기 공공기관에 갈 일이 생겨서 자초지종을 알아보고자 '난생 처음' 그곳에 가야했던 것이다. 그곳에 도착하니, 점심 시간에 딱 걸려서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근처의 스타벅스를 검색해 보았는데, 그 동네가 번화가와 아주 가까워서 분명히 주차할 데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드라이브 스루 지점을 찾아갔다.
샌드위치 하나와 커피 두개를 주문하고, 몇 분 후, 나의 닉네임이 불려졌다. 주문한 음식을 찾으러 가니, 한 직원이 "로즈00 고객님 여기까지 오셨네요." 하는 것이다. 음식만 쳐다보고 있던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서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 보았다. 그분의 직원 닉네임은 몰라도, 낯은 익었다. 그런데 가끔 스몰 토크를 나누는 직원은 있었지만 정작 그 분은 늘 말이 없었기에 나를 아는지 조차 몰랐고, 괜히 말 시키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마저 풍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 닉네임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니 그동안 내가 오해를 했나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어떻게 여기서 딱 만나지?" 싶었다.
그러나 "로즈00 고객님 여기까지 오셨네요."라는 말에 나는 그저 "저는 오늘 이 동네 처음 왔는데, 여기서 만나니 반갑네요." 정도의 말을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딱히 더 이상 할 말이 생각이 안나는데다, 주문이 많이 밀려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반가움보다 신기함이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사소한 우연이 끼치는 영향력을 단 얼마간 만이라도 기분 좋게 느끼면 삶에 즐거운 자극이 되는 것 같다. 또 그게 삶을 기대하며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우연한 만남이 늘 여운이 남기는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사이의 거리감, 예상치 못한 반응, 그 사람의 캐릭터, 말이 오고 가던 그 순간의 공기, 그날의 내 기분, 이 모든게 복합적으로 작용하기에 결과물은 언제나 다를 수 있다. 그래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이렇게 가끔 멈춰서 한번 생각해 보게하는 만남과 인연들은 잠시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끈다. 그리고 꼭 물리적 공간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그곳에 머무는 순간들이 살면서 꼭 필요하기는 한 것 같다.
그날 스타벅스를 나오며, 굳이 "안녕히 계세요" 라는 인사는 하지 않았다. 우연은 그저 우연으로 만들고 싶었다.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그날의 인연을 마무리 하는 것이 아마 서로에게 더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상호 작용의 파편들이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는 것이, 서로는 이렇게 잊혀지겠지만, 그래도 우연히 만났던 사실과 기억은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여기까지 오늘 새벽에 글을 쓰고 오전에 약속이 있어서 오랜만에 집 앞 스타벅스에 갔다. 소비에 대해 각성한 후로, 거의 매일 가던 스타벅스에 거의 삼주만에 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얼굴을 전혀 모르는 직원이 "로즈00님 오셨네요. 지금 사이렌 오더로 주문하신 음료 제조 중이예요. 그런데, 항상 같이 오는 짝궁은 어디있나요?" 하며 말을 거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나를 아는 것이며,
최근에 거의 온 적이 없는데, 짝궁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며, (스타벅스에 오게 되면 항상 만나는 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문득 내가 정말 그녀가 생각하는 로즈00와 동일 인물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오늘 '스타벅스에서 의외의 인물이 나를 알아보는' 이야기를 블로그에 적으며 하루를 시작했는데,
마침 또 '스타벅스에서 의외의 인물이 나를 알아보는' 일이 바로 생기다니,
다들 나한테 왜 이래...싶은, 신기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심지어 이날 스타벅스에서 친구와 드라마 <셀러브리티>이야기를 하고, 오후에는 "네이버 블로거 0000시죠? 인플루언서 활동을 제안 드립니다." 라는 황당한 전화를 받기까지 했다. (나는 인플루언서가 아닌데다 전화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좀 무서웠다.)
아무튼 최근에 여러가지 이유로 스타벅스에 발길을 끊었는데,
이런 일을 연이어 겪으니, 새삼 스타벅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원래 나는 종종 아침 산책 후 스타벅스에 오픈 하자마자 가기도 했고,
친구와 주말 아침 독서 모임을 하기도 했고,
둘째가 초등학생일 땐 하교할 때 스타벅스로 오라고 해서 아이스 초콜릿을 사주곤 했는데,
내가 혼자와서 드라이브 스루로 아이스 초콜릿을 주문할 때면, "오늘은 아들이 안 보이네요." 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다른 지점으로 가게 되었다고 아쉬워하며 인사하는 직원도 있었다.
그럼에도 내 기준에 스타벅스는 '동네 커피숍'이 아니었다. 그저 대형 프랜차이즈의 한 지점이었을 뿐.
그런데 이렇게 돌이켜 보니 내가 다녔던 스타벅스는 '동네 커피숍'이 맞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를 휴대폰 몰입에서 탈출 시켜 준,
아멜리아 호루비가 쓴 <소셜 미디어가 아닌 방식으로 일과 삶을 공유하는 100가지 방법>에 나오는 방법들이 적용 되었던 곳이기도 하니까.
그 방법중 나에게 해당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책 읽기 모임을 주최한다.
-일주일에 한 번 친구를 만나는 시간을 정해 두거나 '오피스 아워'를 정해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업무 미팅을 하거나 친구들과 노닥거린다.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로 공유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동네 커피숍, 책방, 베이커리, 바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점원들과 친구가 되어 본다.
이런 일을 계기로 나와 점원의, 서로에 대한 친밀함의 온도차가 점점 줄어들면서
또 그들의 단순한 친절에 대해 무심함과 과잉 해석의 경계를 오가며,
심지어 그런 다정함이 상술이자, 교육의 결과라고 하더라도,
더 이상 스타벅스를 가지 않겠다던 굳은 결심이 조금씩 흔들리게 되었다.
습기와 뜨거움이 오고가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꽁꽁 싸매지 않아도 되는 가벼워진 옷차림 때문인지,
이런 여름날에는 조금 더 개방적이 되고, 기분이 고조된다.
나의 여름은 항상 이렇다. 우연이 거듭되고, 그 결과 망상이 진행되는.
매년 여름마다 그랬고, 사실 그래서 여름이 좋다.
한편으로는 제목을 정하면서 그 스타벅스 직원에 대해 '알던' 사이라고 해야할지, '봤던' 사이라고 해야할지 뒤늦게 고민을 했다.
한번이라도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이름 정도는 알아야, '알던' 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알던‘ 사이, ‘봤던’ 사이, 그게 뭐가 중요할까.
그냥 계속 마주치던 시기가 있었고, 그 후엔 우연히 만났을 뿐이고, 그 이상의 더 의미가 있을까.
관계는 억지로 규정하기 보다, 그냥 그때 그때 만남의 공간과 맥락 속에 두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친숙하다고 해도 낯설어 할 수 있고, 때로는 낯설거나 처음 본것에도 친숙함을 느끼기도 하니까.
오히려 불편한 관계가 '아는' 사이 일 수도 있고, 좋은 관계가 그저 '보는' 사이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스타벅스에 대해 다양한 논란과 불만이 있지만,
긍정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자면,
나는 종종 커피 대신 유자 민트티를 마시는데, 커피 외에 그런 선택지가 있는 것이 좋고, 더군다나 유자와 민트의 조합도 맘에 들고,
스타벅스는 다른데와 달리, 외부 음식이 반입이 되기에 그런 '개방성'도 좋다.
그렇다면 그 개방성을 확장하면 스타벅스를 '커뮤니티 공간'으로서도 내가 활용할 방법이 많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오직 두 사람'의 독서 모임을 하고 있지만, 여기서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무슨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오늘의 표현
‘오히려 불편한 관계가 '아는' 사이 일 수도 있고, 좋은 관계가 그저 '보는' 사이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 다시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보니 어색하지만 반가운 마음을 최대한 끌어올려 하이파이브를 하기는 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