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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ykwariat Jul 04. 2023

[간식 시집] 초콜릿, 사치와 모험 사이

* 프랭크 오하라의 <점심 시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나 ‘시집’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간식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다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실 카라멜 보다 초콜릿이었다.

요즘은 초콜릿을 적게 먹으려고, 또 그저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구매를 줄이려고 하는 중이라서 초콜릿에 대해 관련된 이야기가 딱히 없다.

하지만, 갑자기 옛날 화려했던, 초콜릿과 함께한 시절이 생각나기 시작하니, 구매 이력을 한번 정리해보면 어떨까 싶어졌다. 그냥 그때의 즐거웠던 이야기들을.


초콜릿 해외 직구 이야기가 특히 할 말이 많은데, 그에 앞서서 우리 나라에서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 가게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초콜릿은 원래 좋아했지만, 수제 초콜릿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그릇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부터였을 것이다. 미국에서 신혼 시절을 보내고 빌레로이앤보흐의 그릇을 좋아하지만, 하나도 구매하지 않고 귀국했기에 그 아쉬움을 네이버의 '빌레로이앤보흐'라는 그릇 까페에서 회원들의 그릇을 구경하며, 가끔 공동구매도 하며 달래고 있었다. 귀국 후 연고도 없는 대전으로 이사간 외로움과 육아의 고단함을 그릇 구경을 하면서 보냈다니...지나고 보니, 참 단순하면서도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릇에 대한 관심은 홍차와 초콜릿으로 이어졌다. 까페 회원들중 한 분이 초콜릿 클래스를 열었고, '마리아쥬 프레르의 웨딩 임페리얼이 우러난 가나슈'를 넣은 수제 초콜릿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레시피였다. 그 레시피로 초콜릿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원도 생겼나고,  다양한 초콜릿 전사지와 이태리 초콜릿 몰드를 구매하기 위해 해외 직구에도 눈을 떴던 시기이기도 하다. 초콜릿 클래스를 듣기 위해 18개월된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서울에 가는 것은 당시의 나에겐 큰 모험이었다. (이런걸 모험이라 생각했다니, 다시 한번 정말 단순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압구정동 골목의 작은 공간을 빌려서 열린 초콜릿 클래스는, 어두운 조명 아래, 바깥은 한겨울, 온화하고 여유 있는 사람들과 조용하게 흐르는 시간안에 있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이어지던 클래스 중간에 , 몰드에 부은 초콜릿이 굳기를 기다리며 점심으로 너구리를 끓여 먹기도 했다. 빌레로이앤보흐 그릇으로 셋팅한 긴 식탁에 마주 앉아 카페 아이디로만 보던 회원들과 이야기하던 순간을 떠올리니 진짜 아련하고 그립고 가슴 한쪽이 뻐근해져 온다. 요즘은 인스타만 봐도 좋은 것, 예쁜 것, 감각적인 것이 넘쳐나지만, 마음이 크게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그때만의 결핍(뭐든 구하기 어렵고, 그런걸 좋아하는 사람은 적고)이 불러오는 절박한 분위기가 있긴 했던 것 같다.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던 기억인데, 이렇게 다시 떠올려보니, 두근두근하고 뭉클해진다.


아무튼 그 수제 초콜릿 클래스를 듣고 나는 '발로나valrhona' 브랜드를 알게 된다. 그 후 발로나에 대한 사랑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데, 겨울에는 꼭 딸기와 바나나를 찍어 먹기 위해 70% 과나하를, 나의 티타임을 위해서는 40% 지바라라떼나 35% 둘세를 1kg씩 사기도 한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가나슈를 넣은 초콜릿을 집에서 종종 만들어 먹고는 했는데, 지금은 귀찮아서 그냥 커버춰 상태로 먹는다. 혹은 다크 초콜릿은 살짝 녹여서 아이스크림 위에 뿌려 먹거나. (그렇게 먹으면 초콜릿이 아이스크림 위에서 다시 굳으면서 쫀득한 상태가 되는데 그때가 정말 맛있다.)


그리고 그 그릇 까페에서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초콜릿 가게, 삐아프Piaf 의 탄생 과정을 보게 된다. 삐아프의 사장님 부부도 빌레로이앤보흐 까페의 회원이었는데, 남자분이 직장을 그만두고 프랑스의 르노트르(Ecole LeNôtre)로 연수를 간 이야기를 까페에 올려서 화제가 되었었다. 귀여운 세살 남짓한 아이를 키우는 젊고 상큼한 외모의 부부였다. 빌레로이앤보흐 그릇을 곁들인 그 가족의 식탁 이야기도 너무나 아기자기하고 맛깔스러웠다. 아무튼 덕분에 한동안 나도 르노트르에 가서 초콜릿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그리고 그 부부는 역삼동에 공방을 차려서 소규모 클래스를 운영하다가, 드디어 신사동에 삐아프를 오픈하게 되었던 것이다. 피아프 공간에 가구가 하나하나 채워지는 과정도 온라인으로 지켜보면서, 그 초콜릿 색을 닮은 마호가니 빛의 가구가 들어올 때 설레임과 부러움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나는 서울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일부러 꼭 삐아프에 들러서 초콜릿을 샀다. 삐아프에 가기 위해서 그 동네의 골목을 돌아다니는 것 만으로도 또 얼마나 두근두근 하던지. 그리고 예전에는, 2010년 초중반까지, 그렇게 나의 기대(분위기, 재료, 맛, 감각, 스토리)를 충족시켜주는 공간이 참 드물기도 했다. 그래서 더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그 후로는 삐아프를 잊고 있다가, 코로나로 답답했던 이년여전 어느날,  택배가 안되는 삐아프지만 퀵으로는 된다길래,  광주에서 퀵으로 주문해 보았다. 그랬더니 반나절만에 초콜릿이 집으로 왔다. 물론 당연히 퀵비가 많이 들었다. 하지만, 서울에 가도 그 삐아프 매장에 가기는 사실 복잡하고 힘들뿐더러, 삐아프에만 가기 위해 광주에서 일부러 갈 수는 없으니까, 라며 합리화 했다. 그렇게 두어번 하고 나니,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져서, 다행히 '내가 고른 세상에서 단 하나의 맛'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 삐아프에서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돔 형태의 천일염 버터 캐라멜인데, 이렇게 쓰고 보니, 나의 이삼십대를 걸쳐 이런 저런 추억을 안겨준 삐아프에게 갑자기 고마워진다.


그리고 나의 초콜릿에 대한 집착은 해외 직구로도 이어지는데..식품이지만, 초콜릿은 상온에서 한달 이내에는 보관이 가능하니까 주문할 수 있었다. 아이들하고 해외 여행을 할 때는 꼭 가고 싶었던 초콜릿 가게 근처를 지나가면서도 시간에 쫓기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정작 못 간적이 많았다. 한국에 와서야 아쉬움을 달래려 인터넷으로 프랑스나 벨기에의 초콜릿 가게들을 구경하다가, 그 가게의 온라인 샵에서는 유럽 내에서는 무료 배송이 가능한 것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 배송 대행지 보다, 독일 배송 대행지가 항공 운임이 더 저렴해서 독일로 배송하면 조금 더 절약할 수 있었다. (이정도가 절약의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지만)  프랑스의 앙젤리나 Angelina Paris나 장 폴 에방 Jean-Paul Hevin, 벨기에의 피에르 마르꼴리니  Pierre Marcolini 에서 프랄린, 잔뒤야, 트러플, 태블릿 등을 사면서 해외 배송이 가능한 것에 대한 신기함과, 신기함을 가능하게 하는 전능함, 그리고 맛을 누리면서 행복했다. 마리아쥬 프레르Mariage Frères 는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 직배송이 가능했는데, 파란색 찻잎이 얹어진 얼그레이 프렌치 블루 티초콜릿을 좋아했다. (단종 되었는지 지금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보이지 않는다.) 포트넘앤메이슨 Fortnum & Mason은 직배송이 가능하지만, 배송비가 비싼데다,  가격이 조금만 초과되어도 관세가 어마어마 한테, 약 4년전 미국에 있을 때, 한국보다 해외 배송비가 훨씬 싸고,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되어서 그때 호기심을 많이 해결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도 윌리엄 소노마에서 포트넘앤메이슨을 취급하기는 했지만, 종류도 많지 않고 역시 비쌌다. 포트넘앤메이슨의 홍차는 개성이 뚜렷하지 않아서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포트넘앤메이슨의 식품들은 좋아한다. 특히 레몬 커드를 넣고 초콜릿으로 코팅한 비스킷, 샴페인이 들어간 초콜릿 트러플이 맛있었다.


미국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내가 미국에서 좋아했던 초콜릿 가게는 L.A. Burdick Chocolates 이었다. 시카고 여행에서 추억의 Ethel's 초콜릿 가게를 찾다가 망한걸 알고 실망하던 차에 길에서 우연히 만났던 초콜릿 가게였다. 내가 뉴욕 스트랜드 책방의 에코백을 메고 있으니, 뉴욕에서 왔냐고 물어서 점원이 참 친절하다고 느꼈다. 이 초콜릿 가게의 창립자는 스위스 여행을 하다가 초콜릿에 빠졌다고 한다. 초콜릿 종류가 무척 다양해서 고르다가 초콜릿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잔뒤야와 가나슈에 유자, 얼그레이, 고춧가루, 심지어 사프란 마저 들어간다고 했다. 그곳에서의 기억이 좋아서, 나중에 올랜도로 돌아와 답장이 오지 않을걸 알면서 보낸 엽서가 기억 난다. 이 초콜릿 가게는 보스턴이 본점이라서 나중에 보스턴 여행을 갔을 때 일부러 방문하기도 했다. 시카고 매장과 달리, 보스턴과 캠브리지 지점은 고풍스러운 외관에 핫초코를 꼭 마셔야 할 것 같은 아늑한 인테리어의, 노란색 불빛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초콜릿 이야기는 심지어 가나 초콜릿에서도 할 말이 많지만-노트에 가나 초콜릿 포장지를 하나하나 붙여 모으던 기억-, 아무튼 모처럼 이렇게 사치와 모험 사이를 누렸던 기억을 불러오니, 나만의 초콜릿 이야기를 쌓아 온 지난 시간들이 소소한 행복으로 채워진 것 같아서 기쁘다. 또 이런 행복을 만들고 찾아볼 궁리를 해야겠다.


오늘의 표현

‘이런걸 모험이라 생각했다니, 정말 단순하고 행복했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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