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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만들어진 무의식의 패턴

자신의 삶이  챗바퀴를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

여러분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미로에 빠진 사람처럼, 삶이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고 느끼실 때가 있나요? 마치 미로에 빠진 사람이 출구를 찾기 위해서 이곳 저곳을 시도해 보지만, 출구를 찾지 못하고 같은 곳을 맴도는 경험 말입니다. 잘못된 만남을 반복한다거나, 인생에서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상황을 하는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러한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지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절망하고 좌절했습니다. 마치 올가미에 빠진 들짐승이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지만,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올가미가 더 목덜미를 조여오는 것과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끈기를 가지고 한번더 시도하면 해결되겠지 하고 시도했지만, 정확한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동일한 방법을 반복하고 있었던 저의 모습에서, 구체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게 되면, 결국은 자포자기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은 어린시절 학습했던 패턴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서 고통을 경험했을때,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수많은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이때 아이들은 부모가 틀렸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고통이 있을 경우에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자신이 무엇인가를 바꾸어 가면서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게 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약간이라도 고통이 줄어들어드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반복되면, 그러한 패턴을 학습하게 되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행동패턴을 반복하게 됩니다. 한가지 무서운 것은 이러한 행동패턴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반복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지식이 제한되고, 가지고 있는 자원이 별로 없기 때문에, 어떠한 해결책을 찾을때 마음을 이용하거나 제한된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어린시절 만들어진 대응방안은 어른이 되어서 사용하면 독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정체성을 만들어내게 되면, 이러한 부정적인 정체성은 그 사람의 일평생을 좌우하게 되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가 치명적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알콜중독자일때, 만약 아버지가 술주정을 하면서 집안의 물건들을 부수게 되면, 이것은 아버지의 잘못이고, 만약 사회에서 이러한 사람을 만나면 당연하게 만나지 않고 상대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입장이 다릅니다. 부모가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더라고, 부모를 떠날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내면에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해서 아버지가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알콜중독자는 자신이 술을 마시면서 자녀들이나 배우자 핑계를 내세울수 있습니다. 이때 어린 아이들은 부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어른이라면 자신의 감정과 말, 그리고 생각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신이 무책임한 행동을 하고 책임을 아이들에게 돌리는 것은 어른의 행동으로 볼수 없습니다. 그럴경우 아이들은 내가 조금 더 집안 일을 많이 하거나, 내가 조용히 있으면 아버지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시도를 하게 됩니다. 즉 자신에게 벌어지는 고통스러운 상황은 자신의 행동과는 전혀 무관하고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전적으로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의 잘못인데, 이러한 상황을 자신의 잘못으로 판단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패턴이 될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항상 분노의 감정이 많았던 아버지를 대하는 방법으로 철저하게 침묵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있는듯 없는듯 집에서 지내고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고, 그저 주는 밥먹고, 조용하게 학교에 가서 말썽 안부리고 지냈습니다. 공부를 잘한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아무 사고 안치고 지내면 눈에 띌 일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수동적인 삶은 저에게 그나마 아버지의 분노와 불안에서 저를 어느정도 구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상당히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기본적인 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부모가 챙겨주면 받고, 아니면 말고 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이상의 어떤것을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은 저에게 상당한 수치감을 유발했기 때문에, 이야기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과 어떠한 정서적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는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끝이 났기 때문에, 결국은 한 집에서 남처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수치감과 외로움은 집안에서 지내면서 항상 느끼는 감정이었지만, 아무도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 하지 않았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것처럼 지냈지만, 그 속에서는 분노와 수치, 그리고 억울함 등, 지금 돌아보면 상당히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저의 내면에 쌓여있었고, 그러한 감정들을 알아차리지 못한채, 마음속에 쌓아두고 살았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패턴은 회사에서 사회에서 저보다 지위가 높은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는데 기준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좋은 직장 상사들도 있었지만, 제가 그들에게 갖는 선입관은, 모든 권위자들이 나의 아버지와 비슷할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그들을 대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배운 생존 방법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면서 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저의 대인관계는 깊이있는 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상대방이 저를 대할때 불편하다고 느끼는 상황을 만들곤 했습니다. 


저의 의견이나 감정을 가정에서 나눈적이 없다보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표현하는데 서툴렀습니다. 그리고 수동적인 인간관계를 이어나갔기 때문에, 항상 회사에서 인간관계가 어려웠습니다. 사실 실력도 있었지만,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잘 못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회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파악하는 것이 늦었습니다. 한마디로 사회생활을 하는 능력이 엉망이었던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항상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떤 문제인지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할수도 없고, 그저 혼자 그 모든 불확실함과 혼란함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삶을 살았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지금도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이러한 자세가 자동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패턴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러한 패턴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학습된 것이고, 세상에는 자신의 부모와 다른 사람들도 존재하고 그러한 사람들의 특성을 반영해서 대인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이 없이, 무의식의 세계에서 학습된 패턴대로 삶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조금 불편할지 몰라도 제법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경우는, 계속 살아갈수가 없었습니다. 여러가지 대인관계에서 한계에 부딛힌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거기서 벗어나야만 했습니다. 그 깨어나는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그 지옥같은 세계에 살기는 싫습니다. 이제는 그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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