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해가는 기계 미학
난 어릴 적 자동차에 열광하던 소년이었다.
어른이 되면 자동차를 빚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그 꿈을 간직하기에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했다.
오늘 라페라리 프라모델을 처음 조립해봤다. 얼마만의 프라모델 키트 조립인지 모르겠다. 페라리가 오랜만에 하이퍼카를 출시하고 타미야가 재빠르게 키트를 만들어 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의 이 취미는 16년은 더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주로 메카닉보다는 역사적 고증과 기계적 리얼리티 표현이 가능한 정통 밀리터리 스케일 모델링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당시에도 이미 이 취미는 시대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모양새였다.
오랜만에 모형을 손에 쥐니 참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십여 년 동안 모형쟁이들 간에 오가던 논쟁이나 유행들을 떠올려보게 되면서 그 모든 것들이 낯설어진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모형을 한창 하던 당시에는, 저품질 대량생산으로 빠르게 치고 올라오던 중국산 키트에 대한 경계와 관심이 주된 관심사였다.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정교하고 편리해서 모형 하는 맛이 안 난다는 이유로 일본 키트를 비판하던 모델러도 생각이 난다.
프라모델이 담고 있는 향수는 대체적으로 기계적인 미가 물씬 풍기는 것들이다. SF로 전이된 메카닉 프라모델들도, 원래 전통적으로 있어왔던 밀리터리 프라모델들도 모두 공통적 기반은 기계 미학이다. 볼트와 너트가 철판을 조인트하며 생겨나는 수많은 요철과 금속패널들이 만들어내는 디테일들, 바퀴와 톱니바퀴와 날개와 핸들과 조종석과 조종석에 있는 수많은 아날로그 계기판이 가지고 있는 디테일들, 참 자잘하고도 복잡한 금속 집합적 형태들인데, 모델러들이 흥분하는 형태적 지점은 바로 거기가 아닌가 싶다.
너도나도 최신의 최첨단의 제품을 선호하던 세기말과 21세기의 시작 지점이었지만, 대부분의 모델러들이 최종적으로 안착하게 되는 지점은 주로 2차 세계대전물들이었다. 나는 한편으로 어린 소년으로써 최신예의 가장 강력한 무기들이 프라모델로 출시되기를 바랐었는데 이상하게 잘 출시되지 않을뿐더러 출시되어도 그다지 멋지지 않았다. 일례로, 최신예 전투기인 f22랩터는 압도적인 성능으로 전 세계 최고의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모델러들에게 별반 인기가 없다. 왜냐하면 스텔스 기능에 가장 최적화되어 코팅 처리된 표면은 너무도 미끈하여 아무런 디테일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또 iOS가 7으로 넘어가는 가장 상징적인 시점으로부터,
이 세상은 일상에서 물리적인 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오랜만에 프라모델을 마주하자 참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꿈의 엔진이었던 V12기통 자연흡기 엔진이 지금은 마지막 자연흡기 열두 개 피스톤의 하이퍼 페라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미 라페라리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조만간 이 엄청난 기계적 굴곡과 디테일들이 살아있는 동력 발생장치는 매끈한 배터리와 전자장비에 자신들의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머지않아 내연기관은 모형이나 영화와 게임 속에서만 향수될 것만 같다. 그래서 지금 난 모형을 만들면서 묘향 향수와 아쉬움을 느낀다.
내 손은 곧 박제를 예고하는 최신 유물을 만들고 있더라.
201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