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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K Nov 04. 2019

프랭크 게리로 들여다보는 건축 문화

게리의 서울 상륙을 기념하여



얼마 전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공간이 서울에 오픈하였다. 건축계에서 그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을뿐더러 소위 빌바오 효과로 한국의 공무원들에게도 유명한 그이기에, 그의 서울 상륙은 큰 화제를 몰고 왔다. 이번에도 그는 화려하고 복잡한 형태의 건물을 도시에 심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번 디자인이 ‘동래학춤’에서 도포 입은 선비가 그려내는 춤 선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기사에는 단시간에 즉석으로 그린 듯한 스케치 한 장이 같이 실려있었다. 


하지만 대게 이런 인터뷰는 사실 반쯤 뻥이다. 나는 그가 정말로 ‘동래학춤’에서 주된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명 건축가들이 디자인을 먼저 하고서 나중에 이야기를 찾아 꾸며대고 여기에 냅킨 스케치 한 장 그려내는 것은 아주 전형적인 영업방식이다. 이러한 수법은 많은 사람들이 형태는 무언가를 함의하고 지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하지만 형태는 그냥 형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해당 디자인의 건축적 성취를 논할 때만큼은 건축가들의 '썰'이 행여 사실이라 할지라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자나 게리는 도대체 왜 건축가로서 유명해진 걸까? 게리는 새로운 형태의 건물을 과감하게 디자인해옴으로써 유명해진 인물이다. 당연한 듯 보이는 이 사실은 사실 서구 건축의 주요한 세 가지 특징을 암시한다. 첫 번째는 건축의 파워게임이 건물의 ‘새로운 형태’를 중심으로 벌어진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건물을 하나의 ‘오브젝트’로서 형태가 부여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앞서 언급한 두 사실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 사실들은 수많은 사람이 개입하였을 건물-짓기에서 도대체 왜 건축가 개인만 유명해지는 현상이 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서구는 전통적으로 모든 것을 오브젝트로 보는 문화가 있었다. 그래서 주요 건물들은 오브젝트로서 그 형태가 질서를 부여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이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독립적인 분야로 간주되었고, 이 행위에 대한 성취는 별도의 크레딧을 받아왔다. 다시 말해, 건물에 부여될 형태적 질서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감투가 주어졌다. 이는 심지어 구체적인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으로 이어지기 전 단계의 형태적 아이디어를 의미했다. 사실 이는 매우 독특한 문화인데, 왜냐하면 하나의 건물이 실체가 되기까지는 엔지니어링을 포함하여 수많은 분야와 사람들의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유독 조형의 시작점에 한해서만 개인에게 공로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는 '디자인으로 발현될 수 있는 조형적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별도의 직업군으로 존재하게 되는 기틀이 되었다. 좁은 의미의 건축가이자 유명해질 수 있는 건축가의 본연의 임무가 바로 이것이다. 또한 이는 주요 건물의 기초 형태를 공모의 방식으로 공급받는 관습으로 이어진다. 바로 현상설계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들은 새로운 형태를 향한 파워게임이 하나의 전문 분야이자 장르로서 작동하는 기틀이 된다. 이후의 단계는 일단 모르겠다며 선을 긋고서, 오직 무언가로 발현될 가능성을 지닌 기초 형태와 그것의 논리만 탐구하는 영역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는 이를 받아주고 수습해주는 인프라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다. 


이에 대하여 아마 한국인에게 가장 어색할 부분은, ‘이 것이 별도로 존재할 만한 내용적 가치가 있는가' 일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한국은 건물을 오브젝트로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 형태에다가 조형적 질서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더더욱 한 적 없으며, 게다가 이 것만 파고들 수 있을 거라곤 누구도 상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건물을 짓는 데는 엔지니어링과 디자인만으로도 아무런 문제없다. (심지어 디자인 없이도 건물은 지어진다) 그래서 실질적인 관점으로 보면 건축은 하등 필요 없는 것이 맞다. 그리고 서구에서도 모든 건물에 건축을 투영하려고 하진 않았다. 오히려 건축은 소수를 위한 귀족적 문화의 성격이 강하다. 건축 문화가 널리 퍼진 것은 귀족사회가 대중사회로 이관되는 흐름과 궤를 같이할 뿐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건축은 서구화와 함께 한국에 수입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한국은 제대로 된 건물 자체가 모자라 이를 사회 전체에 공급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건축이라는 개념이 없는 사회에서 건축학과에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역할과 주어지는 진로체계는 이러한 현실에 기반하였을 것이다. 참고로 대부분의 건물은 적당한 디자인과 기능만 갖춰진다면, 딱히 별도의 조형적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만약 당시에 서구 건축을 수입해오는 이가 있었다면, 그 보따리에 담긴 짐들이 놓일 곳이 마땅히 없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과연 섬세한 맥락의 건축문화가 제대로 수입될 수 있었을까? 


건축은 문화적 인프라가 없으면 실질적인 분야에 언제든 흡수될 위험에 처한다. 특히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이 흡수한다. 이는 건축가의 머릿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건축에서의 형태(가 내포하는 이미지) 언어와 이 것의 질서에 관한 전문가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흉내쟁이는 많다. 그리고 이 건축 행위가 언제 필요하고 언제 필요 없는지 구분하지 못하여, 쓸데없는 곳에서 조형을 과잉 추구하거나 정작 필요한 곳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 자주 나타났다. 일례로 아직도 우리는 왜 세종시의 건물이 구불구불한 뱀 모양이어야 하는지, 가운데 타워를 세우면 왜 안 되는 건지에 대해서, 특정 조형에 관한 어설픈 집착만 맴돌 뿐 그 이상의 담론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한국이 어떠한 상황이든 게리는 지금도 유명하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건물을 짓는다. 바꿔 말해, 오늘날 현대건축의 최전선은 여전히 새로운 형태를 향하여 미적 성취와 알리바이를 모두 쟁취하려는 파워게임이 진행 중이며 우리는 그 영향력 아래에 있다. 그리고 이 파워게임의 지분은 건물을 지음으로써 챙기는 것이 아니라, 전례 없던 아이디어를 제시함으로써 가질 수 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지어지지 못할 아이디어도 이제는 더 거리낌 없이 쏟아져 나온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들은 무언가로 발현될 가능성을 지닌 기초 형태와 그것의 논리의 탐구에만 몰두한다. 그리고 지어지는 건물들을 비웃으며 건축계에서 자기 지분을 확실히 챙겨간다. 그렇게 이들이 나중에 유명해지면 또 같은 방식으로 한국 로컬 파트너를 하나 두고서 청담동에 프로젝트를 하러 올 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이 글을 다시 공유해야지 ;)






표지 이미지: 구글 이미지 검색 Frank Gehry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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