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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리 Jul 13. 2021

스물 초반의 연애 감정.

그때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 - (1)

1.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해.

고등학교 졸업 후 한눈에 좋아하게 된 오빠가 있다. 아는 선배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이제 갓 스무 살 된 나의 눈에 그는 너무 멋지고 똑똑하고 재미있고 자상했다. 어떻게 하면 그 오빠의 마음에 들까, 카톡을 할 때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답장이 무척 느렸고, 그 오빠의 답장 하나하나에 이런저런 의미부여를 하며 얼굴이 빨개지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상상 속에서 만큼은 연인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우리'의 모습 때문에, 그 오빠에 대한 마음이 커져만 갔다.


그렇게 겨울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어, 오빠와 같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운이 좋게 오리엔테이션에서도 같은 조가 되었다. 나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오리엔테이션 내내 나를 챙겨주었고 관심을 가져줬다. 개강 파티 때, 그 오빠와 친한 선배 언니가 나에게 말해주기를, K (그 오빠의 이름)가 너를 참 괜찮게 생각한다고, 잘해보라는 식으로 말을 해 주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척 설렜다. 오빠에게 직접 들은 것도 아니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비치는 그 말에, 그 오빠가 다른 사람에게 나의 얘기를 했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 기뻤다.


하지만 이제 갓 입학해서 선배 언니들과 동기들 눈치가 보였던 나는, 최대한 담담히 반응을 하며 아무 관심이 없는 듯한 연기를 했다. 이미 첫 며칠을 무관심한 연기를 너무나 탁월하게 한 탓에, 그 이후 나의 어설픈 몇 번의 노력에도 그냥 우리는 한 학기에 몇 번 연락을 안 하는 사이로 전락했다. 하루는 밤늦게 도서관에 가는데, 그 오빠가 새로 생긴 여자 친구와 손을 잡고 교정을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하필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는 나와 딱 마주쳤고, 나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왠지 서운했고 미웠지만, 그 오빠의 잘못이 아닌걸. 그냥, 나 자신이 조금 초라하게 느껴져서. 조금, 부끄러워서.


나에게 말을 전해준 그 언니에게 K 오빠와 잘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어야 한다. 그 오빠가 오리엔테이션에서 나에게 눈을 맞추려고 할 때, 일부러 딴 곳 보는 척 피하지 말고 같이 눈 맞춰야 했다. 좋아한다면 티를 내야 한다. 사랑받고 싶다면, 나도 그만큼 사랑해야 한다. 이토록 진심으로 가슴 설레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이런 운이 내 인생의 문을 두드렸다면, 감사히 내 것으로 만들어 보는 거다. 부끄럽다고 자신의 마음을 숨기느라 앓지 말고, 조금 서툴러도 괜찮으니 그에게 너의 감정을 전달해 보는 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네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 어디에 있고 싶은 지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성이 생겼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행운이니까.


2.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

2학년 때, 친구처럼 지냈던 3학년 선배로부터 "내가 본 모든 사람들 중에 네가 가장 아름다워. 이 말 꼭 해주고 싶었어."라는 고백을 받았다. 어느 날 저녁, 학교 도서관 앞에서. 내가 그에게 댄 핑계는, 성의가 없었다. "지금은 바쁘고, 난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고맙지만, 미안해. 하지만 나는 너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며칠 후, 그에게 불같이 화를 낸 일이 생겼다. 교내 식당에서 자신을 피하지 말라는 그의 반복적인 문자와 이메일에, 그러면서도 이제 친구로는 못 지내겠다는 그의 말에 짜증이 났다. 나는 그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고, 내 모든 행동을 본인과 연관시켜서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벌써 4년이나 된 문자이지만 지금 다시 들여다보니 다 읽기에도 힘들다. 너무했다. 그렇게 예민하게 화를 낼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누군가에게서 들은 가장 진심 어린 말 한마디.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왜 하나도 설레지 않았을까. 내가 나 스스로를 가장 싫어하고 힘들어했던 시기였지만, 그런 나를 좋아해 주는 그 사람에게 더 차분하고 편하게 대해 줄 수는 없었을까. 그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줄 수는 없었을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나는 갑이 된다. 이런 갑을 관계에서, 내 분명한 의사 표현은 하되,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은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단 한 칸도 없었던 과거의 나에게, 취업이나 시험이나 다이어트보다, 너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는 단 하나의 중요한 것은 너와 같이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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