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저녁을 허용한다.
배가 고프면 온 몸의 감각이 살아난다. 배가 고프면, 한 번에 5초 정도 지속되는 고통이 10분, 30분 또는 한 시간에 한 번씩 나를 자극한다. 그 자극은 내가 몸의 감각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한다. 속이 비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해 주려는 것처럼, 무엇인가 내 속을 파는듯한 느낌이 든다. 누군가 내 위장을 꼭 비틀어서 짜는 것 같다. 그렇게 내 위는 나에게 음식을 달라고, 그의 불만족을 끊임없이 표현한다.
나는 이러한 배고픔의 감각을, 어두운 방 안에서 만 원짜리 무드등을 켜놓고 침대에 누워서, 넷플릭스나 책, 유튜브를 보며 반복적으로 무시하는 것에 익숙하다. 20대 초반에는 배고프지 않은 상태로 잠에 들면 두 시간 이상 잘 수가 없었다. 포만감 있는 상태로 침대에 누웠을 때, 내 위의 무게가 어색했다. 배에 힘을 풀고 척추를 마음 놓고 펼 수가 없었다. 허리를 펴면 음식이 들어가서 커진 내 위의 존재감이 더욱 잘 느껴졌다. 그 위가 차지하는 공간이 당황스러웠다. 배부른 상태로 침대에 누우면, 나는 누운 내 몸 위에 놓인 음식 덩어리와 그 무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워 있는 그 상태는, 내가 아무런 움직임 없이 음식물의 무게를 고스란히 내 몸 안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공포감이었다.
그래서 나는 배부른 상태로 눕는 것을 싫어한다. 죄책감에, 무서움에, 걱정에, 그 배부른 위가 내 몸 안에서 차지하는 공간이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배가 고프면 몸은 괴로워도 마음은 편안하다. 잠은 아무래도 신체적 고통보다는 정신적, 심리적 고통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배가 고파서 속이 아파도, 나는 배고픈 상태를 만들었다는 위안감에 매일 밤 잠에 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배고픔의 감각으로 잠에서 깬다. 가끔은 음식을 생각하면서 깨기도 하고, 음식 꿈을 꾸다가 일어나기도 한다. 배가 고프면 고플수록, 배고픔을 무시하는 것에 익숙해질수록 음식에 더 집착하게 된다. 음식을 욕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발적인 굶음을 겪는 사람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부할 뿐, 무시할 뿐이지 욕망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먹지 않을수록 그 욕망은 더 커져간다.
그러다가 도저히 이 밤의 배고픔을 무시할 수 없는 날이 40일에 한 번씩 온다. 생리하기 바로 전 날이다. 인스타그램에 "식단일기"나 "다이어트 그램", "다이어트 소통"을 하는 여자들 중에는 이런 시기에 "이를 악물고 이겨낸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임신과 출산 과정을 네 번이나 반복하며 운동과 식단을 꾸준히 해서 "워너비" 몸을 만든 주부로 유명한 "스미어터"도 자신의 식단 규칙 ("스미 식단")에 이런 시기에도 꼭 정해진 식사 시간대와 양을 지켜야 한다며 본인도 생리 전후에 오는 식욕을 따뜻한 차와 물을 마시며 "이를 악물고 이겨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도 항상 음식을 생각하고, 음식을 주시하며, 본인의 욕구가 부담스럽고, 참다가 한 번쯤 "무너진다".
나를 잘 먹여주겠다고, 배고픔을 억지로 참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외모와 체중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요즘 문제로 떠오르는 SNS 도 분명히 한몫을 한다. 하지만 여성들의 체중에 대한 고민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가 탄생하기 수 십 년 전부터 있었다. 다이어트 산업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돈을 벌어들인다. SNS와 연예인들로 인해 몸에 대한 집착과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이 비정상적으로 왜곡되고 도저히 건강한 방법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정도까지 다다랐다. 나 혼자 열심히 날씬하지 않은 내 몸, 두 허벅지 사이가 떨어지지 않은 내 몸, 옆구리 살이 매끈하지 않는 내 몸을 애써 사랑해 보겠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딜 가나 보이는 날씬한 여자와 그 여자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같은 여자로서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보이는 좋아요 수와 댓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들의 가냘픔과 여리한 자태. 날씬하면 얻을 수 있는 그 특유의 분위기와 태도를 나는 여전히 갈망한다. 가지고 싶다.
하지만 나도 날씬해봤다. 지금은 흔히 말하는 "표준" 몸무게이지만, 스물두 살 때 시작한 다이어트로 1년간 10kg가량을 감량해서 누가 봐도 날씬한 (저체중의) 몸이 되었다. 헬스장에서 비싼 돈을 주고받은 피티와 닭가슴살, 고구마, 계란으로 만들어진 몸이었다. 이 시기에 나는 2주에 한 번씩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 꼭 폭식을 하게 되었고 하루 종일 먹을 것 생각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뺀 살인데, 다시 찌지 않겠다고 아등바등했지만 결국 천천히 나의 "세트 포인트" 체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내 몸이 가장 편안한 체중 구간, 나는 이곳으로 자꾸만 돌아온다.
어젯밤은 나에게 40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생리 전날이었다. 오후 다섯 시쯤, 도저히 배고파서 안 되겠다며 냉장고에서 고구마와 계란 두 개를 먹었다. 무척 맛있었다. 밤고구마의 은은한 달달함과 퍽퍽함. 고구마 껍질에서 나는 흙냄새와 종종 씹히는 섬유질의 까끌거림. 훈제 계란의 미끌거림과 고소한 노른자. 내 목을 지나서 내 위에 포근히 안착하는 느낌. 고구마와 계란을 먹기 전에는 냉동실에 얼려둔 크림 단팥빵이 먹고 싶어서 자꾸만 생각이 났는데, 결국 해동시키려고 꺼내 두었다가 그 새를 못 참고 고구마와 계란을 먹은 것이다. 빵이 다 해동되었을 쯤에는 식욕이 사라져서 냉장고에 넣어뒀다. 그리고 오늘 아침으로 먹었다. 결국, 먹고 싶은 음식은 어떻게 서든지 먹게 된다.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어제저녁 때 먹은 음식으로 포만한 배를 가지고 밤 열 시쯤 잠에 들었다.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무엇인가를 먹어야 했던 그 충동적이고 괴팍한 배고픔의 감각이 없었다. 온몸이 고요하고 차분하고 평온했다. 이런 안정감과 충만함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은 여전히 계속 날씬하고 싶겠지만, 그럼에도 이제부터는 저녁을 먹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