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치사한 짓 중 하나가 줬다 빼는 거라는데, 무려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정부와 국회가 최저임금을 올려줬다 다시 뺏는 법을 만들었다. 금권과 권력에 분노했던 촛불, 그 민중들을 대변하는 촛불정부를 자임했던 정부여당은 적폐라며 그토록 싸우던 자유한국당과 손을 맞잡고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강탈해가는 법을 자본의 손에 쥐어준 것이다. 자본 중심의 개발과 성장 신화에 빠진 한국사회엔 역시 노동자의 처지를 먼저 생각해주는 정부는 없다. 국민 대다수인 노동자의 민의를 살피는 국회도 없다. 그리고 이제는 최저임금 인상 효과도 없다.
국회가 강행 통과한 ‘개악’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하는 범위에 월 지급 상여금과 각종 복리후생비, 교통비와 숙식비까지 포함시켰다. 노동자들이 기를 쓰고 최저임금을 올려봤자, 기업은 기존에 지급하던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식대, 교통비 등을 최저임금 계산에 넣어 돌려막을 수 있는 법이다. 이 경우 최저임금이 올라도 내 월급은 한 푼도 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일말의 죄의식인지 국회는 연봉 2500만 원 이하 저임금노동자는 이번 법 개정에 따른 불이익에서 보호했다고 해명했다. 사실이 아니다. 피해규모를 축소했지만 노동부마저 사실과 다름을 인정했다.
10년 투쟁 성과인 상여금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 인상 깎는 수단으로 둔갑
학교 교육공무직노동자(비정규직)들은 거의 대부분이 2500만 원 이하 연봉(월 기본급 164만2710원, 연 2359만 원)으로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에 묶여있다. 때문에 상여금과 각종 수당으로 낮은 기본급을 벌충해왔다. 어렵사리 노조를 만들어 10년을 힘들게 투쟁한 끝에 겨우 받게 된 게 정기상여금 60만 원과 명절상여금 100만 원, 맞춤형복지비 45만 원이다. 여기에 6만 원의 교통비를 받고 올해부터 13만 원으로 인상된 식대를 받게 됐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포함되게 생겼다. 투쟁으로 얻어 낸 처우개선이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막는 수단으로 둔갑했으니, 허탈함을 넘어 화가 치미는 것도 당연하다.
학교 교육공무직(비정규직)의 임금 피해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개악'된 최저임금법이 2019년 적용이니 충분히 예상되는 2019년 최저임금 인상액으로 피해를 산출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여당 역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맞추기 위한 법 개정이라고 조삼모사식 변명을 했으니 역시 또 그렇다. 따라서 2020년까지 1만 원으로 인상된다고 가정하면(사실 이조차 믿을 수 없지만) 2019년 인상된 최저임금은 8700원, 이를 법정 노동시간인 월 209시간으로 환산하면 181만8300원이고 연봉은 2181만9600원이다. 이러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개악’된 법 적용 시기인 2019년부터 최저임금액 대비 25%가 넘는 상여금(545만4900원 이상)과 7%가 넘는 식대와 교통비(152만7372원 이상)는 최저임금에 포함돼 계산된다.
그 결과 당장 2019년부터 교육공무직은 급식비와 교통비 중 최저임금 대비 7%가 넘는 월 6만2719원(연 75만2628원)이 최저임금에 산입돼 그만큼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빼앗기게 된다. 더욱이 최저임금 산입 항목에서 제외되는 비율은 2024년까지 점점 낮아져 2024년엔 상여금과 식대 및 교통비 전액이 최저임금에 산입되는데, 그 경우 적게는 연 288만 원에서 최대 433만 원까지(명절휴가비와 맞춤형복지비를 쪼개 월 단위 상여금으로 취업규칙을 불이익 변경할 경우) 최저임금 인상 적용을 받지 못하고 강탈당한다. 이상은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그 이후 2024년까지는 매년 5% 최저임금 인상을 전제로 계산했다. 이렇듯 연봉 2500만 원 이하 노동자들은 피해가 없다거나 보호했다는 국회의 해명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굳이 사례를 들어 말하지 않더라도 이러나저러나 최저임금이 올라도 노동자들의 월급은 그대로인 기막힌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고, 결국 최저임금 제도는 학교 교육공무직 같은 비정규직에겐 아무짝에 쓸모없는 제도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임금, 겨우 그 최저임금을 제대로 올려달라는 것
학교 교육공무직(비정규직)은 전국에 40만 명에 달한다. 이들 중 근속연수가 아주 높거나 전문직에 준해 상대적으로 최저임금 수준에서 벗어난 직종은 피해가 덜할 수 있지만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40만 명 중 절반 이상은 이번 최저임금 인상분 강탈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된다. 더욱이 최저임금은 아주 예외적인 업체에서만 적용되는 생존 하한선이 아니라 노동인구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영향을 받는 기준임금이 돼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번 법 개악의 심각성을 더 키운다. 교육공무직노동자를 비롯해 1000만 명에 달하는 저임금노동자들은 대단한 임금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임금, 겨우 그 최저임금을 제대로 올려달라는 것이다. 그 서글픈 희망마저 국회가 강탈해갔다.
국회의 법 개정이 더 악의적인 것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없애기 위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까지 강탈해갔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은 오랜 원칙으로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이익하게 바꿀 경우 노동자 과반이나 노조의 ‘집단적 동의’를 받도록 해,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해왔다. 그런데 이번 개악으로 법의 보호는 무너졌다. 최저임금 범위에 산입시키기 위해 몇 개월에 한 번 나오던 기존 상여금을 쪼개 매월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꿔 불이익을 초래하더라도 동의가 아닌 의견만 들으면 되는 것으로 ‘개악’된 것이다. 이렇듯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의 길을 터준 것은 최저임금 문제로 그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명시적인 법은 명백한 선례가 되고 최저임금 외 다른 처우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노동존중 사회와 최저임금 1만 원을 약속하고 사회적대화를 강조한 문재인 정부다. 그러나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자들이 그토록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하자고 했지만 국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강행 처리했고, 정부는 자신들의 약속이 파기되는 것을 원한 것인지 무책임하게 지켜보고 있다. 2500만 원 이하 저임금노동자에겐 피해가 없다는 국회의 설명은 거짓말이다. 민주노총 등 노동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여론조사 결과 절반 이상의 국민이 이번 법 '개악'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의 항의를 받은 여당 원내대표인 홍영표는 "당신들 문재인 찍었냐!"하며 어처구니없는 태도를 보였다. 감옥에 갇힌 박근혜 정권은 민중을 개돼지 취급하고 노동을 존중한다는 문재인 정권은 노동자를 조삼모사 원숭이 취급했다. 노동자들은 도둑국회에 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