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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다 Feb 05. 2022

새해, 스스로 사랑하는 힘을 기르려면


방치는 휴식이 아니었음을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일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품이 많이 드는 게 분명하다. 

주기적으로 나를 씻기고, 머무는 공간을 깨끗이 정돈하고, 매 끼니 든든하게 먹이고 치우는 일에도 적지 않은 체력이 필요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가 그럼 그렇지”라며 낙담하긴 쉽지만, 그럼에도 나를 치켜세우고, 응원하고, 나의 존재를 긍정하는 일은 정말이지 정신력이 많이 소모되는 일이다. 그렇게 나를 잘 먹이고, 씻기고, 어르고, 달래는 일을 하고 있노라면 마치 평생 ‘나’라는 작은 아이를 키우는 듯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지곤 한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건 육아에 버금가는 체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라는 무서운 생각도 든다.


그래서일까. 어쩐지 우울하기만 했던 지난 주말들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사실 나는 최근까지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엔 휴식만 한 게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니 틈만 나면 누워있고 싶었고, 가장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려 부단히도 애썼다. 주말이 되면 식사는 물론 샤워와 청소를 미뤄둔 채 얼마 없는 체력을 아끼려 필사적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그렇게 이틀을 꼬박 웅크리다 일요일 밤이 다가오면, 분명히 휴식을 취하고 체력을 충전했음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초조함과 시간을 낭비했다는 절망감이 몰려왔다. 분명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편하게 누워 움직이지 않았던 휴일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우울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 우울을 떠안고 월요일을 맞이해야만 했다.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체력을 기르고 싶다는 이유로 운동을 한 적이 없었다. 운동은 다이어트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포함된 패키지 같은 존재였으니까. 궁극적인 목표는 체중을 줄이고, 바지 사이즈를 줄이는 것이지 체력쯤이야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운동은 체력과 시간을 가장 낭비하는 행동 중 하나로 여겼기에 당연하게도 나의 운동은 매번 비슷한 지점에서 넘어지곤 했다. 목표로 했던 체중에 점차 근접해지면 항상 체중의 정체기를 만나 초조했고, ‘이만하면 됐지’라는 생각에 아등바등 매달리던 손에 힘이 쭉 빠지기 일쑤였다. 거기다 항상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공부가 되었든, 업무가 되었든 해야 할 일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나를 덮치곤 했다.   

 


귀찮고, 귀찮고, 귀찮을 때

일상이 바빠지면 시간과 체력이 절약 모드로 바뀌게 되는데그럴 때면 나를 위해 시간과 체력을 쓰던 모든 것들을 줄여나가게 된다. 점점 불규칙해지는 식사와 지저분해지는 공간에 우울감이 덕지덕지 붙게 되고, 운동도 포기해버린 이런 생활이 길어질수록 착실하게 체력은 줄어간다. 그 상태로 일상이 여유로워질 때까지 악순환의 반복은 계속된다.


체력이 줄어들면 거뜬히 해낼 수 있는 행동의 범위가 좁아진다는 걸 쉽게 느낄 수 있다. 행동의 범위가 좁아지면 나를 위해서 하는 일들이 귀찮아지고, 한없이 버거워지곤 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귀찮다’라는 말을 평소에도 유심히 관찰하곤 한다. 귀찮다는 감각은 무의식적으로 변화를 회피하고 싶을 때변화에 적응할 힘이 고갈된 상태일수록 자주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습관처럼 자주 귀찮다는 말을 하는 편이라면, 만성적인 게으름을 자책하기에 앞서 자신의 체력을 돌아봐야 할 때일 수도 있다. 체력의 고갈은 귀찮음의 형태로 가공되어 자주 경고 신호를 보내지만 우리는 그 신호를 놓치는 경우가 꽤 많다.


나의 경우엔 가장 귀찮았던 운동을 자주 하면서 체력이 차츰 늘었고,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늘어나면서 ‘귀찮다’는 생각의 빈도가 줄어들었다. ‘귀찮다’는 생각을 자주 하지 않아서 좋은 점은 그 말에 담긴 부정적인 정서를 자주 상기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기분을 어렵지 않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처럼 나를 돌보는 일을 어렵지 않게 자주 해내다 보면 신기하게도 자기혐오를 할 틈까지 차츰 줄어든다. 운동은 마치 도미노의 첫 블록을 넘어뜨리는 것과 같아서 우선 운동을 해내면 나를 돌보는 일들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누구든 운동 후엔 땀이 나고 찝찝해진 몸은 씻고 싶어 진다. 땀으로 축축해진 옷은 세탁기에 넣고 돌려야 냄새가 나지 않을 테고, 열심히 운동한 나를 위해 가끔은 컵라면보다 좀 더 영양가 있는 음식에 손이 가게 된다. 개운해진 몸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면 나를 위해 해야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끝나버린다. 밤이 되면 몸이 지쳐서 침대에서 뒤척거리는 시간 자체가 줄어들고, 어쨌거나 푹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면 새로운 하루를 감당할 힘이 생긴다. 



꾸준히 해내는 감각

잠들기 전에 체력을 다 소진시키는 건 꽤 중요하다. 하루 종일 몸을 웅크리고 있느라 할 일이 쌓인 채로 밤이 되면애매하게 남은 체력은 카페인보다 더 강한 각성제가 되어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때 하는 생각들은 대부분 부정적일 때가 많았다. 


나 또한 나를 잘 재우는 일이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였다. 모두가 잠든 시각에도 밤의 끝을 붙잡고 끝끝내 놓지 못했던 대부분의 이유는 만족스럽지 못한 하루를 어떻게든 만회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운동을 꾸준히 하게 된 이후로 쉽게 잠들 수 있게 된 것도 단순히 육체적인 피로감의 탓도 있겠지만 미련 없이 하루를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물론 운동을 하면 체력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할 일도 많은데 운동까지 하려니 생각만으로도 피곤하고 성가시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자신을 위해 체력을 키우길 바라면서도, 제대로 된 운동을 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나 조급함은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매일 해낼 수만 있다면 가벼운 산책도, 하루를 정리하는 간단한 요가도 충분히 좋은 운동이 될 수 있다. 꾸준히 해냈다는 감각을 느끼는 건 체력과 더불어 많은 자신감을 주는데자신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질 때 내면의 체력도 한 뼘씩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일찌감치 새해 목표를 세운 사람도, 아직 선뜻 정하지 못한 사람도 분명 있을 테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다. 누군가 나에게 새해 목표를 묻는다면 나를 자주 사랑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할 것이다. 튼튼한 체력으로 좋아하는 걸 열렬히 좋아하고, 이루고 싶은 건 몇 번이고 도전해 이뤄내고 싶다. 미래의 내가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운동을 시작하려 한다.




파운디 매거진의 마지막 라이프스타일 칼럼이 업로드되었습니다 :)

새해에는 조금 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하며, 나를 돌보고 사랑하게 하는 힘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는데요. 그동안 어렴풋하게 생각만 했던 나를 씻기고, 재우고, 토닥이는 일에 대해 글을 쓸 수 있어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조금 늦은 새해 인사지만, 이 글을 읽으실 독자분들도 올 한 해는 자신을 더 자주 사랑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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