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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주 Apr 08. 2022

어떻게 인간과 강아지가 함께 살게 되었을까?

해리와 나 19


햇볕이 따뜻한 오후, 해리와 한적한 해변으로 산책을 갔다.  해변은 해안선을 따라 솟아오른 언덕 너머에 있어서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만한 산책로를 따라가다가 바다 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파른 흙길을 내려가야 닿을  있는 곳이다. 들쭉날쭉한 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바다와 육지의 경계의 가운데 바다가 실어 나른 퇴적물이 쌓여 고운 모래 해변이 생겼다. 해변에 발을 내딛으면 해리는 발에 닿는 감촉이 신기한지 흥미로운 표정을 하고 나를 올려다본다. “해리! 놀자!” 하고 냅다 뛰면 해리도 따라 달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흥을 주체할  없는지 혼자 해변을 우다다 휘젓고 다닌다.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신이 난다. 그렇게 해변을  차례 가로지르며 달린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멈춘다.

한바탕 뛰고난 다음에는 찬찬히 해변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진다. 나는 바닥에 눈을 두고 바다로부터 무엇이 떠내려왔는지 살피고 해리는 코를 박고 신기한 냄새들을 따라 탐구 활동을 하고 있다. 해리는 해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쓸려 내려가는 바닷물이 신기한 눈치다. 가끔 안쪽까지 쑥 밀려들어오는 파도를 만나면 흠찟 놀라기도 한다. 그렇게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 해리가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면 해리를 찾는다. 해리는 해안 끝 돌 틈에서 뭔가를 발견했는지 주둥이를 가져다 대고 무언가를 밀어내고 있다. 느낌이 좋지 않아 후다닥 뛰어가 살펴보니 똥이다. 녀석이 이렇게 똥에 관심을 가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해리가 산책 길에 똥을 찾아서 먹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리의 관심을 끄는 똥은 강아지나 다른 동물들의 똥이 아니라 사람의 똥이다. 똥에서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나는지 매번 개코를 이용해서 기가 막히게 숨겨진 똥을 찾아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해리가 똥을 찾아 입으로 가져가려고 할 때마다 제지를 하고 있어서 아직까지 (내 눈앞에서) 섭취한 적은 없다.


매끼 꼬박꼬박 비싼 밥 먹이고 간식도 섭섭지 않게 챙겨주고 있는데 남이 싸 놓은 똥이나 주워 먹으려고 하다니 우리 개가 왜 이럴까 싶었다. 혹시라도 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들기도 하고 남의 똥 주워먹은 주둥이로 나를 핥는다고 생각하니 비위가 상하기도 한다.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신경을 곤두세우며 지켜보던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얼마 전 똥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만드는 글을 읽었다. 개가 인간의 똥에 반응하였기 때문에 인간과 개가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개는 신석기시대인 1만여 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 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의 조상은 경계심이 강하고 사나운 늑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늑대가 인간에게 친화적인 개가 되어 인간과 함께 살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가설은 인간이 야생의 늑대를 잡아다가 온순하게 길들여서 인간과 함께 살도록 하였고 이후 사냥을 돕거나 서식처를 지키도록 훈련을 시켰다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늑대의 생태에 대한 연구는 이 가설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야생의 늑대는 태어난 지 2~3주 만에 친밀한 존재와 낯선 존재를 구별한다고 한다. 이 시기에 낯선 존재라고 느낀 대상에 대해서는 공포심을 느끼고 공격성을 드러나게 된다. 인간에게 친밀감을 느끼도록 늑대를 길들이려면 이 시기가 지나기 전에 늑대를 데려와 길들여야 하는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습성에 근거하여 동물행동학자 레이몬드 코핑거와 로나 코핑거는 새로운 가설을 내세운다. 인간이 늑대를 데려다 길들인 것이 아니라 늑대가 스스로 인간과 함께 살기를 선택하고 가축화되었다는 것이다. 문제의 똥 이야기는 여기서 나온다. 약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날 때 쯤 인류는 농경을 시작했다. 농경 기술이 점차 발전하고 농산물이 증가하자 더 이상 수렵이나 채집을 하지 않아도 충분한 식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인류는 집단을 이루어 한 곳에 정착을 하게 된다. 인간의 정착지 주변에는 음식물 쓰레기나 똥을 버리는 장소가 생겨났고 배고픈 늑대가 인간에 대한 경계심을 누르고 인간의 정착지 주변으로 다가와 버려진 쓰레기와 똥을 먹게 되었다. 그렇게 인간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인간에게 다가온 늑대들의 생존확률이 높아지고 그들 사이의 번식이 이루어지면서 인간과 함께 사는 개가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영양가 있고 맛도 좋은 인간의 똥이 있었기에 늑대는 인간에게 와서 개가 되었다. 그러니 그 늑대의 후예인 해리가 인간의 똥에 반응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가설은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 등을 근거로 여러 반박에 부딪치고 있다. 신석기시대 이전인 3만 6천여 년 전에 인간과 개가 함께 생활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그렇다면 농경이 시작되기 전에 인간과 개가 이미 함께 했다면 잉여생산물로 인해 자기가축화가 일어났다는 가설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이런 발견에 근거해 새롭게 제기된 가설은 인류와 늑대-개는 농경이 시작되기 전 수렵과 채집의 시대에도 함께 사냥을 하고 함께 살았을 것이라 추정된다. 어떤 계기로 인류와 늑대-개가 짝을 이루어 더 적은 에너지로 더 넓은 영역에서 더 많은 먹잇감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며 이것은 인류와 늑대-개 모두에게 이득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멋진 이야기이지만 불현듯 스쳐가는 생각은 이때도 개는 인간의 똥을 먹었을까? 아니, 인간도 개의 똥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인간과 개가 언제부터, 어떻게 같이 살게 되었는지는 지금의 인간이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수 없다면 남겨진 단서를 근거로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분명하게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이 야생의 늑대를 데려와 길들였든, 늑대가 인간과 함께 살기를 결정했든, 둘 사이의 동맹이 맺어졌든 상관없는 일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인류와 개가 아주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며 지금 이 시대를 만들어왔다고 지금껏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강아지가 함께 사는 모양새는 시간의 흐름과 문화의 부침에 따라 다양한 변주를 이루어왔지만 어찌 되었든 오늘 해리와 내가 이렇게 교감하고 기대어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수많은 인류 그리고 늑대-개 조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 셈이다. 우리의 인연이 수만 년 동안 이어져 온 것이라 생각하니 그 생각만으로 감동이 파도와 같이 밀려든다. 아, 물론 그렇다고 똥 먹는 것은 참아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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