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와 나 7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해리가 격렬히 반긴다.
분명 헤어진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게나 기쁜지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어대며 분주히 왔다 갔다 재회의 세리머니를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괜히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화답하는 의미로 해리에게 다가가 다정한 말을 하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사실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 내가 어색하다. 무뚝뚝함이 표준이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이런 표현이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 좌절의 경험들 때문인지 애정을 담은 말을 입밖으로 내뱉는 것이 먹쩍다. 감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이므로 표현을 하는 것은 괜히 에너지만 소모되고 별다른 의미 값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해리를 보며 그런 내 생각에 모가 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속에서 꿈틀대는 감정에 모난 부분이 둥글러지게 된 나는 어느새 다정한 말을 아낌없이 쏟아내고 있다. 해리도 기분이 좋은지 내 가슴팍에 이마를 대고 폭 안긴다. 살을 맞대고 서로에게 기대 있는 이 느낌이 참 좋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반려동물을 돌보며 살아가는 것, 반려동물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것은 반려인의 몸과 마음에 큰 도움이 된다. 최근에 이루어진 여러 연구의 결과 반려동물의 긍정적인 영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심장마비 등의 질병에 걸릴 위험이 적고 비만도도 낮다고 한며 반려동물에게 애착이 높은 사람들은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더 적게 느낄 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이 줄고 긴장이 완화된다고 한다.
물론 이런 과학적인 연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반려생활의 좋은 점은 설명할 수 있다. 나도 반려인의 한 사람으로서 해리와 함께 살며 경험하고 느낀 것을 간증하고자 한다.
우선 건강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이 반려견이 없는 삶보다 건강하다는 것은 두말하면 입이 아픈 소리다. 특히 강아지와 함게 하는 삶은 매일 반강제적 운동을 해야 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산책은 강아지의 기본권이다. 만약 이러한 기본적인 권리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강아지는 행복하지 못할 것이고 반려인의 보금자리에는 남아나는 것이 없다. 서로의 행복과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다면 함께 걸어야 한다. 규칙적으로 산책을 하면 운동량이 늘어나고 건강해진다.
강아지와 함께 하면 정신 건강에도 좋다. 강아지는 내가 어떤 사람이든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냄새를 풍기든 나를 좋아해 준다. 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24시간 경험하다 보면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해리와 함게 하며 점점 희미해져만 가던 내 존재에 깜빡깜빡 불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며 살아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것 같아서, 또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는 것 같아서 불안하거나 초조해지는 순간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분명했던 것 같은데 그것들마저 점점 불분명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아주 불행하다거나 이제껏 살아온 인생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이렇게 불안정한 마음으로 살아갈 줄은 몰랐다. 이렇게 불안감이 나를 감쌀 때도 해리는 꼬리를 흔들며 나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본다. 해리의 빛나는 갈색 눈동자를 마주 보고 있으면 마치 해리가 나에게 “아무렴 어때. 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반려인이야.” 하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런 마음이 느껴지면 흔들리던 나의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지는 느낌이 든다.
강아지와 함께 하면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상식 밖의 사람을 상대하게 되었을 때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마음 같지 않을 때,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이 무거운 일을 해결해야 하거나 자원이 부족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 할 때 등등 마음이 어려운 순간이 참 많다. 이럴 때 생기는 스트레스는 정말이지 만병의 근원이다. 몸은 경직되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것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밀려든다. 우울감이나 외로움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럴 때 강아지와 함께 걷거나 강아지를 쓰다듬으면 몸의 긴장이 완화되고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누그러지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속에 갇혀 있던 몸과 마음에 조그마한 공간이 생기고 그래서 그 상황에서 한 발짝 물러날 수 있다. 그렇게 위로를 받다 보면 내일 다시 시작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힘도 충전할 수 있다.
이런 위로는 안정감과 함께 생활에 대한 애착을 만들어준다. 연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쓰다듬으면 옥시토신 수치가 증가한다고 하다. 옥시토신은 불안감을 줄이고 애착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이다. 강아지를 쓰다듬기만 해도 안정감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위로는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는데 반려동물을 쓰다듬으면 옥시토신 수치가 증가하고 그러면 유대감이 생성되어 더 쓰다듬고 싶어지고 그래서 더 쓰다듬으면 또 더 쓰다듬고 싶은 식으로 화학적 연쇄반응이 일어나기 대문이다. 그렇게 반려인은 쓰다듬음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그저 해리와 방바닥에 누워 뒹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호르몬이 시킨 일이었던 것이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존재를 쓰다듬기만 해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크나큰 위로가 된다. 해리를 만난 것은 거친 사막 속에서 샘물 같은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은 행운이 아닐까. 우리는 눈빛으로 손길로 오아시스와 같은 서로를 쓰다듬으며 위로하며 위로받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