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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주 Feb 22. 2022

아프면 언니한테 꼭 알려줘

해리와 나 6


자려고 방으로 들어와 누웠는데 해리가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가보니 이미 한가득 게워 낸 흔적이 있다. 해리는 거실 구석에서 몸을 들썩이고 있다. 불편한 것들을 다 입으로 쏟아내고 싶은 모양이다. 리듬감 있게 이어지던 구역질 끝에 무언가를 쏟아내고 또다시 구역질을 하고 그렇게 계속 반복하며 오늘 먹은 것들을 차례로 게워내고 있다. 나는 해리가 토해낸 것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피나 다른 이물질이 섞여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며 해리 옆을 가만히 지키고 있다.

불편하고 괴로운지 해리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다. 지켜보는 나의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내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 먹을 것을 주어 탈이 났을까 아니면 해리가 무심코 주워 먹은 것이 잘못되었을까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그게 무엇이든 원인 제공을 했을 누군가를 원망했다. 그리고 해리를 잘 돌보지 못한 나를 자책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생각들은 답도 없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상황을 나쁘게 만든다. 정신을 차리자.

해리는 고형의 음식물은 다 쏟아내어도 속이 불편한지 끈적한 액체를 두어 번 더 토해냈다. 그제야 조금 안정이 되었는지 바닥에 앞발을 내려놓고 엎드린다. 해리가 게워 낸 것들을 치우고 바닥을 닦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오늘은 거실에서 함께 자기로 한다. 이부자리를 챙겨 나와 거실 바닥에 까는 내 모습을 해리가 구석에 웅크려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가까이 오라고 불러도 아직 완전히 편해지지는 않은지 거리를 둔다. 조금 뒤 해리는 다시 구역질을 시작한다. 일어나 해리를 쓰다듬고 재차 안정되는 것을 확인하고 해리를 보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날이 밝도록 잠을 잤다. 평소 같으면 해가 뜨기 전에 해리가 먼저 일어나 나가자고 아우성을 했을 텐데 기력이 없는지 내 손끝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 엎드려 아직도 잠을 자고 있다. 밤사이 더 토해 놓은 것은 없는지 둘러보고 어제 사용한 걸레들과 해리의 그릇을 씻어 햇볕에 말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해리 옆에 와서 누웠다. 밤사이 새로 토한 것도 없고 지금은 좀 안정된 것으로 보아 증상이 완화된 것 같아 다행이다. 공휴일에도 문을 여는 병원이 있는지 찾아서 다녀올까 고민하다가 오늘 하루 잘 지켜보기로 한다.


해리와 처음 살 때는 해리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무조건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이 문을 닫은 시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해리와 같이 밤을 새우고 병원 문 여는 시간만 기다렸다가 쫓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달려간 병원에서 일시적인 증상인 것 같으니 조금 더 지켜보자는 말을 듣고 나왔다. 증상을 완화시켜 주는 처방약을 받아와 먹이면 해리는 하루 이틀 지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큰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별것 아닌 일에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떨어서 해리도 나도 더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나는 아파도 병원에 잘 안 가는 사람이다. 내 몸의 치유 능력을 믿고 크게 이상하거나 불편한 증상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치료되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해리가 아플 때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해리가 아프면 불안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해리가 아플 때 나는 왜 불안할까. 그건 나는 강아지가, 또 해리가 아니기 때문에 해리의 고통이나 느낌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알 수 없으니 무섭고 불안한 것이다. 해리가 아픈 것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해서 해리가 더 오래 혹은 더 많이 아프면 어쩌나 걱정스럽기도 하다. 강아지들은 아픈 것을 감추는 습성이 있다고 하는데 더군다나 눈치나 눈썰미가 없는 내가 미세한 차이를 잘 감지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염려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해리가 아플 때마다 불안한 마음에 해리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해리가 아프지 않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픔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아니라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해리는 나와 같은 유기체이고 그렇기에 늙고 병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에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아프다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고 이것을 받아들이고 잘 해결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해리를 붙잡고 "해리야, 아프지마" 하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한 후 부터는 이렇게 고쳐 말한다. “해리야, 아파도 되는데 아프면 언니한테 꼭 알려줘.”

해리와 함께한 시간이 쌓여서인지 그 사이 내 마음이 더 단단해져서인지 이제는 해리가 아파도 불안에 갇혀서 허둥대거나 공연히 나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를 탓하는 것이 줄어들었다. 대신 증상을 지켜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원칙을 만들었다. 우선 지켜본 다음 1) 기력이 떨어진다. 2) 먹이를 먹지 않는다. 3) 토하거나 설사를 한다. 이 세 가지 증상 중 두 가지 이상이 24시간 이상 지속될 때는 병원에 데리고 간다.


그날 해리는 기력이 없는지 내내 잠만 잤다. 다행히 쉬는 날이라 나도 해리 옆에 누워 책을 보다가 해리를 쓰다듬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어렸을 때 배앓이하던 생각이 났다. 엄마가 노래를 부르면서 배를 만져줬는데 가사가 웃겨서 아픈 걸 잠시 잊고 까르르 웃던 것이 생각났다. 나도 따라 해리 배를 만져주었다. 내 손길이 싫지 않은지 해리도 가만히 누워있다. 오전 늦은 시간 몸을 일으켜 밥을 챙겨 먹었다. 밥 먹는 소리가 들리면 해리도 따라 움직이는데 아직 밥 생각은 없는지 고개만 까딱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밥을 먹고 다시 해리 옆에서 책을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떠 보니 해리가 내 옆에 앉아 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일어났다. 해리가 달라 보였다. 몸이 간지러운지 뒷발로 몸을 털어내는데 눈도 말똥말똥하고 원래의 해리로 돌아간 모습이다. 함께 몸을 긁어주다가 햇볕에 말려놓은 물그릇과 밥그릇을 들여와 물을 부어주었다. 해리는 목이 탔는지 물을 마신다. 풔풔풔 물 마시는 소리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조금 급하게 마셨는지 헛기침을 했지만 구역질을 하거나 토하지는 않는다. 다행이다.

내친김에 사료도 조금 부어주었다. 먹지는 않고 옆에 엎드렸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사료를 쳐다본다. 먹을까 말까 고민이 되는 모양이다. 조금 지나니 사료 씹는 소리가 경쾌하게 거실을 채운다. 밥을 먹은 후에도 구역질이나 토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안정된 것을 확인하고 산책을 나갔다. 나갈 채비를 하니 해리는 언제 아팠냐는 듯 신이 난 모습이다.

산책 코스는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걸을 수 있는 바닷가 산책로로 정했다. 산책하는 모습을 보니 여느 때의 해리와 다름이 없다. 냄새를 맡던 해리가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는다. 엉덩이를 쭉 빼고 엎드리며 앉는 것이 소변을 보는 모양새다. 시원하게 배변을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한참을 걷다가 다시 자세를 잡는데 이번에는 몸을 더 바짝 세워 힘을 준다. 대변이다. 지난밤 먹은 것을 다 게워 내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신기한 일이다. 해리의 배변이 끝나면 수거는 나의 몫이다. 처음에는 제법 큰 똥을 얇은 비닐봉지로 감싸 잡는 것이 퍽 난감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일상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다. 아니, 오늘 같은 날이면 해리 똥을 다시 만난 것이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지 모른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라 아픈 해리가 찬 바람맞으면 안 좋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눈으로 상태를 살피지만 해리는 씩씩하게 잘도 걷는다. 그렇게 한 바퀴 풀 코스로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해리에게 물을 먹이고 간밤에 어질러진 거실을 치웠다. 카펫 위에 토해 놓은 자국이 있어 손세탁을 한 뒤 널어 말렸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도 했다. 해리는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청소를 마치고 각자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정신없이 휴일 하루가 다 가버렸지만 잘 먹고 잘 싸는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앞으로도 아플 때는 아픈 티 팍팍 내며 오래오래 내 곁에 머물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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