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와 나 13
봄의 기운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지면 해안산책로보다 마을 뒤편에 있는 언덕을 찾게 된다. 마을 안으로 난 골목길을 돌아 나가면 한적한 산책로가 나온다. 동네 뒤편으로는 인가가 적고 동네 사람들이 부치는 밭만 몇 필지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드물다. 또 작은 언덕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적당히 운동도 할 수 있고 봄부터 여름까지는 봄나물이나 열매도 채집할 수 있다.
동네를 벗어나면 작은 언덕을 하나 만난다. 비탈길 옆으로는 매실밭이 있는데 이곳의 매실나무에 탐스럽게 꽃이 피면 기온은 아직 쌀쌀해도 봄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매실밭을 지나 언덕 위로 오르면 주변을 살피고 해리의 산책 줄을 풀어준다. 자유의 몸이 된 강아지는 신이 나서 뛰어간다. 그래도 아주 멀리는 가지 않는다. 길가 풀숲에 냄새를 맡다고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나의 위치를 살핀다. 풀숲에서 푸다닥 무언가 뛰는 소리가 들리면 사냥을 하던 조상(골든 리트리버는 인간과 짝을 이뤄 새 사냥을 하던 종이다)의 본능이 아직 남아 있는지 몸을 들썩이다가 “안돼” 하고 말하면 뛰지는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어떤 날은 참지 못하고 수풀로 뛰어들기도 하는데 그날은 진드기를 잡느라 아주 애를 먹는다. 물론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이 언덕 위에는 풍경이 탁 트인 풀밭이 있다. 이곳에서는 넓고 큰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동해처럼 아주 탁 트인 바다는 아니지만 좁은 수로를 따라 흐르던 물이 숨을 고를만큼 넓은 곳을 만나 느긋한 바다를 만든다. 다정한 섬들이 그 바다를 둘러싸고 있다. 가까이 보이는 작은 섬들 너머로 큰 섬인 한산도와 미륵도가 좌우로 수평선을 채운다. 맑은 날이면 그 사이로 우뚝 솟은 소지도까지 깨끗하게 보인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 언덕에 서 있으면 마음이 절로 여유로워진다. 먼 곳을 내다볼 수 있는 스텝 지역을 서식지로 택한 머나 먼 조상의 본능이 나에게도 남아있는 것일까.
평화로운 풍경을 뒤로하고 산책을 이어간다. 언덕을 올랐으니 이제 내려갈 일이 남았다. 강아지가 앞장을 서서는데 뛰는 폼새와 꼬리의 모양새를 보니 매우 신이 난 모양이다. 몸을 S 자로 흔드는 경쾌한 몸놀림과 살랑대는 꼬리가 어우러져 묘한 박자를 이룬다. 꼬리의 높이는 조금씩 다른데 어떤 날은 꼬리가 몸보다 위로 올라가 곡선을 그릴 때도 있고 어느 날은 편하게 아래로 떨굴 때도 있다. 강아지가 온몸으로 그리는 기분 좋음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덩달아 몽글몽글해진다.
내리막의 끝에는 길이 나뉜다. 왼쪽으로 가면 나지막한 언덕에 누군가 조성해 놓은 나무 밭이 있다. 나무를 키워다 팔 요량으로 종류별로 심어놓은 것 같은데 심은 후 방치해두어 이제는 제법 큰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나무 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실컷 나무 구경을 한다. 나무 밭 입구에서는 목서화와 동백꽃이 있어 시기를 맞춰가면 꽃구경도 원 없이 할 수 있다. 목서화는 가을에 꽃을 피우는데 가지를 따라 뭉치를 이뤄 피는 작은 꽃들이 짙고 달큼한 향을 뽐낸다. 금목서가 먼저 피고 질 때쯤 은목서가 파통을 이어받는다. 은목서는 조금 비릿하면서도 시원한 향기를 낸다. 목서화를 좋아하는 나는 여름의 끝자락부터 목서 꽃이 언제나 피려나 기다린다. 그러다 코끝에 목서화 향이 닿는 날이면 잰걸음으로 언덕을 넘어간다. 동백은 한겨울에 꽃을 피우는데 추운 공기 속에 붉고 탐스러운 꽃을 피워낸 나무들이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
나무밭에서는 고라니와 자주 마주친다. 마주쳤다기보다 우리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후다닥 몸을 숨기는 녀석들을 보게 된다. 황급히 도망가는 모습에 불쑥 찾아온 외부인 때문에 집주인이 자리를 피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한 번은 고라니와는 다른 검고 큰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는데 모습을 정확히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맷돼지가 아니었나 싶다. 그날 이후 너무 이른 시간이나 늦은 시간에는 이 길로 다니지 않게 되었다.
나무 밭 산책로의 끝에는 공동묘지가 있다. 양지바른 비탈에 묫자리를 쓰고 때가 되면 말끔하게 성묘도 하는 후손을 둔 사람의 묘다. 초여름에 이곳에 넘어오면 상쾌한 바람과 함께 덤으로 얻는 것이 있다. 바로 달콤한 오디와 산딸기다. 묘지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뽕나무에 달린 오디를 한 움큼 따다가, 길가에 난 딸기 덩굴에 달린 산딸기를 한 주먹 모아다가 한 잎에 털어 넣으면 초여름의 에너지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달콤함에 취해 계속 생각이 나는 맛이지만 너무 욕심을 내었다가는 아랫동네에 욕심 많은 사람이 이사 왔다고 산짐승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할 것 같아서 하루에 한 주먹 또는 두 주먹까지만 먹기로 한다.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이번에는 다른 길로 향한다. 마을 뒤편 언덕 중에서 가장 높은 언덕을 오르는 길이다. 강아지가 총총히 걸어가는 것을 보며 나도 뒤따라 올라간다. 길가에는 작은 수로가 있는데 어느 날은 강아지가 하도 짖어 대서 들여다보았더니 새끼 고라니가 빠져 있었다. 역시 개코는 개코라며 감탄을 하는데 강아지가 설쳐대는 탓에 새끼 고라니가 겁을 먹고 수로 깊숙이 숨어버렸다. 내려가서 끄집어 내 올려주어야 할까 고민이 되었지만 역시나 사람 손이 닿으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집으로 내려왔다. 그래도 마음이 쓰여 다음날 걱정되는 마음에 다시 찾았는데 다행히도 어미가 데려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평온한 산책길에도 이런저런 작은 소동들이 있다.
이 언덕에는 머위가 자라는 작은 공터가 있다. 누군가 씨를 뿌리고 애써 가꾼 것도 아닌듯 한데 3월이 되면 약속이라고 한 것처럼 작은 잎이 하나둘 올리기 시작하고 귀한 꽃대도 피워낸다. 머위가 무성히 자라면 한움큼 따와서 밥상에 더한다. 언덕의 꼭대기에는 풀이 자라는 비탈이 있다. 누군가 밭으로 삼으려고 나무를 벤 것 같은데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는지 풀만 무성하다. 여름에는 칡덩굴이 뒤덮여 지나갈 수조차 없지만 겨울 찬 바람이 무성하던 풀들이 모두 삭혀버린 다음 봄이 찾아오면 향긋한 쑥이 가장 먼저 올라오는 곳이기도 하다. 쑥이 나기 시작하면 부지런히 이 언덕을 오른다. 강아지는 비탈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냄새를 맡고 나는 쪼그려 앉아 쑥을 캔다. 고개를 숙여 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온갖 냄새가 올라온다. ‘해리가 이런 냄새들을 맡고 있겠구나’ 싶다.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해리가 멀리 가지 않는지, 사람들이 올라오지는 않는지 동태도 살핀다. 적당히 쑥을 캐면 해리를 불러들여 산책 줄을 다시 하고 동네로 향하는 좁은 지름길로 내려간다. 한 손에는 쑥이 든 봉지를 쥐고 다른 한 손에는 강아지 산책 줄을 잡고 걸으면 제법 생산적인 산책을 한 것 같아 의기양양해진다.
계절의 변화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산책을 이어간다. 집으로 돌아와 오늘 수확한 것을 갈무리하고 밥을 나눠 먹는다. 새삼스럽지만 해리와 함께 걷는 시간, 해리와 주변을 발견하는 시간이 나의 행복과 단단하게 이어져 있음을 새삼 느낀다. 언덕길 산책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