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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주 Mar 08. 2022

못난 마음이라 미안해

해리와 나 10


지난 주말 오랜만에 해리와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부산에서 재미있는 행사가 열려서 쉬는 날인 일요일에 해리와 함께 가 보기로 한 것이다. 해리와 함께 여행을 하려면 항상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중간중간 해리를 살펴야 하고 최소 1시간 반에 한 번 정도는 차를 멈추고 가볍게라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큰 도시에 나가는 것이라 가는 김에 평소 가 보고 싶었던 곳도 한두 군데 정도 더 둘러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목적지가 여러 군데라면 괜히 마음만 바빠질 것 같아서 접었다. 행사장에 대략 몇 시 정도에 도착하면 좋겠다 하는 간단한 계획만 세우고 출발했다.

그렇게 출발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해리가 짖기 시작한다. 라이트를 켜고 따라오는 뒷차가 자극이 되었을까, 화장실에 가고 싶은 걸까. 마음이 쓰였지만 30분 정도만 더 가면 산책을 하려고 찾아두었던 공원이 있기에 차를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 사이에 차는 시내를 지나 자동차 전용도로에 진입했다. 그런데 짖는 소리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급해져서 우선 눈에 보이는 출구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첫 번째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 아래 해변 길에 차를 대니 해리는 빨리 문을 열라고 성화다. 캔넬이 부서져라 발을 구는 녀석을 앉아서 기다리게 한 다음 문을 열어주었다. 신이 나서 뛰어내린 해리는 딱히 화장실이 급한 것은 아니었는지 여기 저기 냄새를 맡기 바쁘다.

이렇게 된 것 산책이나 하자 하고 제방 위로 난 포장길을 따라 방파제로 나가보았다. 방파제 안쪽의 마을 항구에는 어구들이 쌓여 있는데 그물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해리가 코를 박고 냄새를 맡고 있다. 방파제 너머로는 테트라포트가 쌓여 있고 그 옆으로 이어지는 갯바위에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눈 앞에는 수평선이 보이는 큰 바다가 펼쳐진다. 아직 오전 시간인데도 햇살이 바다를 강렬하게 비추고 있고 바다의 표면에는 윤슬이 빛나고 있다. ‘그래, 계획했던 대로 못 하면 어때. 이렇게 중간중간 쉬어 가며 좋은 풍경도 보고 가면 되지.’ 다소 낭만적인 생각을 하며 바위 위에 앉아 느긋하게 햇살을 쬐려 하는데 해리는 그럴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바위 위를 탐색하기에 바쁘다. 어쩔 수 없이 나도 탐험에 동참했다.


그렇게 갯바위 탐험을 마치고 차로 돌아오는 길, 제방 위 좁은 길에서 검은색 SUV 차량과 마주쳤다. 큰 차를 보면 해리가 흥분할 것 같아서 길가로 해리를 몰고 산책줄을 고쳐 잡는데 순간 줄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해리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크게 짖으며 차를 따라갔다. 해리를 잡으려다가 헛짚고 넘어진 나는 눈앞이 아찔해져 “해리야! 해리야!!” 소리를 쳤다. 다행히 차는 속도를 줄였고 해리도 멈춰 섰다. 뛰어가서 해리를 붙잡았다. 놀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리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하고 있다. 순간 화가 났다. 화를 참지 못한 나는 “야! 차 쫓아가지 말라니까!” 소리를 빽 질렀다. 해리는 조금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강아지들은 달리는 차를 보면 그것이 살아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움직이는 차를 보고 달려가는 강아지는 제멋대로 날뛰는 그 덩치 큰 동물을 제어하려고 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마셜 토머스, <개와 함께한 10만 시간>) 해리는 그저 본능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동차는 강아지들이 생각하는 제어 가능한 동물이 아니며 많은 강아지들이 이렇게 차를 쫓아가다가 사고를 당해 다치거나 죽는다. 이 사실을 아는 나는 자동차를 쫓아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해리가 차에 반응할 때마다 산책줄을 짧게 잡고 흥분을 가라앉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해리가 차를 향해 뛰어드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놀라고 당황한 나는 그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해리에게 화를 냈다. 줄을 놓친 그 짧은 순간에는 해리가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고, 해리를 붙잡는 순간에는 안도감과 함께 마음대로 뛰어나간 해리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또 ‘안전한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라는, 최소한이라고 생각했던 내 기준이 깨져버린 것 같아서, 그간의 내 노력이 무시당한 것 같아서 화가 났다. ‘나는 너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왜 너는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야.’ 하는 서운한 감정도 밀려왔다. 이렇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해리에게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이 화가 향해야 하는 것은 본능에 따라 차를 쫓아간 해리가 아니라 해리를 제어하지 못한 나, 그래서 해리를 위험에 빠뜨리게 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차를 향해 뛰어드는 행동을 고치기 위해서는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 아는 데도 해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어쩌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해리에게 화풀이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해리와 함께 살면서 해리에게 크게 화를 냈던 적이 몇 번 있다. 해리의 어떤 행동 때문에 화가 났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면 해리가 한 행동은 그렇게 화를 낼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왜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을까. 그것은 해리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내 마음이 이미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다른 이슈가 있었던 날에 해리의 행동이 트리거가 되어 화를 내게 만든 것이다.

살다 보면 뜻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날이 있다. 모든 일이 내 맘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이이지만 아직도 그런 날에는 답답하고 화가 난다. 그리고 마음이 옹졸해진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이다. 그렇지만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나보다 약하거나 가까이에 있는 존재에게 그런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 없는 상대방에게 내 감정을 전가하고 상처를 주는 잘못된 행동이다. 또 그렇게 화를 낸다고 해서 해소되거나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몇 번을 되풀이하며 반성했지만 나는 오늘 또다시 해리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내 밑바닥을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꺼내보인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감정의 폭풍이 지나가고 부끄러운 마음을 끌어안고 터덜터덜 해리와 함께 차로 돌아왔다. 그런데 손가락이 따끔거린다. 들여다보니 피가 배어 나온다. 아까 잘못짚었을 때 까진 것 같다. 피가 나는 손가락을 해리에게 들이밀며 “야~ 해리~ 이거 봐! 언니 다쳤잖아!” 푸념을 했다. 해리는 손가락 냄새를 맡더니 뭐 때문에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한번 올려다본다. 그런 해리에게 “괜히 화내서 미안해.” 사과를 했다.

다시 시동을 켜고 가던 길을 이어갔다. 손을 씻고 반창고를 붙이느라 경유지가 한 곳 더 늘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달리고 멈추고를 반복하며 대도시 구경을 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도 내 마음에 그늘이 생기고 그 그늘이 해리에게 드리워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부끄러움을 기억하고 자꾸만 옹졸해지려는 마음, 함부로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을 잘 다스려야겠다. 물론 해리의 흥분을 조절하는 연습도 다시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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