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와 나 8
예방접종을 하러 동물병원에 갔다. 평일 오후 시간이었지만 환자들이 많았다. 진료실 소파 한편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와~ 리트리버네요. 저도 큰 강아지 키우고 싶어요."
그 아주머니의 품에는 하얗고 작은 몰티즈 한 마리가 안고 있다. 몰티즈와 눈이 마주친 나는 멎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주머니는 다시 말을 한다.
"그런데 우리 딸이 아파트에서는 큰 강아지 못 키운다고 반대하더라고요."
그말에 나는 올타쿠나하고 대답을 했다.
"맞아요. 큰 강아지 키우는 거 진짜 쉬운 일 아니에요."
해리와 다니면 종종 자신도 큰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싶지 않지만 기회가 있다면 꼭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라고 이야기를 해 준다.
사실 나도 큰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사람 중 하나였다. 집에 항상 강아지가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강아지는 따로 있었다. 내가 키우고 싶은 강아지는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의 파트라슈를 닮은 큰 강아지였다. 주인공 네로와 파트라슈가 힘겨운 날들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은 나는 나에게도 파트라슈처럼 푹 안기고 기댈 수 있는 큰 강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맘때 옆집 외양간에 살던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세상에서 제일 예쁜 눈을 하고 작은 얼굴과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귀여운 송아지의 모습에 흠뻑 빠져 매일 담장 너머로 훔쳐보곤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크고 귀여운 동물과 함께 살고 싶다.
해리를 데려오게 되었을 때 나의 오랜 꿈이 이렇게 실현되는구나 싶은 생각에 감격스럽기도 했다. 보드랍고 푹신한 털을 가진 거대한 솜뭉치, 송아지를 닮은 누런색의 털과 길쭉한 다리와 귀여운 얼굴을 한 강아지, 꿈에 그리던 강아지가 바로 해리였다. 이렇게 꿈에 그리던 모습과 쏙 닮은 강아지와 함께 살게 되다니 나는 정말 행운아였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동화처럼 '그렇게 둘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시작이었고 함께 살게 된 이후 이상을 현실로, 꿈을 일상으로 만들기 위한 지난한 노력이 필요했다.
대형견과 함께 사는 것을 선뜻 추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새끼 때의 귀여운 모습이나 미디어에 비춰지는 좋은 모습만 보고 덜컥 대형견을 입양했다가는 정말 지옥을 맛보게 될 지도 모른다. 대형견은 많이 먹고 많이 싼다. 털도 많이 빠지고 먹고 입고 치료하는 데 돈도 적지 않게 든다. 또 생활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고 에너지를 발산할 산책과 놀이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정말 신중하게 가족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대형견과 함께 사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삶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살기를 작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아주 큰 변화가 거대한 털뭉치와 함께 우리의 삶으로 찾아 들어온다. 해리와 함께 살면서 나에게 찾아온 변화를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가장 큰 변화라면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많이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몸을 움직이거나 야외에서 활동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혼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이 되는 성향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심지어 집 밖으로도 나가지 않으며 휴식하는 생활을 했다. 하루 종일 300보도 걷지 않고 거의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날을 나는 ‘버리는 날’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해리와 함께 살며 온전하게 하루를 버려 본 날이 없다.
강아지를 건사하기 위해서는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 아침과 저녁을 챙겨 먹이고 배변 산책을 나가고 나갔다 들어오면 간단하게라도 닦이거나 씻겨야 하고 때가 되면 양치질과 빗질을 해야 하고 심심하면 놀아주어야 한다. 이 과업들은 되도록 정해진 시간에 해 내야 한다.
이것만 해도 기초 운동량은 다 채운 것 같은데 매일 산책도 나가야 한다. 강아지마다 요구하는 운동량은 다르지만 대형견 해리는 기본적으로 하루에 1~2시간은 산책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운동량을 잘 맞추지 못해서 부족하거나 넘치는 산책을 하는 날이 많았다. 지금은 요령이 생겨 적당한 산책 시간과 강도를 찾았고 그날그날 기분과 날씨에 맞게 적당한 코스를 정해 산책을 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어쨌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책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변함이 없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는 날도 있지만 그런 날도 거를 수 없는 것이 산책이다.
또 다른 변화는 청소를 자주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가끔 대형견과 산다는 것은 치워도 치워도 깨끗해지지 않는 집에 살게 되는 벌을 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도대체 털갈이 시즌이 따로 있는 것일까! 생각하게 되는 365일 흩날리는 털과 산책길에 온몸에 묻혀 오는 흙과 먼지, 산책길에 달고 오는 이름모를 풀들은 청소기를 돌리고 돌려도 거실 구석 어딘가에는 항상 쌓여 있다. 거기에다 해리는 괜히 신이 날 때 혹은 반대로 따분하고 심심할 때, 그러니까 종잡을 수 없는 많은 순간에 입에 걸리는 것을 물고 뜯고 씹고 맛보아 가루로 만든다. 이 가루들을 치우는 것은 역시 모두 나의 몫이다. 해리가 특별히 좋아하는 씹을거리로는 두루마리 휴지와 신발이 있다. 화장실 문이나 현관 중문이 열려있으면 어김없이 휴지와 신발을 물고 들어와 뜯어 놓는다. 늦게 발견하면 거실에는 눈이 쌓여 있거나 신발의 뒤꿈치가 사라져 있다. 처음에는 그때그때 야단치고 바로바로 치웠는데 이제는 어수선한 것에 내성이 생겼는지 허허 웃고 청소도 적당히 미룰 때가 많다. 그래도 집안에서 숨 쉬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주 청소를 해야만 한다. 해리 덕분에 깨끗하지만 깨끗하지 않은 집에 살게 된 셈이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점도 하나의 변화이다. 예전에는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그때그때의 느낌과 생각을 좇아 살았는데 이제는 5년, 10년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5년 정도는 큰 변화 없이 해리와 지금처럼 큰 변화 없이 살아가야지 생각한다. 5년은 나에게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긴 시간이지만 해리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짧고 소중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이 강아지를 잘 돌보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이 필요하므로 새삼 밥벌이의 무거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5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해리도 노령견이 되고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아프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를 미리 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정기 건강검진 등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적금도 들었다. 이 적금은 2년이 넘게 꾸준히 납입하고 있는데 예전의 나 같았으면 벌써 해지하고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이런 변화들은 예전의 내가 그동안 편하고 좋다고 생각하던 것,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는 모습이지만 자연스럽게 내 삶에 스며들었다. 돌아보면 변화된 생활이 당혹스럽고 또 가끔은 버겁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런 변화를 알고 해리를 키우기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해리와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아직도, 아니 여전히 이 커다란 솜뭉치를 안고 있으면, 해리의 들숨과 날숨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어릴 적부터 꿈꿔 왔던 큰 강아지에게 기대어 사는 행복한 삶이 현실로 이루어졌다는 것에 감격스럽다. 이 기쁨에 비하면야 이런 고생과 걱정은 가볍게 느껴진다.
나는 큰 강아지 해리와 살며 매일 몸을 움직이고 청소를 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상을 현실로, 꿈을 일상으로 가져온 대가를 미루지 않고 지불하며 내 삶에 찾아온 선물 같은 존재와 함께하는 일상을 잘 지켜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