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와 나 16
봄비가 내리는 휴일, 아침에 간단히 산책을 다녀와서 하루 종일 해리와 함께 거실에 누워 뒹굴고 있다. 해리는 거실 창쪽으로 얼굴을 두고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데 꿈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입을 씰룩이고 있다. 입술의 떨림이 점점 격렬해지는 것을 보니 별로 반가운 만남은 아닌가 보다. “해리야~” 이름을 부르며 해리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보드라운 털의 감촉이 느껴지고 일그러졌던 표정이 평온해진다.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다고 느끼는 그 따스한 순간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게 되었을까 새삼 감격스러워진다.
해리와 함게 살게된 것이 운명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먼길을 돌아서라도 꼭 만나게 될 상대를 만난 기분이랄까. 그렇지만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면 우리가 운명처럼 만나 이렇게 평온안 순간을 마주하게 된 것은 물 흐르는 대로 순조롭게 흘러 온 잔잔한 서사라기보다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결국엔 만나게 된 스펙터클한 스토리에 가깝다. 우리는 수많은 시간과 사건들을 지나 기적처럼 만나 함께 살게 되었다.
해리가 태어난 2015년, 나는 서울에 살았다. 바닷가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내가 속한 곳이 무척 답답하고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지역사회에서 어린 나의 말과 행동은 존중받지 못했고, 내가 원하는 것을 탐색할 선택지나 기회도 보장받지 못했다. 그때는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인생 최대의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탈출에 성공했고 큰 도시로 나가 내가 바라던 익명성과 다양성 속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삶은 그다지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그토록 바라던 곳으로 걸어들어왔는데도 시간이 지날수록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기분 말이다. 그렇다고 내 삶에 크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몇 번의 휴학을 거듭했지만 결국 대학을 졸업했고 몇 번의 퇴사를 반복했지만 안정적인 직장도 구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뜩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며 내가 힘들게 이뤄온 안정된 생활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뿌옇던 머리가 맑아지며 이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고민 끝에 원래 내가 살던,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작은 도시로 돌아오게 되었다. 해리가 세 살이던 2019년 봄의 일이다. 10여 년의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온 것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항복 선언이었다. 그렇지만 아주 좌절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조금은 자란 모습을 하고 돌아온 이 작은 도시는 이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고 그렇게 10여 년이라는 시간을 돌고 돌아 나는 다시 출발점에 선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나만의 삶을 꾸려가기로 했다.
내가 막 이곳에 내려왔을 때 해리가 크게 아팠다. 밥을 잘 먹지 않고 기운이 없다는 아빠의 말에 당장 병원으로 데려갔다. 해리를 데리러 간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모습이 영 기운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몰라서였다. 그런데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었다는 천청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되었다. 심장사상충은 모기를 매개로 옮겨지는 실 모양의 회충으로 동물에게 감염되면 폐동맥에 자리를 잡고 기생한다. 사상충에 감염된 초기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지만 숙주의 양분을 먹고 자란 사상충이 점점 커지면 숙주인 동물은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폐동맥을 막고 자라는 사상충 때문에 호흡이 불편해지고 컥컥 헛기침을 하게 되는데 된다고 한다. 제때 치료가 되지 않으면 기생충이 폐동맥을 막거나 심장으로 흘러들어가 숙주를 죽게 만든다. 실외에서 자라는 강아지는 모기에게 무방비로 노출되기에 많은 실외견이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어 사망한다고 한다. 심장사상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한 번 심장사상충 감염 예방 약을 먹여야 한다.
심장사상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해리가 감염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이런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제대로 된 예방을 하지 않아 해리가 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너무나 속상했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수많은 강아지와 함께 자랐는데도 이런 기본적인 건강상식조차 알지 못했다는 것이, 제대로 된 예방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 강아지는 감염되지 않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원망스럽고 또 부끄러웠다. 이런 복잡한 마음으로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데 정신이 아득해졌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안돼! 정신을 차려야 해!'
지체 없이 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이틀에 걸쳐 치료제를 주사하고 꼬박 한 달 동안 약을 먹어야 하는 기나긴 과정이었다. 주사 치료제는 많이 독한 약이라 쇼크가 생길 수도 있다는 사전 설명이 듣는데 마음이 저려왔다. 부디 힘든 치료를 잘 이겨내고 함께 살게 되기만을 바랐다. 아프다는 주사를 맞고 돌아온 날, 해리는 영 기운이 없는지 바닥에 축 늘어져 있다. 다행히 해리는 주사 치료 기간을 잘 넘겼고 한 달 후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사의 고비를 넘긴 후 해리는 내가 임시로 살던 원룸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사실 좁은 공간에 대형견과 사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함께 살 집을 짓고 이사하면서 함께 살아야지 생각했는데 집 짓는 과정도 계속 미뤄지고, 해리가 아프다는 것이 마음이 쓰여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서로에 대해 익숙하지 않고, 좁은 공간에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연습도 필요해서 처음에는 혼란스러운 순간도 많았지만 우리는 조금씩 함께 사는 것에 적응을 해 나갔다. 왜 이제야 해리를 데려 왔을까 후회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해 겨울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새 집으로 함께 이사를 왔다.
함께 살면서 해리에 대해 알게 된 사실 중 마음이 아픈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해리가 비와 바람을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밤 사이 큰비와 바람이 예보된 어느 날이었다. 저녁부터 바람이 많이 불어 집 안팎을 단속하고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해리가 무척 불안해 보였다. 온몸에 긴장을 하고 밖에서 나는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다 큰 소리가 나면 귀를 세워서 경계를 했고 이따금 짓기도 했다. 알 수 없는 소리와 무거운 기운을 감지한 것일까. 불안함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해리의 모습을 보니 밖에서 살았을 때는 태풍이 부는 날이나 비바람이 치는 날에 밤새 얼마나 무서웠을까, 까맣고 무거운 비가 작은 해리 집을 흔들어댈 때 혼자서 얼마나 불안해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아려왔다. 불안해하는 해리를 최대한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해리야, 괜찮아. 우리 집은 안전해.” 말해주었다. 그날 밤 이불을 거실로 가져와 해리와 함께 잤다. 다행히 해리는 곤히 잠들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텅 빈 마음을 안고 살던 사람과 폭풍이 부는 날마다 불안에 떨던 강아지가 만나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해리와 함께 하는 공간에서 온기를 느끼며 정말 오랜만에 서로가 있기에 완성되는 이곳이 우리가 머물 집이라는 감각이 생겨나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하는 날 동안 다시 공허함이 밀려오는 날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으니 이렇게 서로를 쓰다듬는 따스함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삶을 살아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