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와 나 2
처음 해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를 돌아보면 마치 거대한 혼돈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강아지와 단둘이 실내에서 사는 것은 처음인 나는 강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하고,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 몰라 쩔쩔맸다. 그동안 해리는 아무 데나 오줌을 싸고, 수시로 짖고, 내가 움직이거나 일을 하러 나가면 흥분해서 날뛰었다. 가끔 해리가 오랜 기간 인간과 함께 살아온 캐니스 루퍼스(개의 학명, 가정의 늑대 개라는 뜻이다)가 아니라 외계에서 온 미지의 생명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내가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이 강아지를 돌보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이 녀석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은 좀 많은 게 아니다. 해리는 아무 데나 배변을 했고 배변 구역이라고 거실 한 구석에 깔아 둔 패드를 비롯하여 집안의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었다. 그렇게 어질러진 집을 치우는 것도 나이고 쉬지 못하고 산책을 나가야 하는 것도 나였다. 대형견 다이어트를 만들어야 할까 싶을 정도로 살이 쑥쑥 빠지고 눈은 점점 쾡해졌다.
게다가 해리는 수시로 짖기까지 했다. 나는 소리에 민감한 편이라 이 점이 정말 힘들었다. 마치 말을 못 하는 갓난쟁이들이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우는 것처럼 해리도 무언가 요구사항이 있어 짖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뭔지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낮에는 그나마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 화장실을 간다거나 바람을 쐰다거나 하면 어떻게든 수습이 되었는데 문제는 밤이었다. 해리가 짖는 시간은 대중이 없었다. 밤 12시었다가 새벽 2시었다가 새벽 4시 반이었다가 어떤 날은 밤새 두 번 세 번 짖기도 했다. 큰 강아지의 남다른 울림통 덕에 짖는 소리도 커서 작정하고 짖으면 잘 때는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고 자부하던 나도 절로 눈이 번쩍 떠졌다. 해리 소리에 아침인가 하고 눈을 떠 보면 해는 아직 흔적도 비치지 않은 깜깜한 밤이다. 알람이 울리기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시간이 남았는데 해리의 하루는 이미 시작되어 버렸다. 가뜩이나 강아지 뒤치다꺼리하랴 산책시키랴 힘든데 잠도 푹 못 자니 정말 힘들었다. 어떤 날은 답답한 마음에 나도 함께 짖었다.
어떻게든 이 혼란을 해결해야 했다.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책과 영상을 찾아보며 고민하다가 해리가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강아지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반복되는 일상과 교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해리가 그런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까?
우선은 쉬운 것부터 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실외배변을 연습이었다. 되도록 자주 짧은 산책을 나가서 실외에서 배변을 하도록 유도했다. 실외에 배변을 하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데 우선 강아지의 습성에 더 맞고 집안 청소도 줄여준다. 배변패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친환경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배변 주기에 맞추어 실외로 나가야 한다는 작은 단점이 있기는 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을 배회하며 해리가 배변할 때까지 기다렸다. 배변을 하면 칭찬을 하고 혹시 배변 후에 바로 집으로 돌아오면 배변하면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 주변을 좀 더 둘러보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밖으로 나가도 쭈뼛쭈뼛 냄새만 맡고 배변은 하지 않아 몇 바퀴 돌다가 내가 지쳐 그냥 돌아올 때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배변을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더불어 실내 배변으로 인한 청소 노동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처음에는 배변 시간이 매우 불안정하고 잦아서 맞추기가 힘들었다. 내가 집을 비울 때나 잘 때는 실내에 배변을 하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서 해리에게 인사를 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배변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밤새 일을 본 흔적이 있으면 빨리 치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해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배변을 위한 외출이 계속되자 점차 실외에 배변하는 횟수가 늘었다. 해리도 그 편을 더 좋아하는 눈치였다.
산책도 되도록 정해진 시간에 1시간 넘게 충분히 걸을 수 있도록 계획해서 나갔다. 처음에는 산책 시간이 들쑥날쑥했지만 다른 일보다 해리 산책을 우선으로 생각해서 일정을 잡고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나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리고 퇴근 후에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해리와 집 주변의 해변산책로나 한적한 길 산책했다. 휴일에는 평소 출근을 하는 시간에 함께 나와 인근의 나지막한 산들을 찾아가 조금 길게 등산을 했다. 산책 길에 해리는 무척 행복해 보였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그동안 쌓인 피로와 꽁했던 기분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해리와 함께 걸으며 새롭게 발견한 장소도 많았고, 이번 주는 어디로 갈까 알아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살아가기 위한 일상의 루틴을 만들어나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산책을 갔다가 밥을 먹는다, 퇴근 후에 긴 산책을 간다, 저녁을 먹고 다시 마당에 나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한 약속 같은 이 루틴 안에서 해리와 나는 안정감을 느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하면 어디가도 빠지지 않는 나였지만 어느덧 훌쩍 떠나는 것보다 해리와 함께 뻔한 일상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전에는 혼자 신나서 하던 일들도 내가 그러는 사이에 해리가 집에 웅크리고 멍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신기하게도 해리가 짖는 것이 줄어들었다. 딱히 무언가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세 번 짖던 것이 두 번으로 줄고 다시 한 번으로 줄고 짖는 간격도 점점 늘어났다. 배변도 주기가 길어지고 배변을 하는 시간도 예측 가능하게 안정되었다. 전에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면 즉시 해결했지만 이제는 조금 참고 배변 산책을 기다리는 것 같은 느김이었다. 불안해하거나 짖지 않아도 안전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밖으로 나가서 배변을 하고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이런 변화를 감지할 때면 우리가 점점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낯설게 느껴지는 혼돈의 시간도 있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고 관계를 맺으며 점점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해리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해리에게 더 애틋한 마음이 들었고 해리 역시 나를 특별한 존재라고 받아들이고 우리가 함께 하는 일상을 소중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이 일상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협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좋은 기억이 많아지자 우리의 일상이 점점 더 단단하게 채워졌다. 물론 해리의 입장은 다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욕구를 참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배변을 유예한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런 생각이 나만의 착각이 아니라 합리적인 추측이 아닐까. 해리가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나와 함께 하는 일상에 안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믿을 만한 반려인으로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진다.
이렇게 쓰고 나니 행복만 가득한 일상을 살고 있다는 말로 글을 마쳐야 할 것만 같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오늘만 해도 “안 돼!”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아직도 문제인 것은 쉽게 흥분하는 것, 이것은 정말 쉽게 고치기 어렵다. 더 많은 시간이 쌓이면 이런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거나 문제가 아닌 것이 될까.
여전히 알 수 없는 문제들 속에서 허덕이고 있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서로를 길들이고 서로에게 길들여지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