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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모 Apr 05. 2019

차가움과 뜨거움 그 어딘가, 러시아

러시아 사람들은 웃지 않는다

1년의 반은 겨울인 나라, 꽁꽁 언 겨울이 너무 길어서 일까?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보면 러시아인들의 표정은 경직되어있고 심각해 보인다. 뭐 지나가는 사람이 너무 실실거리고 가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한국인들은 어떤가, 아마도 미간에 힘을 팍 주고 가는 사람들로 가득할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이 미소에 박하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다 1년 남짓 러시아에 지내다 보니 그들의 미소가 때로는 나에게 힘이 되기도 한다.


오직 바보만이 이유 없이 웃는다


러시아의 오랜 속담이라고 한다. 이 오랜 속담으로 그들의 경직된 표정을 단숨에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웃음에 관한 몇몇 속담이나 격언들이 있지만 웃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웃으면 복이 와요”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 와 “오직 바보만이 이유 없이 웃는다” 는 상당히 거리감이 있는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다른 문화가 존재하고  그 속에 섞여 사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 일본 라멘집이 새로 오픈을 했다. 러시아에서 먹는 아시아 음식은 너무 짜거나 달아 항상 아쉬운 마음이다. 그래서 어딘가 새로운 아시아 음식점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대감을 가지고 도전해본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자 식당에 들어섰다.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 간격이 상당히 좁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나와 남편은 열심히 메뉴를 정독하며, 떠듬떠듬 읽어 내려갔다. 그 어떤 시간보다 집중하는 시간이다.

그러던 중 옆 테이블의 한 젊은 러시아 남자가 영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혹시 영어 하니? 여긴 영어 메뉴가 없네.. 메뉴 보는데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내가 도와줄게!

-와! 고마워! 너 여기 와봤어? 혹시 추천해줄 만한 메뉴 있니?

-아,, 나도 여기 처음이긴 해.

-아 그렇구나, 어쨌든 너무 고마워. 혹시 이건 뭔지 아니?

-응, 이건 새우가 들어간 뭐인 거 같은데,, 아 그게 뭐였더라 잠깐만 (옆에 있던 여자 친구에게 러시아어로 뭔가 물어보는 중)


하며 러시아어와 영어를 왔다 갔다 하며 우리의 메뉴 선정에 큰 공헌을 했다. 우리는 그 친구의 도움을 받아 꽤 괜찮은 두 개의 메뉴를 시켰다. 얘기해준 메뉴 잘 먹고 있다고 눈빛 교환도 하며 기분 좋은 식사를 이어갔다. 우리는 식사를 끝내고 먼저 일어서는 그들에게 명랑한 말투의 러시아어로  “고마워, 잘 가” 하며 인사를 잊지 않았다.


사실, 1년여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제 러시아 메뉴는 대강은 읽고 이해하며 주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먼저 내민 손은 참 따뜻했고 그냥 덥석 잡아버리고 싶은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해도 선뜻 도움에 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사람에게 먼저 손을 건네는 일은 아마도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웃음이 없는 러시아인, 그러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면 자연스레 먼저 손을 건네며 싱긋 미소 짓는 그들의 웃음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진정한 웃음이 이것이다 하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른 문화 속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결국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기분 좋은 저녁식사, 라멘이 그래서 더 맛있었나?

커버 이미지 출처: http://russiatrek.org/about-russian-people/why-russians-rarely-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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