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늘 설렌다. 처음이라 미숙해 두려울 때도 있지만 처음은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첫사랑만큼 기다리지 순간이 바로 첫 출근이다.
첫 출근의 느낌은 처음 입학할 때의 느낌과는 다르다. 때때면 입학하던 학창 시절과 달리 직장생활은 내가 원하던 때라고 해서, 나이에 맞는 때라고 해서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인지 첫 출근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하나의 문이 되기도 한다.
첫 출근 2주 차 만에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출근했던 2주 동안은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물론 계약직이었고 꿈에 그리던 직장까진 아니었지만, 내가 원하던 일의 경계에 있는 일이고 했고 근처에 꿈의 직장들이 몰려있어 출근은 꽤 의미 있었다.
출근은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태생이 올빼미고, 몇 달을 새벽 생활을 즐겼는데 한 순간에 새벽부터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모든 직장인들이 잠이 덜 깬 채로 준비를 하는 것처럼 나 역시 비몽사몽인 채로 화장을 하고 옷을 갖춰 입었다. 처음 해보는 출근 준비라 나름 즐겼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은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내 자리도 있었고 나름대로 사원으로서 챙김을 받았다. 그렇게 회사 생활에 적응해 갈 때쯤 재택근무가 가능하니 재택근무를 권했다. 마치 잘리는 기분처럼 다소 충격이긴 했다. 출근하는 기분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섭섭함이었다. 인력이 부족해 더 인원을 충원해야 한다는 회사의 사정이 있기도 했고, 나도 재택근무를 하는 편이 더 낫을 거 같다는 판단에 재택근무를 하기로 결정했다. 실은 충분히 재택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영상 자막을 제작하는 일이었는데, 영상파일과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나 할 수 있었다.
재택근무를 시작하고선 너무 편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것과 "꾸밈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회사에서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해 진한 화장은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민낯으로 일을 하고 출근을 하는 건 어색했다.
영상 자막 제막이라 일주일 작업 시간과 작업량만 맞추면 하루에 일을 몰아서 하든 5일 동안 일을 나눠서 하든 상관없었다. 대체로 나는 하루 반나절 정도 꼬박 몰아서 했다. 사실 하루를 꼼짝하고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손가락에 쥐가 날정도로 해야 일주일 치 작업량을 모두 끝낼 수 있는 양이었다. 엄청 많은 양이라 현재 인력으로는 회사가 원하는 목표치를 채울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 정도로 많다. 일을 하고 나면 숨 쉬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그래도 하루 반나절 투자해서 남은 5-6일이 편했기 때문에 버틸만했다. 실은 그렇다고 생각하며 하고 있다.
재택근무의 좋은 점은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할 수 있어 내 시간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 편한 옷차림으로 일을 해도 된다는 것, 출퇴근 이동시간이 없어 교통비나 식대가 들지 않는다는 점 정도였다. 물론 이 정도도 어느 정도 이점이었지만 시도때도없이 울리는 카톡 공지사항에 비하면 혜택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탄력근무제라 각 사원들이 자신이 원하는 요일에 맞춰 일하고 구글 시트에 기입만 하면 되는 시스템이었지만, 내가 근무하지 않는 날에도 카카오톡 단톡 방은 쉬는 날이 없었다. 알림을 꺼놔도 카카오톡에 들어가기만 하면 보이는 안내 메시지들은 매일 옥죄어오듯 괴롭게 했다. 시시때때로 작업량을 독촉하듯 확인하는 과장님의 메시지와 격려인 듯 지시인 듯한 팀장님의 안내글들은 한 회사의 사원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이롭게 볼 수 있도록 돕는 영상 자막을 제작하는 건지, 컴퓨터 앞 기계가 되는 일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했다.
'하... 재택은 해도 근무는 끝나지 않는구나.' 한숨을 내쉬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넵 알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 밖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이 발의됐고 시행 중인 기업들도 간혹 있다고 하는데, 이 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끊임없는 수정 요청사항과 온라인으로만 오고 가는 대화, 기계적으로 기입하고 확인받는 업무 모두 내가 꿈꾸던 출근의 모습은 아니었다. 몸은 힘들어도 사람들 틈에 껴 지하철을 오르내리고, 지하철에 앉아 하염없이 머리를 돌리며 졸더라도 마음은 편했던 그 2주가 오히려 그리웠다. 그렇게 평범한 직장인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다들 그렇게 힘들게 우리 부모님처럼 고생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 거구나'하는 생각, 그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겠구나'하며 한숨을 내쉬는데도 마음은 무거웠다.
'돈 벌기 참 쉽지 않구나'
조만간 또 일을 해야 한다.
월급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