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피디가 드라마를 놓지 못하는 이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힘든 순간은 늘 찾아온다. 그럴 때면 문득 “왜 나는 이 일을 좋아했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떠오른다. 처음 간절하게 원했던 마음은 잊어버리고, 오히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일로만 남겨뒀어야 했나”라는 회의가 밀려올 때도 있었다.
드라마 기획 피디의 일은 작가처럼 이야기를 직접 쓰지도 않고, 연출자처럼 현장에서 주목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조와 흐름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해야 하고, 드라마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가장 가까이 지켜본다. 그럼에도 “내가 이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이는 드물다. 이름 없는 수고 뒤에 숨어 있는 자리. 바로 그곳이 내 자리다.
때로는 스스로가 안쓰럽기도 하다. 대본 리딩 자리에서 작가와 배우가 큰 박수를 받을 때도 뒷자리에 앉아 그들을 지켜본다. 몇 시간을 대본을 붙들고 고민하고, 작가와 치열하고 회의했던 보이지 않는 순간들은 기록되지 않는다. 하지만 화면 속에서 이야기가 흐르는 순간, 그 장면 어딘가에 내 손길이 스며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림자 같지만 분명 존재하는 발자국이다. 그것만으로도 자부심이 생긴다. 언젠가 크레디트에 이름이 걸리는 순간을 기다리며 묵묵히 버틸 뿐이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른 속도를 원한다. 쇼츠와 릴스가 콘텐츠의 중심이 되고, 긴 호흡의 드라마는 비효율적인 것처럼 취급된다. 몇 작품 수가 줄고, 볼 만한 드라마마저 드물어졌다. 유행은 빨라지고 자극적인 콘텐츠는 넘쳐난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점점 외면하고, 나는 일 할 의지가 꺾이기도 한다. 내가 하는 일이 결국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일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이유를 찾는다. 드라마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빛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믿는다. 뻔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고, 오래 남을 한 편의 드라마를 세상에 내놓는 일. 누군가의 기억을 울리고, 마음속에 오래 남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마치 건물 사이에서 피어나는 장미처럼 말이다.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은 단순히 ‘좋아한다’는 마음 때문만은 아니다. 왜 시작했는지, 무엇을 바라며 여기까지 왔는지 계속 되새기기 때문이다. 남들이 잘 몰라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자랑스럽다.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비효율적인 일이 결국 가장 낭만적인 일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림자 속에서 장미를 키운다. 어쩌면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장미를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