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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gan Jun 28. 2018

프랑수아즈 사강, 사랑을 가장 간결하고도 사실적으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슬픔이여 안녕>

프랑스 파리에서의 9개월 간의 시간을 빠르고 강력하게 곱씹고 싶을 때마다 나는 프랑수아즈 사강(Françoise  Sagan)의 책을 집어 든다. 나는 아직도 그녀의 책을 처음 발견했던 그 날의 날씨와, 내가 입고 있던 옷, 주위를 감싼 공기와 사람들의 형태를 기억하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그녀를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비밀처럼 나만 알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바로 그녀의 언어가 나를 강력하게 지배했던 시간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적어도 매년 한 번씩 그녀의 책을 다시 읽는데, 그것은 일종의 혼자만의 의식 같은 것이다. 첫 해에 읽던 것과 매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은 감상에 신기하면서도 그녀의 언어에 감탄하는 것은 지루한 습관 같은 것이 되었다. 일 순간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뚫고 파리가, 그녀의 이야기가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그녀의 책 여러 권을 찾아 읽었지만, 우연히도 내가 지금 소유한 것은 두 권뿐인데, 첫 번째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이다.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연애소설이라고 말하기에 이 책에는 어쩐지 '시대'와 '인간 본능적 심리'를 관통하는 이야기와 주인공이 있다.


파리에서 실내장식가로 일하는 폴에게는 오래된 연인 로제가 있다. 폴은 오래된 관계에서 오는 권태로움보다는 로제의 '자유로운 연애'의 방식에 대해 익숙한 분노를 느끼면서도 그와 자신을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어느 날, 그녀는 새로운 고객을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젊고 아름다운 청년 시몽을 만나게 된다. 시몽은 폴의 아름다움과 신중함에 반하고 만다. 시몽은 곧 폴이 로제와의 관계에서 습관적인 슬픔과 고독을 느끼고 있다고 확신하고, 그녀를 그곳에서 빠져나오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몽은 폴에게 그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매 순간 그것을 표현하고 그녀 역시 그와 함께 행복하기를 바란다. 폴은 시몽에게 받는 시선과 애정행각에 행복감을 느끼면서도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로제와의 우연한 재회의 순간에 그와의 다시 익숙하고 길을 잃은 관계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는 사랑이야기이다. 우리의 삶에서 사랑을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사강은 사랑과 사랑을 하는 인물들을 그림으로써 삶에서 우리가 항상 마주하는 덧없고 변하기 쉬운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파리라는 곳은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그 이름만으로도 낭만적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도시일 것이다. 나에게 파리는 역시나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이자, 인간 본성의 ‘고독감’과 더불어 속박되기를 두려워하는 ‘자유에의 갈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사람들의 사는 곳이다. 그리고 프랑스아즈 사강, 그녀는 그녀가 만들어 낸 인물을 통해서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머물렀다.

그러나, 사강의 문체는 절대 화려하다거나 인물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더욱 인물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게 만들고, 상상력을 돕게 한다. 그럼에도 그녀가 집중하는 것은 심리묘사인 듯 보인다. 그것 역시 직관적이다. 길고 어려운 단어로 심리를 설명하려고 들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던져준다. 그런데 왜 그것이 여전히 신비스럽게 읽히는 것일까.


그녀의 첫 작품  <슬픔이여 안녕 Bonjour Tristesse>은 소설 첫 구절에 전체를 관통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드러내는 듯 시작한다. 주인공 세실은 부유한 아버지의 외동딸로 부족한 것이 없이 생활하고 있다. 그녀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젊고 비싼 애인과 남프랑스 해변의 아름다운 별장에서 여름휴가를 즐기게 된다. 세실은 그곳에서 시릴이라는 청년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


세실은 아버지와 공모한 자유롭고 부유한 생활에 익숙해 그것을 위협하는 상황에 지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죽은 어머니의 친구 안느가 찾아오면서 점점 어려운 국면을 맞는다. 안느는 매우 아름답고 이지적인 여성으로 그동안 아버지가 만나온 경박한 어린 창녀들과는 다르게 세련된 중년의 여인으로 그려진다. 세실의 아버지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고 세실의 새로운 어머니로 그녀를 맞고자 결정하고 결혼을 발표한다.


하지만 자유롭고 방탕한 생활에 익숙한 세실은 아버지와 안느의 결혼이 현실화되면 다가올 가정의 안락함을 부정하려 한다.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진 나머지 안느와 아버지를 갈라놓을 방법을 만든다. 세실은 자신의 남자 친구인 시릴과 아버지의 애인이었던 엘자가 새로운 연인 사이가 된 것처럼 꾸며 바람둥이인 아버지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순간의 질투심에 엘자와의 밀회를 즐기던 아버지를 목격한 안느는 이 사실에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고, 파리로 돌아가던 중 자동차 사고로 죽게 된다.


역시 아버지가 사업가인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프랑수와즈 사강은 소르본 대학에서 일 년간 예비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르지만 실패하게 되고, 약 2주 만에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완성한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그녀의 경험에서 기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슬픔이여 안녕 Bonjour Tristesse>이 나에게 이토록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주인공 세실의 모호하고도 복합적인 감정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녀 주위의 인물들의 태도에 대해 갑작스럽게 감정을 바뀌는 평범한 소녀이자, 흔들리는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세실은 안느의 아름다움과 지적인 태도에 감탄하다가도, 안느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경멸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면 이내 분노와 불안으로 들끓는다.


그래서 세실이 안느의 죽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지 모를 지독하게 기만적이고 교활한 행동을 했음에도 독자인 나는 세실의 불안한 청춘에 연민과 동료애를 느끼는 것이었다. 이 소설에서도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일인칭 시점으로 꼼꼼한 사실묘사는 무시한 채 감각적인 심리묘사를 주로 한다. 유난한 문체보다는 적절한 단어의 선택과 조합이 주는 문장을 읽는 즐거움이 있다.


사강은 사랑이야기를 기초로 한 이야기의 흐름에 또다시 인간 본능적인 감정(예컨대 욕망, 질투, 사랑, 분노 등)을 숨 가쁜 전개로 담은 것이다. <슬픔이여 안녕 Bonjour Tristesse>은 독자가 세실의 책략에 참여하는 사이에 어느새 비극적인 결말까지 한 순간에 읽어 내려가버리게 하는 소설이다.


"결혼이란 아스파라거스에 비니그레트 소스를 곁들이느냐 네덜란드식 소스를 곁들이느냐의 문제, 곧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라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한 작가의 말은 그녀가 쓴 사랑이야기가 오직 낭만적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예감하게 한다.


삶과 인간 본성의 감각들을 통찰한 듯한 그녀의 소설은 그래서 여전히 다시 읽고 싶고,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경험으로 채워진 나에게 새롭게 읽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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