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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은우 Sep 28. 2021

진지하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세대(4)

미래세대(The Next Generation)

재미없는 환경이 직장 생활의 흥미를 잃게 만드는 요인


미래 세대가 소비의 중심으로 떠오르자 기업에서도 이에 관심을 가지고 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광고를 늘려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헛발질이 많다.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 광고를 그대로 미디어 플랫폼으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광고에 젊은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돈은 돈대로 들지만 효과는 없는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통하는 광고는 그들의 관심사를 관통하는 것이거나 재미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기존의 전통적인 광고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나이 든 세대에게는 참으로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기업들이 기존의 정형화된 광고 패턴 혹은 제품 프로모션 형태를 벗어나 미래 세대의 입맛에 맞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미래세대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그들의 감성도 모르는 기성세대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의 제작과 집행을 승인하려니 확신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한두 푼 쓰고 마는 것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의 심리와 감성은 젊은 사람들이 가장 잘 알게 마련이다. 젊은 사람들이 그들의 취향에 맞게 광고를 기획해서 가져가도 전통적인 광고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상사들은 결재 단계에서 그들의 아이디어를 난도질하고 만다. ‘허술하고 덜떨어진’ B급 감성은 결재단계를 하나씩 거치면서 ‘정교하고 세련된’ A급 감성으로 탈바꿈하고 재미나 즐거움 대신 진지함과 엄숙함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이게 되겠어?’나 ‘광고가 뭔지나 알아?’라는 비난과 함께. 그렇게 몇 단계를 거치고 최종 승인을 받은 광고는 처음 젊은 직원이 기획한 내용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만다.


결국 직원은 직원대로, 상사는 상사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되는 ‘루즈-루즈-루즈(lose-lose-lose)’게임이 되고 만다. 자신의 기획안이 처참하게 망가지는 것을 본 젊은 직원은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게 되고 더욱더 회사로부터 마음이 떠나게 될 것이며, 결재라인에서 한 번씩 칼질을 한 상사들은 광고의 실패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될 것이며, 회사는 성과 없이 비용만 낭비하는 셈이 될 테니 말이다.


문제는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광고를 기획하는데 젊은 직원이 낸 아이디어를 미래세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는 기존 세대가 단지 결재라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의 입장에서 뜯어고친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당연해 보이고 언뜻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일들이 미래세대로 하여금 회사생활에 회의를 갖게 만드는 커다란 요인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만든 기획안이 갈수록 이상한 모습으로 변질되는 것을 보며 회의를 느끼고 일이 즐겁지 않게 여겨지는 것이다.


인터넷에 ‘개그콘서트가 망한 진짜 이유’라는 영상이 올라왔다. 과거에 ‘웃찾사’라는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한 개그맨이 하는 말을 담은 영상인데, 개그맨들이 코너를 만들면 PD에게 사전에 검수를 받아야 한다. PD가 재미있으면 방송에 나갈 수 있고 PD가 재미없다고 여기면 방송에 나갈 수 없다. 아무리 관객이 재밌다고 해도 PD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방송에 나갈 수 없다고 한다. 어렵사리 PD를 통과해도 그 위에 있는 부장 마음에 안 들면 역시 방송에 나갈 수 없다. 겨우겨우 부장까지 통과하고 나면 그 위에 또 국장이 딴죽을 건다.



이렇게 윗사람 마음에 따라 방송 내용이 결정되다 보니 방송이 나가야만 얼굴이 알려질 수 있고 인지도를 얻을 수 있는 개그맨들의 입장에서는 윗사람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처음에 관객의 취향에 맞춰 개그맨들이 만든 콘텐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윗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정치풍자 같은 개그만 남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수준이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고 지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갈리면서 시청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 책임은 잘 알다시피 국장이나 부장이 아니라 개그 프로를 없애고 개그맨들을 실업자로 만드는 것으로 끝이 났다.


방송과 직장 생활은 다르지만 기업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직급과 직책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사회인 기업에서 의사결정의 힘은 윗사람에게 있다 보니 실무자는 자기 의견을 잃어버리고 윗사람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한 광고를 만든다고 하면 윗사람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정말 미래세대가 원하는 내용과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멀어지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자신의 일에 흥미와 열정을 갖는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다.


진지함을 싫어하고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미래세대는 직장 생활에 대해서도 될 수 있으면 즐겁기를 바란다. 그들도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아나가기 위한 수입이 필요하고 비록 과거 세대처럼 직장 생활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긴 어렵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직장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므로 이왕에 직장 생활을 할 거라면 즐겁게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러한 미래세대의 사고는 직장에서의 생활을 늘 진지하고 엄숙하게, 때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기존 세대와 충돌을 일으킨다.


직장은 꽤나 위계적인 집단이다. 유교와 군대 문화의 영향이 뿌리 깊이 녹아들어 가 있는 우리나라 직장에서 직급은 곧 계급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상위 계급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하위 계급을 차근차근 거쳐 가지 않으면 안 되고 각 계급에서 다룰 수 있는 업무수준에도 제약이 있다. 사원은 사원급의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과장은 과장, 부장은 부장급의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일의 특성과 자신의 적성이 맞지 않아도 일정 수준에 오를 때까지는 주어진 일만 해야 한다. 섣부르게 자신의 수준과 맞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일에 나섰다간 좋지 않은 소리를 듣거나 욕을 먹을 수도 있다. 일이 손에 익어도 그 일이 자신의 직급에 맞는 일이라면 그 일만 해야 한다. 상위 수준의 업무는 상위 직급에 있는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가급적 말조심을 해야 하고 의견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진다.



게다가 회사는 위로 올라가면서 일의 결과물이 달라진다. 사원이 만든 자료는 과장의 의견에 맞추어 변형되고, 과장이 만든 자료는 부장의 의견에 맞추어 변형된다. 늘 윗사람의 생각에 맞추어 아랫사람의 생각은 뒤바뀔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러한 프로세스를 싸잡아 나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결재라인의 위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경험이나 지식이 많고 상황이나 문제를 바라보는 눈이 넓으니 그들의 조언이 방향을 잘못 잡거나 엉뚱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우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미래세대는 나이 든 세대의 식견을 배우고 자신의 업무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


문제는 모든 일에 그 과정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미래세대를 상대로 한 광고를 기획하는 일조차 미래세대가 만든 자료는 위로 가면서 점점 구세대의 생각을 담아 변형된다. 최종 완성본은 자신의 의견과는 전혀 무관한 결과물이 되고 만다. 젊은 직원들은 그게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자기 의견을 마음 놓고 드러낼 수도 없다.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트렌드가 되어 융통성이 생겼지만 만일 신입사원이 사상 처음으로 지금과 같은 ‘병맛’ 광고 기획안을 만들어 결재를 올린다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구세대가 얼마나 될 것인가? 아마도 진지하게 제품의 특성이나 스펙을 전달하는 A급 광고 기획안으로 대체될 것이고 ‘어디서 저런 사람이 들어왔어?’라며 젊은 직원에 대한 평가는 썩 좋지 못할 것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모두 pixabay.com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단, 그래프는 직접 만든 것이며 따라서 인용할 경우 허락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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