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The Next Generation)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병맛’을 콘셉트로 즐거움을 주는 광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18년에 LG 생활건강에서 만든 1분 32초짜리 세제 광고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영상 중 무려 75%인 1분 9초를 토요일에 일을 줬다며 고객사인 LG 생활건강을 욕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겨우 나머지 23초만 세탁세제 홍보에 할애했다. 그 내용도 상당히 원색적이다.
“아니 씨*, 일을 무슨 불토에 시키냐고! 나는 완전 돈만 주면 되는 줄 아나 본데, 맞아요, 맞습니다. 정확히 찾아오셨네요. 역시 돈이 최고야. 짜릿해. 언제나 새로워.”
내용이나 방식이 기존의 광고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고 혁신적이지만 미래 세대 사이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광고는 2년간 무려 44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어진 후속 광고도 100만 이상의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높은 조회 수가 반드시 매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튜브의 광고에 달린 댓글 중에는 광고를 보고 세재를 구입했다는 의견도 많은 것으로 보아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덕선 아빠’ 성동일 씨가 출연하는 광고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광고 초반에 성동일 씨는 전통적인 광고 형태로 ‘창을 한 번 바꿔보시죠. 탁 트인 개방감에...’하며 KCC의 창호 소개를 한다.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사람이 ‘요즘 저런 광고 누가 봐. 답답하다’ 하며 ‘답답함, 속 터짐, 울화통’이라는 자막이 나타난다. 그것만 보면 마치 소화제 광고처럼 보인다. 하지만 곧이어 ‘답답하시다고요? KCC 창호라면 답답함이 가라앉고 속이 뻥 뚫릴 거예요’라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대놓고 소화제 광고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어 아주 오래전에 유행했던 ‘아버님 댁에 보일러 하나 놔드려야겠어요’라는 광고를 패러디하여 ‘여보 아버님 댁에 창하나 놔드려야겠어요’라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이어 ‘너 만나고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라며 낙엽을 집어던지는 초콜릿 광고를 패러디한 장면, 안마의자에 앉아 편하게 안마를 즐기는 안마기 광고를 패러디한 모습, 축구선수 안정환이 등장하여 ‘피부가 장난이 아닌데’라는 멘트를 날리던 화장품 광고를 패러디한 장면 등이 연이어 나온다. 중간에 스탭이 ‘그런데 이게 화장품 광고예요, 창호 광고예요?’하고 묻는 데 대해 ‘몰라. 그냥 빨리 찍고 집에 가게 대충 해’라고 대답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어 패딩 광고, 무제한 데이터를 소개하는 스마트폰 광고, 콜럼비아 원두를 사용한 커피 광고, 얼큰한 라면 광고가 이어 나오고 ‘창호랑 얼큰한 거랑 무슨 상관이야?’라는 멘트가 나온다. 그 질문에 계면쩍은 듯 성동일 씨가 빵 터진 웃음을 웃는 장면이 비치고 이어 ‘빵 터지게 세상을 연결하는 창호’라는 멘트가 등장한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고 뜬금없는 내용이지만 이어 스팸 광고까지 등장하고 나서야 성동일 씨가 나서 창을 한 번 바꿔보라며 ‘세상과 연결하는 창’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하지만 그마저 끝까지 마치지 않고 ‘염병할, 도대체 세상과 몇 번을 연결하는 거야’라며 일방적으로 촬영을 중단하고 광고도 끝이 난다.
이 광고를 보고 있자면 과거 한 번쯤 봤음직한 광고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뒤로 갈수록 이번에는 어떤 광고를 어떻게 패러디할까 궁금증을 가지게 만들고 예상치 못한 장면에 큰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2분 52초짜리 이 광고는 유튜브에서 2021년 1월 13일 기준으로 무려 760만 회 이상 조회되는 폭발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런 형태의 광고들이 즐거움을 무기로 쏟아져 나오고 이것이 미래 세대의 인기를 얻으며 폭발적으로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가고 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핫한 인물 중 하나인 만화가 이 말 연 씨와 주호민 씨가 등장하는 ‘SSG.com’의 광고도 7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오히려 회사의 공식 모델인 공유 씨와 공효진 씨가 등장하는 오리지널 A급 광고에 비해 여섯 배나 높은 광고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네이버의 ‘뽐’ 게시판에는 ‘귀여운 농협 직원’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과일을 감싼 비닐 포장지에 붙이는 태그에 ‘수박’, ‘참외’, ‘자두’ 식으로 과일 이름을 적어놓은 것이 아니라 과일 이름을 재미있게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참외는 ‘이 참외 널 보러 왔어’, 멜론은 ‘내 상태가 메론’, 체리는 ‘정신들 체리 세요’, 자두는 ‘자두 자두 졸려’, 단감은 ‘정말 맛있으면 단감’, 포도는 ‘나를 보고시 포도 참아’, 수박은 ‘너를 사랑할 수박 에’로 바꾸어 놓았다. 이 글에 달린 대부분의 반응은 긍정적인 것이었다. ‘귤’ 포장에는 아예 이름조차 없이 ‘아, 까먹었다’라고 상품명을 붙여놓은 것도 있다.
비록 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는 못하지만 과일은 그 생김새만으로도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으므로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재미난 안내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이 태그를 본 소비자들도 싱긋 웃으며 잠시나마 즐거움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미래세대가 추구하는 즐거움은 광고나 마케팅 시장을 이렇게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놓고 있다. ‘이렇게 광고를 해도 될까?’라는 의문은 이미 오래전에 의심의 꼬리를 떼어버렸고 아무리 봐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색상도 촌스럽고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체를 가진 ‘병맛’ 디자인은 어느새 하나의 마케팅 기법이나 트렌드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의도적으로 그런 요소를 포함시키려고 한다.
그러한 광고를 보면서 미래 세대는 ‘어머, 이건 꼭 사야 돼’라며 ‘득템(물건을 손에 넣는 것)’의 의욕을 다진다. 예술적 감성을 배제하고 촌스러운 ‘키치(Kitsch)’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마케팅은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 SNS를 생활의 일부분으로 활용하는 미래 세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점차 그 세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상파를 중심으로 한 소위 A급 콘텐츠는 꽤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진다. 광고 기획사에서 광고주의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고생을 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는 마치 선택받은 소수만을 위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태생부터 절망적인 환경에 놓인, 그래서 자신이 마치 사회의 메인 스트림에서 밀려나 B급처럼 느껴지는 상황에 놓인 미래세대는 진지함으로 무장된 A급 콘텐츠보다는 다소 부족하고 어리숙해 보이며 맥락적으로 뜬금없어 보일지라도 재미를 주는 B급 콘텐츠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웃을 일 없는 세상에서 그런 콘텐츠를 보면서라도 자신의 처지에 위안을 받고 싶은 심정으로 말이다. 어쩌면 ‘인싸’가 될 수 없는 스스로의 처지를 B급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무의식중에 발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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