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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은우 Sep 23. 2021

진지하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세대(1)

미래세대(The Next Generation)

복세편살 –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환경에서 나고 자란 미래세대가 보이는 두 번째 특징은 복잡하고 진지한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복세편살’을 추구한다. ‘복세편살’이란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의 줄임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취업이며 결혼, 출산, 육아, 내 집 마련, 노후 등 현실적으로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이 많은데 이런 것들을 일일이 신경 쓰며 살다가는 그들 말대로 암에 걸려 죽을 수도 있으니 차라리 모두 잊고 마음만이라도 편하게 살자는 생각이 많다. 어차피 고민하나 고민하지 않으나 해결책이 막연한 건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러한 마음가짐이 미래세대로 하여금 진지한 것을 꺼리게 만들었다.


일부에서는 90년대 생의 특징 중 하나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으로 보면 그 말이 맞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면 그들이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기보다 진지한 것을 싫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쓰이는 말 중 ‘진지충’이라는 말이 있다. 웃자고 한 얘기에 누군가가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얘기를 늘어놓는 것을 꼬집어 비꼬는 말인데 단순히 ‘진지충’이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극도로 혐오한다는 의미의 ‘극혐’을 붙여 ‘진지충 극혐’ 또는 소리 나는 대로 ‘진지충 그켬’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말로 ‘설명충’이라는 것도 있다. 논란이 되는 무언가에 대해 앞에 나서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역시 좋은 의미보다는 혐오하거나 싫어하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만큼 진지함은 미래 세대에게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는 죽음에 이르는 5단계를 주장했다. 1단계는 부정, 2단계는 분노, 3단계는 타협, 4단계는 우울, 5단계는 수용이다. 누군가 암에 걸렸다고 해보자. 그 결과를 전해 들은 환자는 ‘그럴 리 없다’며 사실을 부정하려고 한다. 검사 결과가 잘못되었을 것이라며 ‘돌팔이 같은 의사’들을 욕하기도 하고 다른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하려고 한다. 그 시기가 지나면 마음속에서 분노가 차오른다.


자신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왜 자신에게 그런 시련이 닥치는지 알 수 없다며 자기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을 향해 화를 낸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자기 상황을 타협하려고 한다. 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열심히 기도할 테니 건강을 되찾게 해달라고 하거나 의사에게 돈을 얼마든지 줄 테니 살 수 있게만 해달라고 하는 식이다. 다시 이 단계를 거치면 어쩔 수 없음을 알고 무기력해지거나 우울함에 빠져들게 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조금 거창하게 들이대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망적인 상황에 맞닥뜨린 미래세대도 집단적으로 이러한 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자신은 다를 거라고, 자신은 취업할 수 있을 거라고 현실을 부정하다가, 취업하기 힘들고 불안한 고용에 떨어야 하는 상황에 분노를 느끼고, 기업의 채용패턴에 맞추어 취업 준비를 하는 타협 단계를 거쳐 그러한 현실에 우울감을 느끼고 마지막에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진행 단계가 다르기도 하고 단계를 건너뛰기도 하겠지만 대개는 이러한 감정의 변화를 거친다.


진지함을 싫어하는 미래 세대의 세태는 이러한 감정 변화의 결과물일 수 있다. 사람들은 절망스러운 상황이 되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누구도 절망스러운 상황에 오래 머물러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애써 희망적인 상황을 떠올리려고 하고 큰 소리로 웃거나 과장된 몸짓을 보이는 등 긍정적으로 행동하려고 한다. 그래야 절망적인 상황을 조금이라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내 집 마련도 쉽지 않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미래 세대에게 진지함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애써 피하고 싶은 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진지하게 자신이 처한 환경을 대해봐야 힘들기만 할 뿐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애써 진지함을 잊고 주어진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심리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처럼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한다. 어떻게든 희망 없는 시대를 참고 건너갈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어쩌면 자포자기의 심정일 수도 있고 어쩌면 짜증 나는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회피 심정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미래 세대의 성향을 나이 든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매사에 진지하지 못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미래 세대를 보며 나이 든 세대는 그들을 너무 가볍고 천박하다고 여긴다. 일도 사랑도 인간관계도 깊이 없이 너무나 소홀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냐고 나무란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뭐라 하든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과장되게 즐거움을 추구하고 그것을 앞세워 세상을 바꾸어 나가고 있다. 미래세대가 추구하는 즐거움은 소비자로써 제품이나 서비스, 홍보, 마케팅 등 기업의 기본적인 매출 활동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진지함을 벗어나 소비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아마도 그 출발은 충주시를 알리는 홍보활동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관할 행정구역에 속해 있는 지역의 특산물을 알리기 위해 홍보 포스터를 제작하거나 홈페이지에 문구를 만들어 소개하곤 한다. 그러한 홍보물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정형화된 포맷을 따르는 편이다. 그러기에 행정기관에서 만들어지는 홍보자료라는 것은 딱딱하고 고리타분하기 그지없다. 의도적으로 지역 정보를 얻고자 하거나 지역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정도로 형식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소위 말하는 ‘병맛(덜 떨어진 듯한 재미)’으로 무장한 포스터가 충주시에서 등장했다. 오래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배우 심영씨가 병상에 누워 ‘내가 고자라니...’하고 흐느끼는 장면을 패러디하여 ‘고구마라니...’하며 산척면 고구마를 소개하기도 하고, 고구마를 이용하여 ‘고구마, 구우면, 마시쩡’ 혹은 ‘고구마, 구운 거 싫으면, 마탕?’이라는 삼행시를 짓기도 한다. 살미면의 옥수수를 소개하면서 ‘옥수수 털어도 돼요?’와 같은, 기존 홍보 포스터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B급 문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림도 기존의 디자이너들이 정성스럽게 작업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의 그림판을 이용하여 대충 그린 것처럼 엉성하고 허술하다. 귀찮아서 대충 만든 것 같기도 하고, 만들다 만 것 같기도 하고 초등학생이 그린 것처럼 허술한 B급 감성이 물씬 묻어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홍보 포스터는 온라인을 타고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며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포스터 하나로 충주시는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고구마 축제 홍보 이미지는 게재하는 당일 공공기관 홍보물 조회 수 1위를 차지했다. 과거에는 충주시의 특산물이나 충주의 관할 행정구역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던 사람들조차 그곳의 지명과 특산물을 줄줄 읊을 정도로 익숙한 도시가 되었다. 충주시에서 만든 이러한 홍보물은 ‘농산물’ 축제가 가진 고리타분함을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튜브를 이용하여 충주시를 홍보하는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데 대놓고 ‘시장님이 시켜서 하는 유튜브’라고 하며 엉뚱한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충주 교도소 소개 편에서는 도망치는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교도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팁을 묻는 등 ‘약간 덜떨어진’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러한 포스터와 영상으로 인해 충주시는 젊은 사람들에게 크게 알려졌으며 충주시에서 올리는 홍보영상들은 매회 수십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어떤 광보보다 힙합 다’거나 ‘B급이 아니라 A급이다’라는 반응을 얻으며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고 있다. 재미라는 요소 하나를 통해 이전의 정형화되고 공식화된 홍보물로는 기대하기 힘든 효과를 거둔 것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모두 pixabay.com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단, 그래프는 직접 만든 것이며 따라서 인용할 경우 허락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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