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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은우 Sep 16. 2021

직장보다는 개인적인 삶을 중시하는 세대(4)

<미래세대(The Next Generation)>

의무도 중요하지만 권리도 중요하다


직장 생활에 대한 관심의 저하와 반대급부로 나타난 개인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관심 증가는 미래 세대에게 의무와 권리를 동일한 무게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과거 세대에게 직장의 무게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 쪽으로 현격하게 기울어 있었다. 권리는 깃털처럼 가볍고 의무는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늘 저울추는 의무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그 누구도 의무 앞에서 자신의 권리를 내세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그동안에는 참고 지냈지만 개인적인 삶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누리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불편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근무 시간을 지나 일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근무시간의 개념 자체가 희박했다. 출근시간은 칼같이 지켜야 하지만 퇴근 시간은 고무줄처럼 마냥 늘어나기 일쑤였다. ‘칼퇴근’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저녁을 먹고 당연하다는 듯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새벽이 되어서야 퇴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오죽하면 한 달에 두 번씩 정시에 퇴근하는 ‘가정의 날’ 행사가 있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돈을 더 주거나 직원들을 위해 배려해 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돈은 정해진 월급만큼만 주면서 야근이나 휴일 특근 등을 요구하자 미래 세대들은 이에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원칙을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적인 삶의 질을 높이려면 그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야근이나 특근을 하게 되면 자기 삶에 투자할 시간이 줄어들게 되므로 그러한 요인들은 불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할 일을 마치면 퇴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미처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했어도 시간이 되면 퇴근하는 것이 맞는다고 여긴다. 주위에 일을 끝내지 못한 동료가 있을 경우 과거 세대는 일을 도와주거나 그러지는 못하더라도 같이 남아 자리를 지켜주려고 했다.



하지만 미래 세대는 이렇게 형식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자기 일은 철저히 자기 일일뿐 다른 사람을 도와줄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런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고용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자신들의 의무는 정해진 8시간의 근무시간을 채우는 것이므로 그 의무를 다하고 나면 이후에는 자신들의 권리가 더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법으로 규정된 근무시간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8시간이다. 주 5일을 하면 40시간이지만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주 52시간으로 근무시간을 늘릴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이를 철저히 지키려고 한다. 과거 세대처럼 야근이나 철야를 해도 얻는 것이 없으니 개인적인 삶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 마음 놓고 퇴근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유시간을 자신을 돌보는데 사용하고 싶어 한다.


이들에게 과거 세대처럼 ‘의무감을 가져라’, ‘열정을 가져라’, ‘책임감을 높여라’라고 잔소리해봐야 소용없다. 그럴수록 ‘줄 건 안 주고받을 것만 챙긴다’며 오히려 회사에 대한 반감은 높아질 것이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며 서로 감정의 골만 깊어질 뿐이다. 어쩌면 정해진 시간에 ‘칼퇴근’하는 미래 세대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것 자체가 기성세대의 잘못일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그렇게 살았기에 맹목적적으로 미래 세대도 그렇게 하길 바라지만 엄연히 법으로 정해진 규칙은 정해진 퇴근시간에 퇴근하는 것이 맞으니 말이다.


2020년에 대한상공회의소가 대기업과 중견기업 직장인 1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63.9%가 세대 차이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세대 차이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심하게 나타났다. 세대 갈등이 나타나는 이유는 야근, 업무지시, 회식 등 다양한 분야인데 기존 세대라 할 수 있는 40대 이상에서는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야근은 어쩔 수 없다’고 답한 비율이 높은 반면 20대와 30대에서는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불과 26.9%와 27.2%에 그쳤다.


이 조사에서 한 팀장급 직원은 ‘팀 전체가 남아서 일을 하는데 시간이 됐다고 막내가 칼퇴근을 하는 건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적인 행동’이라고 했다. 반면에 젊은 직원의 생각은 다르다. ‘업무시간에 열심히 했으면 역할을 다한 것이다. 정해진 업무시간에 해야 할 일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야근을 요구하는 건 납득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윗사람들이 의무를 중시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권리를 보다 중시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미래세대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오히려 헛발질을 할 수도 있다. 과거 내가 근무했던 모 기업의 팀장으로 있는 후배는 젊은 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싶은 마음에 점심을 사주기도 하고 종종 퇴근 후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팀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왜 팀장이 함께 밥을 먹자고 강요를 하는지 모르겠다. 자유를 빼앗긴 것 같아 너무 불편하다’며 임원에게 불평을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후배는 젊은 팀원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다며 다시는 밥을 사지 않는다고 분노를 드러냈지만 그의 말을 듣는 내 입장에서는 시대의 변화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질을 위해 직장 생활보다 개인생활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점심시간이나 퇴근 이후의 시간은 개인의 것이다. 직장에 얽매여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들은 퇴근 후에 직장동료와 어울리고 싶지 않아 의도적으로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철저하게 직장과 사생활을 분리하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도 안 통하는 나이 든 팀장이 퇴근 이후의 시간을 빼앗았으니 싫어할 것은 당연한 얘기다.


이미 이런 요구는 내가 직장 생활을 그만두기 전에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더욱더 노골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데 과거처럼 밥 사주고 술 사주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구태의연하고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미래 세대는 직장에 대한 개념이 과거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취업이라는 사회의 문턱 앞에서부터 발이 걸려 넘어진 그들에게 직장의 의미가 과거 고도성장이나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던 시절에 입사한 사람들과 같을 수 없다. 노력한 만큼 돌려받을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것이 없으므로 마음의 위안이라도 받고 싶은 것뿐이지 그들이 이기적인 신세대이기 때문에 편안한 삶을 추구하고 개인주의가 극에 달한 것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런 이유도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미래 세대에게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그 윗세대가 보기에는 똑같았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만일 미래 세대가 일하는 것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고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들의 사고와 행동도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분명 그들도 그럴 것이다. 똑같은 미래 세대이고 우리나라보다 훨씬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외국의 젊은 사원들이 감금당하다시피 하면서도 직장에 자신의 삶을 바치고 충성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구글과 같은 회사는 직장 안에 이발소도 있고 각종 사적인 심부름을 대신해 주는 서비스도 있어 직장을 벗어나지 않고도 필요한 모든 것들을 그 안에서 다 해결할 수 있다. 회사는 가급적 직원들이 회사를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며 성과를 만들어내길 바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시스템을 만든 것인데 구글의 젊은 직원들은 그것을 생각보다 잘 따른다. 누가 강요하지 않음에도 스스로 나서서 밤을 새우기도 한다. 대신 직원들은 회사로부터 충분한 대가를 돌려받는다.


기업들이 구글처럼 못하니 미래 세대는 직장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직장에 충성하고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나이 들어 팽 당하고 땅을 치며 후회할 가능성이 높으니 차라리 처음부터 마음을 안 열겠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안타까운 현실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그런 그들에게 비난하고 손가락질하기보다는 그들이 처한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들이 직장 생활에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미래 세대가 직장 생활에 대해 조금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과거 세대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바뀌라고 말하기 전에 기성세대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은 바뀌지 않으면서 미래 세대에게 일방적으로 바뀌라고 말하는 것은 장기판에서 미래 세대가 가진 차포를 다 빼앗고도 동일한 규칙으로 경기를 하자고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세상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었으면 그 변화를 읽고 기성세대가 그에 맞추어 달라져야 한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미래 세대만 탓하며 자신은 달라지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이기적인 행동이고 꼰대스러운 짓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머리로만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기업은 야근이 일상이면서도 근태를 관리하는 인사 시스템에는 주 52시간 이상은 입력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 안 지키면서 신세대를 배려하는 듯한 말만 내뱉는 걸 미래세대는 지독히도 싫어한다. 차라리 그런 말을 하지 말고 각자 해야 할 일이나 열심히 하고 정해진 원칙이나 잘 지키자고 한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온라인에서는 이런 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아래 내용은 실제 미래 세대의 취업을 다룬 글에 달린 댓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가급적 원문 그대로 옮기려 했으나 문장력이 워낙 떨어져 약간 손을 봤다.


‘밤새 게임하고 채팅하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용 셀피 찍기, 먹방 하기, 그런 짓을 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찾아보면 젊은 사람들이 일할 곳은 많다. 지역에서, 농가에서, 취직해서 일해도 할 게 많은데 안 오니까 그런 거다. 자기 자신을 알라. 지역은 일손이 없어서 죽는다.’


들여다보면 꼰대도 이만한 꼰대가 없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알라며 젊은 사람에게 일침을 날리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할 사람은 글쓴이인 것처럼 보인다. 미래 세대에 대한 이해는 손톱만큼도 없다. 미래 세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마도 혈관이 터져 죽을지도 모른다. 혈압이 올라서 말이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근무해도 부모의 도움 없이는 부부가 맞벌이를 하지 않는 한 아이를 낳고 집을 사는 건 불가능하다. 어느 동네의 아파트 한 채가 50억 원을 오르내린다니 이젠 맞벌이를 한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하물며 중소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의 봉급이나 복리후생 수준은 대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제대로 된 관리체계마저 갖춘 곳이 별로 없다. 근무시간은 ‘개나 줘버려’라는 말처럼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주먹구구식으로 ‘사장이 곧 법’인 곳이 많다. 그렇다면 중소기업에 다니는 미래 세대가 대기업에 다니는 미래 세대에 비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방 한 칸 살 수도 없이 적은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그러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젊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나이 든 나조차도 그러한 악조건에서 단물 뽑히듯 일해야 한다면 하기 싫을 것 같다.


생계를 걱정한다면 위에 글을 쓴 사람의 말처럼 지방에 내려가 일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먹고는 살아야 하므로 말이다. 하지만 산다는 건 짐승처럼 생계만 유지한다고 해서 만족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고 온 가족이 모여 살 수 있는 따뜻한 집도 있어야 하고 노후를 안정되게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을 통해 전문적인 역량을 쌓고 자기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때로는 친구도 만나 회포도 풀고 문화적인 즐거움도 누려야 한다. 지방에 내려가 일하는 것으로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건 지극히 일부분만 바라본 지엽적인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글쓴이는 아마도 그 모든 것을 이루었을 것이다. 과거 고도성장 시절을 거치면서 말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 시절의 기억밖에 없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도 비록 월급은 적어도 그곳에서 열심히 하면 자기가 이룬 것을 그들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더 이기적인 것일까? 세상이 바뀐 것을 모르고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이 이기적인 것일까, 아니면 현실에 맞추어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더 이기적인 것일까? 그렇게 이해가 부족하니 ‘라떼는 말이야...’나 ‘요즘 젊은 것들은 말이야...’와 같은 말을 하는 꼰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모두 pixabay.com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단, 그래프는 직접 만든 것이며 따라서 인용할 경우 허락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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