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은우 Sep 14. 2021

직장보다는 개인적인 삶을 중시하는 세대(2)

미래세대(The Next Generation)

기업에서 일명 ‘C-Player’라고 부르는 저성과자 관리도 고용불안을 해치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매년 일정한 숫자의 직원들을 내보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만년 부장’, ‘만년 과장’ 등 ‘만년’ 꼬리표를 달고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의 아빠로 나온 배우 성동일은 정년을 4-5년 앞둔 은행원이었지만 내세울 만한 직급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본인은 그런 현실에 힘들어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년에 가까워질 때까지 해고의 위험은 없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달리 거의 모든 기업에서 저성과자를 관리하고 있다. 성과가 부진한 사람들을 따로 모아 모니터링하거나 몇 개월씩 교육을 하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 동안 연속으로 C 등급을 받으면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저성과자라는 것이 일만 못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직과 맞지 않거나 특히 상사에게 밉보이게 되면 누구라도 저성과자라는 오명을 쓸 수 있다. 누구나 대상자가 될 수 있고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 저성과자 그룹에서 탈출할 수 있지만 한 번 성과가 부진한 사람으로 명단에 오르게 되면 회복하기가 사실 그리 쉽지 않다.


그들이 갈 곳이라고는 집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만 이러한 제도 역시 상시적인 고용의 불안에 떨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요인이 된다. 직장을 들어가기도 쉽지 않은데 직장에서 오래 버티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직장 생활을 통해 받는 월급으로 삶을 지탱할 수 있다면 또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도 않다. 등록금이며 아파트 가격 등은 천정부지로 솟구치는데 반해 월급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2015년 이후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직장인들의 실질 임금 상승률은 2.7%에서 3.8% 사이를 오갔다. 연봉을 4,000만 원 받는 사람이라면 연간 108만 원에서 152만 원이 오른 셈이다. 이를 월급으로 계산해보면 한 달에 9만 원에서 12만 7천 원 정도 오른 셈이다. 비싼 밥 한 번 혹은 술자리 한 번 가지면 사라질 만큼의 적은 돈인데 문제는 이것조차 다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연봉 인상으로 인한 세금의 추가 부담, 그리고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등 부담금의 인상, 각종 세금의 인상 등이 이어지면서 실질적으로 연봉 인상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은 거의 없거나 푼돈 수준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뛰는 것 같기는 한데 정신 차리고 보면 늘 제자리에 있는 셈이다. 예금 금리가 0%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제로 금리 혹은 마이너스 금리가 돼 버린 상황에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부를 축적하는 일도 불가능이 되어 버렸다.


반면 이 기간 동안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은 큰 상승을 보였다. 2021년 1월 국토교통부 기준에 따르면 강동구 명일동의 한 아파트는 2016년 1월에 5억 원 남짓이었으나 2020년 12월 현재 12억 원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 기간에 사원급의 연봉은 1,000만 원이라도 올랐을까? ‘열심히 살면 내 집 한 채는 마련할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가지고 아껴 쓰며 착실히 직장 생활을 했건만 한 달에 몇 만원 더 받는 돈으로는 감히 꿈꿀 수 없는 수준으로 집값이 뛰어오른 것이다. 앞서 임금 대비 아파트 가격 상승 추이를 그래프로 살펴보았지만 지금은 그 차이가 더욱 벌어져 있는 상태다. 직장 생활을 통해 미래에 대해 막연한 희망을 가졌다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깨닫게 되는 ‘현자(현실 자각 타임)’가 몰려오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이 기간 동안 국내 상장사의 사내유보금은 2014년에 790조 원 수준에서 2019년에 1,080조 원 수준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에게 배당하지 않고 사내에 쌓아두고 있는 돈을 말한다. 몇 차례의 큰 위기를 겪으면서 기업은 언제 닥칠지 모를 유동성 위기를 대비한다는 핑계로 곳간에 돈을 쌓아놓고 있으면서도 직원들의 월급 인상에는 박하게 군 셈인데 이러한 것도 회사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만든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바닥까지 떨어진 복리후생 수준도 벌써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월급을 사이버 머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월급날이 되면 아침에 월급이 통장으로 ‘로그인’ 되지만 카드 값이며 대출원금과 이자, 세금 등으로 빠져나가고 나면 저녁쯤 되어서는 월급이 남아 있지 않고 ‘로그아웃’ 되어 있는 현실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자신은 실물로 지폐 한 장 만져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통장이 바닥을 드러내는 ‘텅장(텅 빈 통장)’이 되고 마니 사이버 머니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래 세대는 직장에서 마음이 떠나고 있다. 2010년 이후로 진행된 직장인들에 대한 애사심 조사에서 반 정도의 숫자는 애사심이 전혀 없다고 답하고 있다. 2020년에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로 인해 이전보다 애사심이 높아졌다는 조사 결과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시적일 뿐이다. 대체로 젊은 사람들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나 애사심이 그 이전 세대보다 못하다.


그들이 애사심을 갖지 못하는 요인을 살펴보면 24.8%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적은 연봉과 형편없는 복리후생’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급을 받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보니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것이다. 그 뒤를 이어 19.8%가 ‘회사가 직원은 생각하지 않고 기업의 이익이나 입장만 생각해서’라고 답했다. 이를 미래세대만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면 그 수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바쳐 힘들게 일해도 결혼도 할 수 없고 애를 낳아 기를 형편도 안 되며 자기 손으로 집 한 채 장만할 수 없다면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울 것임은 뻔한 얘기다. 오히려 자조감과 자괴심만 높아질지 모른다. 한 신입사원은 ‘월급을 받을 때마다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근로의욕을 잃는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는 조직에 충성심을 가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것도 언제 잘려나갈지 모르는 불안에 벌벌 떨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미래 세대는 직장 생활에 대한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어차피 누구나 해야 하는 직장 생활, 비록 몸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과거 세대처럼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하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직장 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척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 보니 더 이상 몸과 마음이 힘든 환경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목숨까지 내바칠 수 있지만 나에게 관심조차 없거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는 나도 관심을 갖지 않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처럼 젊은 사람들도 더 이상 힘들 기만하고 보람과 성취를 느낄 수 없는 직장 생활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젊은 사람들이 직장에 대한 애사심이나 충성심이 없다는 것은 그들이 속해 있는 회사 그 자체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장 생활을 통해 보람과 성취를 얻을 수 없는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무언가에 대해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다가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노력을 포기하게 마련이다. 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혐오하는 마음까지 생길 수 있다. 애정이 증오로 바뀌는 것이다. 고용도 불안하고 월급도 적다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직장 생활을 통해서는 경제적으로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미래 세대들은 직장에 대한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직장에 충성하는 것보다는 개인적인 삶에 충실한 것이 더 이득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단물만 빼먹고 쓸 모 없어지면 버리는 직장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넣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과거 세대처럼 직장을 삶의 우선순위 가장 높은 곳에 두고 충직하게 자신의 열정을 쏟아붓는 일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삶의 우선순위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직장을 밑으로 끌어내리고 직장에 밀려나 뒤에 있던 개인적인 삶을 직장보다 높은 자리로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죽어라 고생한들 집 한 채 살 형편도 안 된다면 차라리 사는 동안 마음 편하게, 아쉽지 않도록 즐겁게 사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을 통해 얻을 수 없는 삶의 성취감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찾고자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욜로(YOLO)나 워라벨, 소확행 같은 것들이 모두 그러한 차원에서 나타나는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인데 쥐꼬리만한 월급 받으며 남는 것도 없이 소처럼 일만 하다 죽느니 조금이라도 인간답게 살다 가자’는 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이들을 보면서 ‘영혼 없이 직장만 오간다’거나 ‘시킨 일만 할 뿐 일에 혼을 담지 않는다’며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정작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오히려 ‘그들을 얼마나 이해해 줘야 하느냐’며 역정을 내기도 한다. 서로 간에 이해할 수 없는 경영기 더욱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가 인터넷을 통해 마치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권역으로 묶여 있어 서양식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깊이 받는 미래 세대에게는 어찌 보면 당연한 변화인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보면 너무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마치 풍선효과처럼 직장 생활에서 만족을 얻을 수 없으니 개인적인 삶이라도 후회 없이 지내야 한다는, 어쩔 수 없는 한쪽의 포기를 통해 다른 한 쪽의 성취를 누리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 세대들도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누리고 싶은 욕망은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욕망이 담긴 항아리는 안정적인 고용과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수입이라는 단단한 고정 장치를 가진 뚜껑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굳게 봉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뚜껑을 고정시켜주던 장치에 이상이 생기고 틈이 벌어지면서 그동안 항아리 속에 단단히 봉인해 두었던 개인적인 삶에 대한 욕망이 튀어나오게 된 것이다. 직장과 개인의 삶이 동시에 만족스러울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것이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 보니 차선책으로 개인적인 삶의 질에 관심을 돌리게 된 것뿐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모두 pixabay.com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단, 그래프는 직접 만든 것이며 따라서 인용할 경우 허락이 필요합니다.>







이전 05화 직장보다는 개인적인 삶을 중시하는 세대(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