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The Next Generation)
직장 생활에 대한 흥미의 상실과 개인적 삶의 질에 대한 관심 증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래세대가 맞아야 하는 현실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사람의 사고와 행동은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게 마련인데 앞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로 인해 나타나는 미래세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직장 생활에 흥미를 잃고 개인적인 삶의 질에 높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거 세대와는 달리 관심의 축이 직장 생활에서 개인의 삶으로 이동한 것이다.
과거 10%가 넘는 고도성장기, 그리고 7%대를 오가는 안정적인 성장기에는 직장 생활은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한눈팔지 않고 착실하게 월급을 모으면 결혼자금을 마련할 수도 있었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금리도 비교적 높은 편이었기에 적은 돈이라도 허리띠 졸라매고 아끼면 그것만으로도 목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비록 대출을 떠안더라도 중년 정도에는 내 집 마련도 가능했다.
일을 못한다고 해서 회사에서 해고될 위험도 그리 크지 않았고 만년 과장, 만년 부장이라도 눈치 주는 사람 없이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그 당시에도 ‘회사는 직원을 소모품 취급한다’며 불만을 터뜨리는 말들은 있었지만 그래도 직장만큼 안정적으로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그러기에 ‘회사 안이 전쟁터 면 회사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신조처럼 읊조리며 다소의 불만이 있더라도 직장에 자신의 청춘을 바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회사는 우선순위에 있어 가정과 거의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회사를 가정보다 중요하게 여긴 사람들도 있었다.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출근했다 아이들이 잠든 후에나 집에 돌아오곤 했다. 비록 그렇지는 않더라도 개인의 삶과 직장의 일이 부딪히면 생각할 것도 없이 직장의 일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새벽 2-3시에 직장 상사나 동료의 전화를 받고도 불평 한마디 없이 뛰쳐나가는가 하면, 토요일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도 일요일이면 상사를 따라 열심히 산에 오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이들의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나이 든 사람들 중에는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지 못한 것을 마치 무용담처럼 떠드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사례가 얼마나 많으냐가 곧 직장에 대한 충성도를 나타내는 바로메타가 되기도 했다.
비록 몸은 고되고 때로는 불만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자신이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부족함 없이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모두 회사 덕분이라며 고마운 마음도 많았다. 그렇기에 ‘회사’라는 조직의 성공을 위해 ‘가정’이라는 개인적인 삶을 포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야 했기에 집은 마치 하숙집처럼 잠만 자는 곳이었고 가장들은 하숙생이라 불리며 가족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일도 많았다. 가족들도 그런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비록 불합리하고 부도덕한 일,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이 있다고 해도 그것에 반항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솟구쳐도 상사의 갑질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직장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오히려 인사고과권을 쥔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근무시간이 지나서 야근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때로는 자기 일이 끝나도 일이 끝나지 않은 동료를 위해 자리를 지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회의실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한두 시간 눈을 붙이면서도 며칠 밤을 꼬박 새워 일하는 것도 기꺼이 감수했고 주말 특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은 가정을 지켜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었다. 따뜻한 밥을 먹고 따뜻한 옷을 입으며 아이들 교육하고 결혼까지 시킬 수 있는 건 회사가 주는 월급 때문이라며 몸과 마음이 힘들고 고달파도 가정과 가족을 생각하며 꾹 참고 견뎠다.
회사에서의 경력이 쌓이고 연차가 높아질수록 연봉도 따라 올랐고 부장 정도 되면 그래도 소득이 소비를 추월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자녀 결혼이나 노후준비도 어느 정도는 가능했다. 허리띠 졸라매며 아껴 쓰고 알뜰히 돈을 모으면 강남은 아니어도 서울 시내에 집 한 채 정도는 장만할 수 있었고 재테크를 잘 하면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비록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노예 같은 삶이기에 눈물도 많이 흘리고 숱한 애환을 겪었어도 회사가 있었기에 가정을 꾸려나가고 지킬 수 있었으니 자신의 삶을 지탱해 주는 수단으로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높았다. 물론 그 당시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애사심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그 수준이 높았다.
하지만 경제가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고 고용환경이 악화되면서 직장은 더 이상 자신을 책임질 수 없다는 현실적 깨달음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의 아버지나 선배들이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의 위기 상황에서 한순간에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볼 품 없이 직장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며 커왔다. 자신의 청춘을 바쳐 충성을 다한 직장에서 한순간에 해고되는 부모나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회사라는 것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철저히 자기 이익에 기반을 두어서 움직이는 이익집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새해가 시작된 지 불과 5일이 지난 2021년 1월 5일 자 파이낸셜 뉴스에는 ‘“귀하는 희망퇴직 대상입니다” 새해부터 구조조정 칼바람’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삼성, LG, 현대, 롯데 등 국내 굴지의 그룹이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직원 감축에 나서고 그중에는 20대 대리도 2년 치 연봉에 퇴사를 장려한다는 내용이었다.
2015년에 실시된 D사의 희망퇴직 대상에 신입사원과 입사 1,2년 차가 포함되면서 그 내용이 온라인을 타고 사람들에게 불같이 퍼져나가게 되었고, 자신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처지가 될 수 있음을 깨닫자 젊은 사람들조차 고용의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그 당시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3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의 63.8%, 30대의 69.5%가 고용의 불안을 느낀다고 답해 40대의 78.7%나 50대의 78.4%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 수치는 최근 들어 더욱 높아졌다.
2020년 3월에 벼룩시장이 직장인 3,4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6.5%가 고용에 불안을 느끼며, 이 중 30대가 79.4%로 가장 높고, 50대가 77%, 40대가 76.5%, 20대가 67.5%로 나타났다. 젊은 사람들의 2/3 이상이 늘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지낸다는 것인데 코로나로 인해 장기 불황이 겹치면서 이러한 불안은 더욱 심해졌다. 게다가 회사 경영진의 잘못으로 인한 실적 악화를 직원들에게 전가하는 것을 보며 공정성에도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은 책임지지 않으면서 힘없는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비도덕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D사가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기간에 희망퇴직을 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황 모 씨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회사 밖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을 보며 회사가 사람을 부품처럼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내가 선택한 회사에 들어가서 애사심을 가지고 일하며 ‘이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평생을 쏟아부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잘려나가는 것을 봤다. 일에 임하는 나도 중요하지만 구성원을 대하는 회사의 태도도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말을 남겼다. 2년 전에 2년의 취업 재수 기간을 거쳐 모 중소기업에 입사한 김 모 씨는 ’가급적 오래 직장 생활을 하면 좋겠지만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니 늘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한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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