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The Next Generation)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미래세대
2021년 1월 14일 연합뉴스에는 ‘취업 절벽에 갇힌 20대...“잃어버린 세대 가능성”’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청년층이 쉽게 취업하지 못하는 취업 빙하기가 길어지고 2020년의 코로나로 인해 이것이 더욱 심화하면서 기술이나 지식이나 경험을 쌓을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고 이것이 과거 일본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기사였다. 일본은 부동산과 증시의 버블이 꺼진 1990년대 초반부터 10여 년의 기간 동안 청년층이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렸다.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다 보니 취업을 포기하고 장기 실업자로 남아 있는 사람이 속출했고 저임금을 받으며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일본 사회의 짐이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5세부터 29세 사이 청년층의 연간 실업률은 9.0%로 전체 실업률 4.0%보다는 크게 높지만, 전년 대비로는 0.1% 포인트 상승해 별로 악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잠재적인 취업 가능자와 구직자, 시간제 일자리 취업 가능자 등에 실업자를 합한 청년층의 체감실업률인 확장 실업률은 2020년 12월에 26%로 2019년 12월의 5.2% 포인트, 모든 연령대 평균 확장 실업률 14.6%보다는 11.4% 포인트 각각 높았다. 숫자로 보면 직업을 가지지 못한 청년층이 2020년 12월 말에 122만 3천 명에 이르는데 이는 2019년 12월에 비해 무려 21만 3천 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또 다른 기사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과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3월부터 11월 사이에 취업자 수는 6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감소했는데 가장 두드러진 연령층이 20대이다. 10대는 –4.1%, 20대와 30대는 –36.8%, 40~50대는 –28.3%였고 60대는 35.3%였다.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경기가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한 해이므로 취업자 수가 감소한 것에 대해 불가항력적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유독 혹독한 대가를 치른 것이 20대와 30대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더욱 취업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임시직이나 일용직을 찾아 나서는 20대나 30대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20년 5월 기준 29세 이하 대졸자 중 첫 일자리가 상용직인 사람은 106만 7,000명으로 전년 대비 5.9%(6만 7000명)가 줄어들었지만 임시직이나 일용직은 35만 8,000명으로 1.5%(5000명) 늘었다고 한다. 결국 갈 곳 없는 젊은 세대가 하는 수없이 임시직이나 일용직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조귀동씨가 쓴 <세습 중산층 사회: 90년 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른가>를 보면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알 수 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장은 ‘내부자’와 ‘외부자’로 구분된다고 한다. ‘내부자’는 대기업 정규직과 공무원, 공기업 종사자들을 말한다. ‘외부자’는 중소기업 재직자나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1차 노동시장’은 ‘내부자’, 소위 말하는 ‘인싸(insider)’들이 모여 형성되는데 이 시장은 급여가 높고 근속연수가 길며 연공서열제가 강하고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경우가 많다.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근로자로써 누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권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2차 노동시장’은 ‘외부자’ 시장이다. ‘아싸(outsider)’들을 중심으로 형성되는데 급여가 낮고 근속연수가 길지 않으며 연공서열제가 거의 없고 법적인 보호가 취약해서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안정적으로 오랜 기간 일을 할 수 없으므로 업무의 전문성이나 숙련된 기술을 쌓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도 자기발전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동 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6년에 ‘인싸’ 중심의 ‘1차 노동시장’은 전체의 22.4%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대기업 정규직 14.5%와 공공부문 정규직 7.9%를 합한 숫자다. 이 숫자를 자영업자와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무급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까지 합해 계산하면 16.5% 정도가 된다고 한다. 노동사회연구소는 2017년에 ‘1차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23.4%, 취업자의 19.3%에 해당한다고 해 두 기관의 추정치가 비슷하게 나타났다. 전체 근로자의 1/5 정도만 ‘내부자’에 해당하고 4/5 정도가 ‘외부자’인 셈이다.
2017년 기준으로 초임 기준 월 300만 원 이상을 주는 ‘번듯한’ 또는 ‘괜찮은’ 일자리의 수는 72,000여 개로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의 11.4%로 추정되는데 이들이 새로 ‘내부자’ 집단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되는 셈이다. ‘1차 노동시장’의 추정치인 22.4%나 16.5%에 비해 20대가 그 시장에 들어가는 비율은 훨씬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이러한 시장은 좋은 학력이나 학벌을 가진 사람들이 차지할 가능성이 더욱 커서 고졸자나 비명문대 출신 졸업생들은 이 시장에 들어가기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내세울 만한 괜찮은’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그 안에 비집고 들어가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셈이다.
2021년 1월 21일 한국일보에는 ‘[중간착취의 지옥도] “10년 넘게 일했는데..” 100만 원대에 갇힌 월급명세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실태를 살피는 기사였다. 간접고용 노동자란 누군가에게 직접 고용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고용된 사람에게 다시 고용된 노동자로 콜센터의 상담원이나 은행의 경비원, 주차관리원, 청소노동자, 파견직 사무보조원, 철도 역무원 등이 간접고용 노동자에 해당한다. 용역이나 파견업체, 위탁 업체 등에서 일하는 근로자를 말한다. 한국일보가 인터뷰한 86명의 노동자 중 300만 원이 넘는 월급을 받는 노동자는 9명밖에 안 됐으며 40%에 해당하는 34명은 200만 원 대,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겨우 100만 원 대의 낮은 임금을 받는다고 한다. 하루 종일 일한 대가치고는 지나치게 적다는 생각이 든다.
놀라운 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10년 동안 꾸준히 임금 인상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월급이 100만 원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14년 차가 된 한 철도 역무원은 임금이 164만 원이었고 2011년에 1,327,680원을 받던 은행 경비원은 2020년에 1,910,380원을 받았다. 이들은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신분이라 월급에 연차가 쌓이지 않고 그로 인해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나 20년 된 경력사원이나 동일한 임금을 받는다고 한다.
동일한 기간에 직접 고용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239만 원이었지만 용역 노동자의 임금은 평균 190만 원, 파견 노동자는 217만 원으로 적었다고 한다. 여러 단계의 고용을 거치면서 중간에 떼어가는 수수료로 인해 동일한 노동을 제공하고도 직접 노동자에 비해 훨씬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결국 취업의 어려움으로 인해 일용직이나 임시직으로 눈을 돌리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임금 지옥에 갇히게 되면 생활의 질도 떨어질 뿐 아니라 역량 축적도 어려워져 결국은 사회의 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기우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나면 좋으련만 젊은 세대는 부담해야 할 세금 측면에서도 기존 세대에 비해 훨씬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 2013년에 세금과 연금, 건강보험 등 보험금을 합친 1인당 국민 부담액은 688만 5천 원이었다. 이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 2019년에 1,014만 1천 원으로 늘었다. 해마다 평균 6.7% 정도 늘어난 셈인데 이는 동일 기간의 평균 임금 상승률인 3.6%를 거의 두 배 가까이 넘긴 수치다. 국민 1인당 세금 부담액은 2023년에는 850만 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급작스럽게 통일이라도 된다면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며 청년층에 대한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취업은 극도로 어렵고, 어렵사리 기업에 들어간다고 해도 선택된 사람들이 아니면 ‘내부자’가 될 수 없고, 임금 인상은 지지부진한 반면 부담해야 할 돈은 매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늘어나고, 그마저도 법에 정해진 정년까지 채울 수 없는 것이 미래세대가 처한 냉혹한 현실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보면서 20대 자녀를 두 명이나 가진 부모의 입장으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특히나 2021년도에 취업하지 못한 상태로 대학을 졸업하는 첫째를 보며 가슴이 너무 아팠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피가 마르는데 정작 당사자들의 입장은 어떠할 것인가?
사람들의 삶은 높이뛰기와 같다. 일정한 수준의 근로를 제공하고 그를 통해 받는 월급이라는 발판을 이용하여 도움닫기를 함으로써 결혼, 출산, 육아, 자녀교육, 내 집 마련, 노후준비 등 일상생활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활동이라는 바를 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도움닫기할 수 있는 발판은 그대로인데 뛰어넘어야 할 바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바가 가슴 정도 높이에 있었고 그래서 조금만 노력하면 어렵지 않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누구나 의심 없이 당연한 것처럼 높이뛰기를 했고 어렵지 않게 바를 넘었으며 그 대가로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았다. 1990년대에는 바의 높이가 목 높이까지 올라갔다. 이전에 비해 다소 힘이 들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높이뛰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바를 넘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만세를 한 높이까지 바가 올라가 버렸다. 높이에 질린 사람들이 어떻게든 바를 뛰어넘기 위해 허덕이기 시작했고 한편에서는 높이뛰기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지구를 휩쓸고 있는 지금은 바가 보이지도 않을 높이까지 올라가 버렸다. 여전히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노력만으로 바를 뛰어넘기도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 바는 더 이상 자신의 힘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고 있다. 다행히 부모를 잘 만나 장대라는 지렛대를 손에 넣은 사람들은 장대를 이용하여 어렵지 않게 바를 뛰어넘을 수 있지만 장대라는 지렛대를 손에 넣지 못한 사람들은 바를 뛰어넘으려는 꿈을 가지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자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바를 넘으려는 시도조차 포기하고 있다. 비록 어렵고 힘들더라도 손을 뻗으면 어떻게든 그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고 여기면 사람들은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목표가 너무 높고 멀리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면 해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아지게 마련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으니 말이다.
안타까운 소식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 20대 여성의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2019년에 20대 여성의 자살률은 전년대비 25.5%나 늘었고 2020년 1월부터 8월 사이에 자살을 시도한 사람 중 32.1%가 20대 여성이었다. 특히나 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일수록 자살이 늘어났다. 80년대 생은 엄마 세대인 1950년대 생에 비해 5배 많이 자살을 했다면 90년대 생은 그 비율이 7배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이러한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높아지는 배경에도 경제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꾸준히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핵심적인 부문의 일자리는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고 여성인력은 필요할 때만 활용되는 보조인력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이 주로 근무하는 직종은 서비스 부문이 되고 상대적으로 감정노동에 시달릴 일도 많은 데다 비정규직 등의 일자리로 급여 또한 넉넉지 못하다. 게다가 코로나가 만연한 상황에서는 가장 많은 타격을 받는 업종이 서비스업이다. 한국 여성정책 연구원이 분석한 2020년 9월 여성 고용 동향 자료에 따르면, 여성 실업률은 3.4%로 전년 같은 달보다 0.6% 늘었고, 그중 20대 여성의 실업률은 7.6%로 가장 높았다고 한다. 막상 취업을 하려고 해도 좋은 일자리를 갖는 게 쉽지 않고 어렵사리 취업을 한다 해도 감정적으로 피폐해지고, 그마저도 뜻하지 않은 환경 변화로 인해 자리를 잃게 되면서 스스로 ‘살아 있을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적인 면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삶의 축 중 하나다. 생존과 번식 등 인간의 모든 욕망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자식을 낳아 기르기도 어렵다.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돈 없이 사는 삶은 행복한 순간보다 불행한 순간이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매슬로우가 말한 욕구 중 가장 하위에 있는 의식주의 욕구조차 제대로 충족시킬 수 없다. 가진 것 한 푼 없이 마음으로만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고 정신승리일 뿐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서열의 욕구 또한 강해서 늘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고 비교하며 심리적 서열을 높이려고 하고 그로부터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미래세대는 인간의 모든 욕구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활동에 큰 핸디캡을 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핸디캡은 그들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그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고 정서적으로 빡빡하다. 그로 인해 후천적인 반골 기질을 드러내곤 한다. 직장 생활에 흥미를 잃고 개인적인 삶의 질에 관심을 갖는 것이나 진지한 것을 싫어하고 일상 속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것, 정의로움이나 공정함을 추구하는 기질 등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반골 기질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은 경제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몽상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직장 생활을 통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식이나 가상화폐, 부동산과 같은 투자활동을 통해 부자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어 한다. 직장에서 임원이 되는 것보다는 주식으로 큰 부자가 되는 것이 더욱 현실성 있는 대안이라 여기는데 한편으로 보면 이상적인 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가장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낳고 자란 환경에 의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에 살고 있다. 그들은 항상 자의적으로나 타의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 초연 결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누구보다 빠르고 누구보다 세상의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 정보 획득과 활용에 뛰어나고 빠른 보상에 익숙해진 경험을 바탕으로 효율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는 인간관계나 의사소통 측면에서 어려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종합하자면 미래세대는 후천적 반골 기질을 갖추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몽상가이기도 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 세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미래세대의 특징은 기존 세대와 갈등을 빚고 충돌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데 이제부터 조금 더 자세한 내용들을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