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The Next Generation)
‘가잼비’를 추구하는 소비
시장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비단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홍보와 마케팅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성격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진지함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미래세대가 소비자로써 힘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일명 ‘가잼비’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가성비라는 말이 가격 대비 성능, 즉 품질이 좋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것을 나타낸다면 미래 세대들 사이에서는 ‘가심비’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다. 가심비란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을 뜻하는 말로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비록 조금 비싸더라도 그것을 가졌을 때 얼마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느냐가 구매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최근에는 ‘가잼비’를 갖춘 제품이나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는데 ‘가잼비’라고 하는 것은 가격 대비 재미를 말한다. 제품의 기능이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재미도 구매를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다. 삼겹살이나 단무지 모양을 본뜬 젤리, 똥 모양의 구미, 곰표 밀가루의 포장을 흉내 낸 곰표 팝콘과 나쵸 등이 미래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며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레트로 감성을 지닌 밀가루 포대 모양의 곰표 팝콘과 나쵸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꽤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밀가루 푸대를 본떠 만든 곰표 패딩이 인기를 끌자 대한제분과 CU가 손을 잡고 만들어낸 상품이 팝콘인데 찾는 사람이 많아 구입하기 어려운 ‘희귀템’으로 등극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말표 구두약을 본떠 만든 말표 맥주 역시 핫한 아이템 중 하나다. 밀가루를 본떠 만든 나쵸와 팝콘, 구두약을 본떠 만든 맥주를 이전에는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2020년 3월에 인터넷 쇼핑몰 11번가는 한 켤레에 무려 48,000원이나 하는 고무신을 삼일절 기념 한정판으로 200켤레 판매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출처 : BGF 리테일>
평소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서로 다른 산업에 속한 기업 간의 컬래버레이션도 늘어나고 있다. ‘2080 호치치약’은 치약을 만드는 애경산업과 불닭볶음면을 만드는 삼양사가 손잡고 만든 제품이다. 화학제품을 만드는 회사와 식품회사가 손을 잡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인데 이 컬래버레이션 제품은 그야말로 치약에서 불닭볶음면 향이 나도록 만든 것이다. 치약 튜브에는 불닭볶음면의 캐릭터인 호치가 그려져 있고 치약은 캡사이신의 매운맛을 연상시키는 빨간색으로 되어 있으며 양치를 하고 나면 입안에 화끈하고 얼얼한 감각이 남는다. ‘누가 이런 걸 사나?’ 싶은 이 제품은 수많은 유튜버들이 사용 후기를 영상으로 남겼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며 즐거움을 느꼈다.
초콜릿과 똑같이 생긴 화장품도 있다. 화장품 업체인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 에뛰드 하우스와 초콜릿 제조업체인 허쉬가 손잡고 만들어낸 제품이다. 아이섀도 팔레트와 틴트 각각 2종으로 구성된 이 제품은 겉으로 보면 초콜릿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초콜릿과 똑같은 모양으로 포장되었으며 내용물도 허쉬 초콜릿과 동일한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초콜릿이라고 건네면 의심 없이 입안으로 넣을 정도로 똑같다. 허쉬 오리지널과 허쉬 쿠키앤크림의 두 종류로 구성된 이 제품은 한 달 만에 20만 개가 팔려나가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 밖에도 물방울처럼 생긴 키세스 초콜릿과 에뛰드가 콜레보레이션 해서 만든 아이즈 팔레트와 틴트도 있고, 스와니코코와 곰표가 손잡고 만든 클렌징 폼과 핸드크림, 쿠션 등도 있다.
화장품 브랜드 미샤와 식품업체 팔도도 손을 잡고 ‘팔도 BB 크림면’을 출시했다. BB크림색을 연상시키는 분홍색 크림면으로 원래의 팔도비빔면에 비해 부드러운 맛을 가지고 있다. 이 제품은 5,000개 한정 판매가 되었는데 하루 만에 매진이 되었다. 소주 업체인 하이트 진로는 참이슬 백팩을 400개 한정 판매했다. 참이슬 팩 소주 형태를 본떠 본체를 만들고 바코드, 원재료명, 미성년자 경고 문구까지 참이슬과 똑같이 재현한 이 백팩은 단 5분 만에 400개가 완판 되는 기염을 토했다. 판매 당시 49,000원이었던 제품이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14만 원, 최고 20만 원까지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진지함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미래 세대의 성향은 그들이 소비자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그 영향력을 넓혀 나가고 있다. 재미난 광고를 공유하거나 특이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사용 후기를 유튜브를 통해 공유하는 사용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그들은 무언가 특이하고 재미있는 광고나 일상생활에 유용할 것으로 보이는 아이템을 발견하면 그것을 SNS나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하고 그렇게 공유된 아이템은 마치 바이러스가 퍼져 나가듯 온라인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오프라인에서의 전통적인 ‘바이럴 마케팅’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미래세대의 온라인상에서의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 세대가 점차 소비의 중심이 되면서 이러한 트렌드는 기업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영향력 있는 유튜버들에게 알려지고 젊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성공 아이템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만 미래 세대 사이에서 호감을 얻지 못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흥행에서 참패할 수도 있다. ‘어머, 이건 꼭 사야 돼’나 ‘인싸 아이템’ 등의 이름으로 젊은 사람들 사이에 팬덤이 형성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승승장구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제품은 고전을 면치 못할 수도 있다.
비록 광고 하나일지라도 미래 세대들이 추구하는 것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콘셉트, 신경 써서 선택하고 정제된 언어로 표현된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성, 유명 연예인을 동원한 인지도 추구까지, 기존의 공중파나 케이블 등의 방송을 통해 보여주던 광고 영상과는 사뭇 다르다. 듣기 거북하지만 원색적인 욕설이 등장하기도 하고 ‘이게 뭐야?’ 싶을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으며 어색하기까지 하지만 영상을 보는 동안 힘든 현실을 잊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언가 막힌 속이 뻥 뚫리는 듯한 통쾌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들 중에는 제품이나 서비스 구매와는 상관없이 그저 재미를 위해 광고 영상을 찾아보는 사람도 많다. ‘광고=제품이나 서비스 구매를 요구하는 수단’이라는 과거의 개념에서 ‘광고=즐거움을 줄 수 있는 수단’으로 개념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 공간에는 재미있는 영상들이 차고 넘친다. 재미와 즐거움으로 가득한 그 공간에서 굳이 시간들이며 재미없는 영상을 볼 이유가 없다. 그래서 광고가 재미없으면 미래세대는 주저 없이 ‘광고 그만 보기’를 누르거나 다른 재미난 콘텐츠를 찾아 떠난다. 수억 원을 들여 심혈을 기울여 만든 광고가 별 반응을 얻지 못한다면 광고주의 입장에서는 타격이 클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와 같은 전통 방송매체를 보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 플랫폼을 이용하여 콘텐츠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19년에 조사된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대 중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의 비중은 불과 5.0% 밖에 안 되고 87.0%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50대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나타난다. 20대의 텔레비전 사용 비율은 7.3%인 반면 스마트폰 활용은 87.4%에 이른다. 30대의 텔레비전 시청 비율은 12.7%이지만 스마트폰 사용 비율은 80.8%에 이른다. 연령대가 높아지기 시작하면 텔레비전을 보는 비율이 급격히 늘어난다. 40대에서는 22.8%, 50대에서는 39.4%가 텔레비전을 본다. 반면 스마트폰 사용 비율은 각각 71.9%와 57.1%로 여전히 텔레비전보다 높다. 6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비율이 역전된다. 60대의 64.8%는 텔레비전을 시청하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동영상을 시청하는 비율은 33.3%밖에 안 된다.
이러한 통계가 말해주는 것은 텔레비전을 보는 계층과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동영상을 보는 계층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시 매체별로 광고의 형태나 콘텐츠도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됨을 의미한다.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광고가 유튜브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유튜브에서 통하는 광고가 텔레비전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10대와 20대는 이미 소비시장에서 ‘큰 손’으로 떠오를 정도로 소비시장의 한 가운데로 나가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소비자로써 그들의 소비행태를 관심 있게 바라보고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스마트폰 세대답게 그들이 소비에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 정보를 얻는 주요 수단은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와 같은 전통 매체가 아니라 스마트폰이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이다. 그들은 항상 연결되어 있는 온라인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꼼꼼히 비교한 후 ‘과감하게’ 소비한다. 그들이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은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다. 일단은 재미와 즐거움이 있어야 제품이나 서비스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그중에서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좋은 것이 구매로 이어진다.
마케팅에서 흔히 얘기하는 AIDMA(Attention(주목) - Interest(흥미) - Desire(욕구) - Memory(기억) - Action(구매)) 프로세스의 첫 단계인 ‘Attention’에서 관심을 끄는 것이 중요한데 그 요소가 재미와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아쉽게도 전통적인 방송매체의 광고는 재미나 즐거움보다는 제품이 가진 콘셉트 혹은 제품의 성능이나 기능을 충실히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미가 없다는 얘기다.
젊은 사람들은 제품의 성능이나 기능에 대한 정보를 사용자들의 평가나 사용 후기를 통해 얻는다. 물론 온라인을 통해서 말이다. 앞에서 언급한 고무신의 경우,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을 통해 누군가 제품을 설명하는 내용을 보고, 누군가 그 신을 신었을 때 모습이 예뻐 보이면 쇼핑몰을 찾아가 장바구니에 담는다. 광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용자들의 평가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갖고 싶은 제품이 있으면 평점이 좋은 판매자를 찾아 제품을 구매하고 평점이 좋지 않으면 포기한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제품에 일부러 낮은 점수를 주는 ‘별점 테러’도 서슴지 않는다. 음식 배달 앱들이 성행하는 이유도 맛있는 음식을 기대했다가 맛이 없으면 실망이 큰 만큼 적어도 ‘평타(평범한 수준)’ 이상을 선택하면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이 든 세대와 미래 세대가 광고를 보는 방식도 다르다. 나이 든 세대는 광고를 통해 제품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하지만 미래 세대는 다른 수단을 통해 얻는다. 그들이 제품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들의 관심을 한눈에 끌 수 있는 재미난 광고, 보면 즐거워지는 광고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모두 pixabay.com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단, 그래프는 직접 만든 것이며 따라서 인용할 경우 허락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