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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은우 Mar 03. 2019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

미래를 내다볼 수 없기에 나만의 삶의 무늬를 그릴 수 있는 것

일요일 오후, 친구의 상가에 가기 위해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한 차로 움직이게 되었다. 가는 길에 최근 개발이 끝난 신도시를 지나게 되었는데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한 마디씩 던졌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볼품없던 시골 변두리 땅이 이젠 금싸라기가 되었느니, 우리가 사는 도시의 땅값보다 훨씬 더 비쌀 것이라느니 하는 말들이 오갔다. 오십 대 아저씨들의 일상 대화가 그렇듯, 그 얘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져 어디는 얼마나 올랐느니, 또 어디는 어떻게 되었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지지리도 돈 버는 재주 없는 사람들의 단골 레퍼토리인 '그때 땅을 사놨어야 했는데...' 하는 자책의 말과 긴 한숨들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더 이상 땅 얘기는 하지 말자는 자조 섞인 한탄으로 끝을 맺고 말았다. 비록 유쾌한 웃음 속에 오간 얘기들이었지만 뒷맛은 그리 개운하지만은 않았다. 만일 우리가 되돌아보며 후회하던 그 모든 순간에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삶은 분명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가끔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몇 년이나 몇 달처럼 길게 갈 것도 없이, 단지 몇 시간만이라도 앞을 내다볼 수 있다면 편리한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다. 물론 속물근성을 벗어던지지 못한지라 대부분은 돈에 관련된 상상이다. 주식시장에서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고, 로또에서 매번 1등에 당첨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존심 상해가며 강자 앞에서 굽신거리지 않아도 큰돈을 벌 수 있고, 경제적 자유와 함께 인생의 자유도도 높아질 것이다. 자유도가 높아진 삶은 또 얼마나 살만할 것인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어디 돈뿐이랴. 자신과 가족,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닥칠 미래의 위험을 준비하기에도 용이할지 모른다. 길을 걷다가 머리 위에서 떨어진 알 수 없는 물체에 맞아 머리가 깨질 일도 없을 것이고, 욕실 바닥에서 미끄러져 팔을 부러뜨릴 일도 없을 것이며,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이거나, 운전을 하다 사고가 나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들도 앞을 내다볼 수 있다면 충분히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또 어떤가? 일반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다툼은 예상치 못한 사소한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생각 없이 툭 내뱉는 말, 다분히 장난으로 한 말이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된 말 한마디로 인해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고, 그로 인해 말다툼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감정이 격앙되어 살인이나 폭력 같은 끔찍한 결과나 이혼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것도 불과 몇 시간, 아니 딱 10분만이라도 앞을 내다볼 수 있다면 미리 조심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말실수로 인한 파탄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딱 몇십 분이라도 앞을 내다볼 수 있다면 삶이 참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상상은 비단 나만의 어리석은 바람은 아닌 듯싶다. 해마다 신년운세를 보거나, 과학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게 점 집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할 것이고 그래서 만일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거울이라도 있다면 아무리 비싸더라도 불티나게 팔리지 않을까 싶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돈벼락을 맞고 싶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그런데, 정말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으면 생각처럼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되돌아보면 지나간 날들의 근심 걱정은 모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삶을 좀 더 여유 있고 너그럽게 살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초조하거나 불안해할 필요도 없고 쫓기듯 살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겨우 10분뿐일지라도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의 삶은 너무 싱겁지 않을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돈'일 텐데, 특별히 노력하거나 힘들게 고생하지 않아도 원하는 재물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삶이 생각만큼 즐거울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일을 꾸미고, 그 일이 제대로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그 모든 즐거움이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힘들게 고생해서 얻은 결과에 대한 성취감도, 자신에 대한 기특함이나 대견함도, 삶에 대한 뿌듯한 보람도 더운 여름날 태양빛에 노출된 솜사탕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인생의 가장 큰 재미는 무언가 기대하지 못했던 보상이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펼쳐지는 순간에 있을 텐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삶에 그런 스펙터클한 재미 따위는 없을 듯싶다.  


한편으로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떠안아야 하는 걱정과 근심거리도 있지 않을까 싶다. 재미로 보는 점에서조차 점괘가 좋지 못하게 나오면 늘 마음이 쓰이고 불안하게 마련이거늘, 100%의 확률로 내다볼 수 있는 미래에 좋지 못한 일이 생긴다면 오히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할 때보다 더 많은 근심과 걱정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자신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한 일이라면 그 걱정의 무게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희망'이라는 신의 선물이 통째로 날아가는 것이나 다를 바 없을 텐데.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개의 문 중 어느 문을 열어야 할지 이미 알고 있다면 그것만큼 재미 없는 일이 또 있을까? pixabay.com]


유발 하라리는 역사상 모든 지점은 교차로라고 했다. 과거에서 현재로 밟아온 길은 하나의 갈래였지만, 여기에서부터 미래로는 무수히 많은 갈래의 길이 나 있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선택할 수 있는 갈래의 길이 여럿 있음으로 인해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후회를 느끼지만 반면에 그로 인해 미래에 대한 기대도 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지나온 과거처럼 미래로 향하는 길도 하나뿐이라면 그 삶이 얼마나 단조롭고 지루할 것인가.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이래 저래 근심을 안고 사는 것이다. 심리학자 류쉬안의 말을 빌리자면, 인생은 버그 섞인 코딩 프로그램과 같다. 침착하게 오류를 수정해 나가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조물주는 인간에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재미를 위해서,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하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인생은 바로 코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갯속을 걷는 것과 같지만, 어쩌면 그래서 인생이 살아 볼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길을 걷느냐에 따라 보물도 주을 수도 있고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내 삶에 다른 사람과 다른 나만의 무늬를 그려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다. 비록 앞을 내다보지 못한 탓에 오늘을 힘겹고 가난하게 살지라도, 미래는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마저 빼앗기지는 않는 셈이니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함이 그리 억울한 일만은 아닐 듯싶다. 여전히 그때 땅을 사놓지 못한 건 아쉽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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