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택시 기사 비판할 자격있나

by 캘리박


포털에서 인력거, 택시, 타다라는 키워드를 넣어 검색하면 택시를 비판하는 엄청나게 많은 칼럼을 찾을 수 있다. 정부에서 택시라는 기득권을 편을 들어서 결국 ‘게임 체인저’였고 혁신형 사업가인 타다를 고사시켰고 우버의 도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900년대 초 인력거꾼들이 자동차의 등장에 저항하다가 결국 실패했던 것처럼 새로운 플랫폼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며, 이를 막는 것은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편익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완전 자율주행차가 도입되면 택시는 물론 일반 버스 운전기사도 일자리를 전부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물론 나도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한다. 택시 운전기사들을 기득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혁신형 제품과 서비스가 나와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 지고 기존 산업의 파이가 줄어들면서 새로운 일자리쪽으로 사람들이 몰려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생각한다. 새 제품이 생겨남으로 해서 우리 사회가 얻을 수 있는 효용이 더 크다면 그 길로 가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정작 택시 기사 등에 대해 혁신의 저항자라며 마치 1900년대 인력거꾼과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언론사가 정작 자신들에게는 혁신의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술력과 스토리로 무장한 혁신형 제품이 나오면 기존 제품에서 신제품으로 소비자들의 쏠림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소비자들이 넷플릭스나 유튜브에 쏠리는 것도 당연하다. 넷플릭스를 통해 미드를 보면서 영어 공부도 마음껏 할 수 있고, 유튜브를 통해서 정보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사에서는 기업이나 정부 의존형 광고, 협찬이라는 구태의연한 사업모델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언론에 대한 비판 기능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만일 언론에 비판을 제대로 하는 기능을 누군가가 한다면 이런 모순점을 지속해서 지적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혁신형 사업가가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수많은 기사와 사설, 칼럼을 통해 정부를 비판했던 언론이 ‘우리는 언제든지 당신들에 대한 비판기사를 쓸 수 있어’라는 무기(?)를 갖고 매출을 올리는 말 그대로 혁신에 저항하는 행태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다. 언론사에서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서는 우리(기업)를 제일 많이 도와주는 것 같은데 정작 뒤에서는 ‘좀 도와달라며’ 읍소 아닌 읍소를 날린다. 그것도 한 언론사가 아니다. 수십개를 넘어 지방언론까지 수백, 수천개의 언론에서 이런 연락이 온다.

하지만 이미 판이 달라졌다. 과거 인력거를 타던 일부 사람들은 이제 자가용을 몰고 다닌다. 신문을 통해 세상돌아가는 것을 알았던 사람들은 내 손 위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에 일어나는 일을 바로 알 수 있으며, 전 세계 주식을 언제든지 살 수 있다. 혁신을 하지 않으면 결국 기존 미디어들이 일자리를 잃어버린 인력거꾼의 실세가 될 것이다. 결국 혁신을 위한 해법도 언론사 스스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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