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좋아졌다. 양산을 쓰며 볕을 피하기 바쁜 사람들 속에 꽃은 누구보다 더 반갑게 햇볕을 맞이한다. 5분 정도 걸으면 땀이 쏟아지는 이 날씨에는 수국이 제격이지. 아이들과 수업하러 나와 걷고 있다가, ‘수국’이라고 투박하게 쓰여 있는 팻말 옆에 하늘색과 연보라색 수국이 피어있는 걸 본 순간 찬란한 행복이 나를 가득 채웠다.
작년부터 계절마다 피어있는 꽃이 예뻐 온라인으로 꽃을 샀다. 내 돈으로 꽃을 사다니!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꽃처럼 쓸모없는 것도 없을 텐데. 일주일 남짓 보면 져 버리는 꽃을 돈 주고 사는 게 아깝다고 생각한 게 채 얼마 되지 않는다. 남자친구 근에게도 3년 전에는 꽃 같은 거 사 오지 말라고 그랬는데, 작년부터는 꽃을 왜 안 사다 주냐고 입을 삐죽거렸다. 집 앞 마트에 두부를 사러 갔다가 대야에 담긴 프리지아를 보면, 비어 있는 꽃병이 제자리인 듯 나도 모르게 계산하고 있었다. 봄이면 피는 튤립을 색깔별로 보고 싶었고, 양파인지 감자인지 모를 알뿌리식물을 처음 알게 된 날에는 근에게 조잘댔다. 옆에 피는 수선화도 알뿌리식물이야. 알뿌리식물은 가을에 땅에 심어서 겨울을 나고 봄에 피어나는데 대단하지 않아? 라며 나 혼자 들떠서 설명했고 근은 노란 꽃만 보면 “저게 개나리!” 하며 근 다운 말을 했다. 튤립 시즌이 지나면 곧 데이지가 다가온다. 그리고 장미. 장미가 끝나면 작약, 수국까지.
버스 타고 옆 동네에 갔다가. ‘생화 꽃 할인점’ 간판을 보고 반가웠던 순간이 있다. 알록달록 온 빛깔을 담은 꽃들이 신문지에 돌돌 싸여 선택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온라인으로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눈으로 보고 살 수 있다니!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꽃을 조합해서 조금씩 사는 것도 가능하다니! 얼마간 기웃거리다가, 인터넷으로 꽃 배송시켜둔 게 있어 꾹 참고 발길을 돌렸지만, 집 주위에 꽃 할인점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꽃의 가치가 달라진 게 새삼스러웠다. 절대 변하지 않던 내 가치관이 달라진 것도, 예쁜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꽃을 사고 싶어 안달복달 못하게 된 것도 큰 변화였다. 꽃에 대한 가치관도 바뀌는데, 하물며 사람에 대한 것도 바뀌겠지. 생각의 전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