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 취향부터 잠자는 방향까지 다른 근을 이해하기에 3년은 짧은 시간이었다. 새로이 드러나는 근의 꺼풀을 볼 때마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한다. 가끔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결혼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둘이 소리지르며 싸우거나, 질려서 이미 헤어지지 않았을까. 나와 다른 근을 만나 한 겹씩 벗겨보는 재미로 도란도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느낀 다른 점은 일상을 보내는 방법이다. 나름 주말마다 같이 생활하고 방학에도 함께 지내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럴리가.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나는 에너지가 100인 사람이라면 근은 기본 에너지가 50정도이다. 당연히 더 빠르게 소진될 수 밖에 없다. 100인 에너지를 아무리 써도 50이 넘기 때문에, 50인 에너지를 쓰며 생활하는 근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50인 에너지를 꾸역꾸역 붙들고 평일을 생활하다 주말에는 한참 누워서 에너지를 채워야 하는 방전된 배터리 같은 근을 보며, 나에게 에너지를 언제 쓰냐고 투덜댔다.
근은 억울했다고 한다. 나름 모든 에너지를 끌어 일상을 지탱하는 데 썼고, 그게 다 나를 위함이었는데 이제 와서 에너지를 써 달라니. 억울할 만 하다. 근이 나를 위해 에너지를 쓴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에게 입력할 수 밖에 없었다.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근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입력 끝에 자연스럽게 안다.
샤워하다가 배수구의 머리카락을 치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씻고 자는 게 급할 때가 있다. 자고 일어나 다음날 머리를 감으며 배수구를 보니 깔끔했다. 나는 이런 날 근의 사랑을 온 집 안에서 느낀다. 깨끗한 식탁에서, 비 오는 날 닫힌 창문에서, 먼지가 없는 선풍기 날개에서, 가지런한 이불에서 근의 사랑을 느낀다.
근은 나에게 사랑을 언제 느낄까? 내가 예쁘다며 만져줄 때. 안아줄 때. 맛있는 걸 해줄 때. 선풍기를 돌려줄 때. 싫다고 하면 물러날 때. 머리카락을 주워 담을 때. 잠에서 덜 깬 눈으로 커피를 타줄 때. 그럴 때 느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