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쯤 일어난다. 아침을 먹어야 아침약을 먹으니 엄마가 출근 전 아침을 챙겨준다. 서양식으로 아침을 챙겨 먹는다. 빵, 치즈, 두유. 두유가 질리면 가끔 율무차도 타 먹고 꿀도 섞어 먹는다. 소화 시킬 겸 30분 기다리다가 약을 먹는다. 아침에는 약을 3개 먹어야한다. 글리아티린, 파리에트정. 그리고 하나는 모르겠다. 아, 그리고 식사 때마다 지사제를 먹어야한다. 지사제는 장루환자랑 짝꿍이다.
아침을 먹은 할머니는 노곤해져서 앉아서 졸고 있다. 그러다 방에 들어간다. 방에서 정말 고요히 잠에 든다. 할머니는 화장실을 자주 가서 밤에 잠을 못자니까, 오전 일과는 내내 잠을 보충한다.
할머니는 방광암 말기이다. 방광에 너무 큰 혹이 있어 병원에서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거부했다. 할머니가 수술대에서 못 일어날 것 같아서. 방광에 커다란 혹이 있으니, 방광에 오줌을 저장해야 하는데 담지 못해서 30분에 한 번씩 화장실에 가야한다. 30분이 맞나? 요즘에는 20분에 한 번인 것 같기도, 밤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잠을 자도 잔 게 아니다. 괜히 할머니를 깨워 약을 먹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1시~12시쯤 점심을 먹는다. 점심은 한식. 소화가 안 될까봐 흰쌀밥을 살짝 질게 하고 국이나 찌개를 데운다. 국이나 찌개는 무조건 된장! 할머니가 된장을 좋아해서 된장찌개, 된장국에는 밥 한 그릇을 다 말아먹는다. 할머니가 살이 찔까 해서 고기나 생선 반찬을 함께 하고, 시아버님이 맛있게 담가주신 김치를 꺼내 놓으면 점심 완성. 할머니가 하루 동안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맛있게 잘 먹었다."인데, 그 말을 들으면 다시 밥을 할 맛이 난다.
포도, 딸기 처럼 달달한 과일을 한 알 한 알 씻어주면 하나씩 오물오물 먹는다. 포도 껍질은 맘에 안드는지 먹다 뱉어내긴 하지만. 점심에 먹는 약은 없어서 다행이다. 챙겨주는 입장에서도 점심 약이 하나 없는 거 하나만으로도 쉬워진다.
오후에도 보통 자다 일어나다 반복이지만, 가끔 식탁에 앉아 과거 이야기도 하고 거실과 방을 왔다갔다 걷기 운동도 하고 창 밖을 바라 보기도 하며 시간이 지난다. 나도 고단해 잠을 자는 날에는 오후에도 참 고요하다.
5시가 넘으면 저녁을 먹을 때가 된다. 할머니는 장루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밥을 조금씩 자주 먹어야 한다. 저녁이 이른 이유이다. 저녁도 점심과 비슷하게 한식을 먹는다. 밥을 한 숟가락 더 먹기를, 반찬을 한 입 더 먹기를 바라며 같이 밥을 먹다보면 저녁도 해결이다. 저녁약은 1개 있다. 글리아타린. 그리고 끼니마다 지사제를 1알이나 2알 먹어야 한다. 할머니가 요즘 깜빡거려서 내가 잊어버리면 안된다. 정신을 하루종일 바짝 차리게되니 예민해진다.
저녁 먹고 나면 이제는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8시~9시에 엄마가 올 때까지 할머니는 "엄마는?"이라고 꼭 물어본다. "엄마, 일하고 있지~", "엄마 이제 올 거야."라고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끔 서글프지만, 그렇게 물어 볼 기운이라도 있는 게 참 감사하다.
요즘 할머니는 잠 자는 시간이 늦어졌다. 아무래도 엄마와 있는 시간이 좋은가보다. 엄마가 퇴근하면 엄마 저녁 먹는 걸 보다가 샤인머스캣 3알 주워 먹다가 시간이 지나고, 12시쯤 잠을 자러 방에 들어간다. 아, 그 동안 화장실도 한 10번 정도 더 가야 한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하루 일과가 체력적으로 힘이 들긴 하지만, 기분이 좋다. 내가 할머니의 전담 요리사가 된 것 같아 좋다. 할머니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나에게 의지해서 좋다. 할머니가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게 곁에 있는 시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