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없는 날. 이사 날.

by 열음

할머니와 같이 살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건 병원침대이다. 몇 년 전부터 복지센터에서 병원 침대를 대여해서 쓰고 있다. 처음 병원 침대를 집에 놓는다고 했을 때 싫었다. 할머니가 대체 왜. 굳이? 엄마가 할머니가 누웠다 일어났다 하는 게 힘들어 병원침대처럼 살짝 구부러지는 게 좋다고 말해 이해는 했지만, 그래도 싫었다. 병원 침대랑 익숙해져서 다른 침대에서는 누웠다 일어났다 하는 게 힘들어졌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게 병원침대였는데, 복지센터의 도움으로 쉽게 옮길 수 있었다.


그 다음 필요했던 건 거실에 있는 돌침대소파이다. 할머니의 다리를 보면 젓가락 같다. 할머니를 부축해주려고 등이나 겨드랑이, 어깨 쪽을 만지면 뼈가 만져진다. 특히 척추뼈가 만져질 때마다 두꺼운 옷을 껴 입고도 춥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이해되서 한 걸음 더 슬퍼진다. 일어날 힘이 없어진 할머니는 푹신한 소파에는 앉을 수 없다. 돌침대가 적당히 단단하기도 하면서 온돌난방이 되는 제품이라 꼭 가져와야 했다. 할머니의 거실 생활을 위해서 꼭 필요한 물건이다. 도저히, 직접 가져올 수 없어서 이사짐센터를 불러 옮기기로 했다.


2년 전부터 우리 집 이사를 도와주고 계시는 소장님께 연락을 드리고 최대한 빨리 날짜를 잡았다. 그게 바로 오늘이다. 할머니 달력에 커다랗게 이사 날이라고 표시하면서 보니 아래 '손 없는 날'이라고 적혀있는 게 보였다. "할머니, 우리가 이사 날짜도 기가 막히게 잡았다. 손 없는 날이래." 할머니는 대체 언제 이사 가냐며 들떠보였고 기다림에 설레 보였다.


위에 적은 병원침대를 먼저 옮겨 24일에 미리 엄마 집으로 들어 온 할머니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다른 나머지 짐은 오늘 옮기기로 해서 다른 자잘한 짐들을 남편이 미리 옮겨주었다. (남편 정말 고마워. 대신.. 남편 허리가 아작난 것 같다. 안 그래도 7~8월 허리디스크로 고생했는데 더 이상 무리 할 일이 없기를..) 커다란 짐 중 옮길 짐은 거실에 있는 할머니의 돌침대, 안방에 있던 기다란 옷 수납장, 주방의 냉장고, 헹거 그리고 벽면에 붙어 있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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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동생들이 생일이라고 어버이날이라고 써준 편지를 하나하나 모아 가지고 계셨는데, 병원 침대를 들이고 수시로 보고 싶으셨는지 벽에 붙였다고 했다. 할머니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게 아닐까 싶어서 다 떼어왔다. 벽지가 다 상했지만 다시 도배하면 되니 상관 없었다.


아침 9시부터 정신없이 짐을 싸고 냉장고의 정체를 모르는 장들을 버리고 비우니 10시 30분. 집을 다 비워 이제 채우러 갈 시간이다. "옷장은 이쪽이고, 돌침대는 저쪽이요. 잘 부탁드려요." 12시가 되자 얼추 마무리 되었다. 할머니 방 옷 서랍장 위에는 가족 사진을 올려두고, 가습기를 틀어 놓았다. 돌침대를 뜨뜻하게 데워 이불을 깔아 놓았다.


다 끝나고 좀 쉴까 하는 통에, 뉴스를 봤다. 무안공항에 착륙해야 하는 제주항공 비행기가 추락하여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는 비극적인 사고 뉴스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오후 8시에는 181명 중 2명이 구조 177명은 사망. 나머지는 수색 중이라고 한다. 2024년 12월은 분노하고 슬픈 달로 기억될 것 같다.


[오늘 할머니]

- 화장실 가는 텀이 더 짧아진 것 같다. 10~20분 사이.. 거의 하루 반나절을 화장실에서 생활하는 정도이다.

- 누워 있는 기간도 더 길어졌다. 아무래도 피로가 안 풀리는 것 같다. 20분에 한 번씩 깨서 화장실에 가야 한다면 나도 못 버틸 것 같다.

- 다행인 건 밥은 아주 잘 먹는다. 밥 반공기와 국은 싹싹 비워 드시고 내가 직접 양념한 불고기도 다 드시고 갈치구이도 조금씩 뜯어 먹었다. 나와 있는 반찬에 꼭 한 번씩 손을 대어 맛 보곤 한다.

- 보일러 온도가 23.5도로 모두가 더워하지만, 할머니는 내복에 수면 잠옷에 패딩 조끼를 입고도 춥다고 하신다.

- 밥을 먹을 때 손을 떠는 걸 보면 먹여줘야 하나 싶다가도 혼자 먹는 기쁨이 있겠지 하며 참는다. 저렇게까지 손에 힘이 없는데 잘 먹어줘서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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