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일기장 1

by 열음

할머니 집에서 보물처럼 숨겨 온 일기장에는 할머니의 솔직한 마음이 담겨 있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은 순서대로 엄마(할머니의 딸), 손자들(수진, 유진, 찬경), 경로당 사람들이다. 신문 사설을 베껴 쓰기도 했고, 기도문은 중요했는지 매번 반복해서 썼다. 할머니의 일기장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다행이다!'였다. 할머니의 삶이 어땠는지 궁금했던 나에게 그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해결해 줄 수 있으니.


일기장의 60%는 경로당 이야기였다. 할머니가 어느 날, 경로당에서 총무를 본다고 했다. 할머니야 워낙 총명했고 검소한 사람이었으니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경로당에 발길을 끊으셨다. 매일 같이 들르시던 곳에 안 가는 이유는 물어보니 대답을 얼버무리곤 했다. 그러곤 가끔 총무 일이 힘들었다며 이야기했는데, 나는 별 신경 안 쓰고 지나쳤었다.


초반에는 총무 일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산책 겸 주변에서 먹거리를 장 보고 와 함께 차려 먹는 일이 즐거웠을터. 매번 혼자 밥을 먹었던 할머니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다. 여러 명이 모여 먹는 게 약속하지 않아도 일상처럼 되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비록, 입맛이 다르고 맞춰나갈 게 있겠지만 온기를 느끼며 먹는 밥은 맛도 달랐을 것이다. 할머니의 위기는 한참 총무 일을 하다 다음 총무가 나올 때 시작되었다.


(모두 할머니의 일기장을 바탕으로 이야기한거니 사실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할머니가 기억하는 사실이고 감정이니 그게 중요할까?)


할머니가 하는 일이 부러웠는지 새로운 총무가 들어왔고 할머니는 물러났다. 할머니 말로는 새로운 총무는 계산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챙겨달라고 하면서도 할머니가 챙겨주기 시작하면 달아나기 바빴다고 한다. 그러면서 경로당에는 할머니를 음해하는 세력이.. 생겼나보다. 할머니가 했던 총무일을 트집잡기 바빴고, 투명하지 않다며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고 했다. 그 이후 할머니의 일기장에는 '양심적으로 살았는데, 투명하게 살았는데'라는 말이 반복된다. 그 말을 쓴 할머니는 무슨 심정이었을까.


할머니를 음해한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너무 밉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지금 할머니는 모두 잊은 듯 행복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그리고 내가 위안이 되었던 건 할머니의 경로당 시간이 힘들었을지는 몰라도 외로움을 덜어줬을 거라는 것이다. 경로당의 이야기 중 다함께 나들이가서 맛있는 밥을 먹고 온 이야기, 대학 합격을 축하하며 짜장면을 산 이야기, 함께 경로당에서 저녁 당번을 하며 행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 가족의 빈 자리를 잠깐이라도 차지해 준 경로당 식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할머니가 덕분에 외롭지 않았을거라고, 잠깐이나마 식구와의 소속감을 느꼈을꺼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하루 종일 전화를 기다리지 않게 해줘서 우리와의 만남만 마냥 바라보지 않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할머니의 일기장을 거의 다 읽어갈 때쯤 든 생각은 "더 자주 전화할 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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