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의 시작
깜빡거리는 커서 앞에 뭐라고 쓸까 한참을 고민했다. 생각이 많은 편이 아닌데 요즘은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다.
할머니가 통증을 느끼는 표정을 몇 번 봤지만, 아프지 않다는 말에 외면하고 넘어갔다. 오늘 부터는 외면할 수 없을 것 같다.
12/31 어제는 망년회를 해야 한다며, 뭐 먹어야되지 않냐고 해서 할머니랑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나머지는 치킨을 시켜 먹기로 했다. 엄마가 언제오냐며 엄마 퇴근 5시간 전부터 물어봤지만 그때까지 체력이 안되는지 결국 들어가 침대에 누워 쉬셨다. 어제 낮까지는 괜찮았는데 밤부터는 통증이 심해졌나보다. 화장실 가는 간격도 10~15분으로 짧아졌다.
우리라도 즐겁게 이야기 하는 걸 보여주는 게 할머니가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서 호식이치킨을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2025년이 되면서 내가 30살이 되었고 할머니는 80살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했고, 푸른 뱀의 해라는 이야기도 했고, 항공기 사고로 해맞이 행사가 다 취소 되었다는 이야기도 하면서 2024년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할머니 이야기도 했다. 할머니 통증이 심해지면 응급실에 가야 하지 않을까, 빨리 주변 병원으로 할머니 자료를 옮겨놔야 응급실도 갈 수 있다는 이야기. 방광에 혹이 가득 차서 소변을 더 빨리 보러 가야하고 화장실에 가는 빈도가 잦아지니 힘들다는 이야기. 피가 모자라서 더 추위를 많이타고 손, 발이 저리고 소화가 안된다는 이야기. 통증이 심해지고 사는 게 힘드니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아마.. 빨리 죽고 싶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까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보일러를 빵빵 틀어주고 따뜻한 물을 갖다주는 일이나 등을 쓸어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죽고 싶다는 말.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할머니 몸이, 정신이,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쉽게 죽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나조차도 그랬다. 몸이 힘들거나 마음이 힘들면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걸까? 할머니는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병원에 가자고 해도 싫다 그러고, 수혈을 받기도 싫다고 한다. 사는 게 참 고단한가보다. 가끔 할머니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질 때면 놓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할머니랑, 하루만 더' 있고 싶다는 마음에 연재를 시작했는데 실은 욕심을 냈다. 이제 그 욕심도 내려놓고 할머니의 편안함을 빌어야겠다.
엄마가 마음을 내려놓아야 할텐데. 그게 참 걱정이다.
2024년 12월 31일은 어느때보다 고요한 연말이었다.
2025년 1월 1일을 맞이해 일력을 사다 한 장을 뜯었다. 할머니와 함께 몇 장까지 뜯을 수 있을까?